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8월 22일(현지시각)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제4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면서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 대결 구도가 확정됐다. 경선을 통해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된 현직 대통령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로 큰 변동을 겪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제 전통적인 양자 구도로 복귀하면서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체 투표에서 많은 표를 받는 것과 관계없이 총 538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의 선택을 누가 더 많이 받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독특한 구조로 진행된다.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48개 주는 승리한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승자독식 구조다. 얼핏 생각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개별 주(state)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고려해보면 각 주가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시스템은 연방 국가를 유지하는 체제인 셈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정치 지형은 양극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역별로 지지하는 정당도 분명하게 구별됐다. 통상적으로 스윙 스테이트라고 불리는 이들 주는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되면서 양당은 이곳에서의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동서 해안 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굳건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으며, 공화당은 남부 및 중서부 지역의 농촌 지역과 중소 도시를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역적 선거 구도가 고착화될수록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정당을 바꾸는 일부 주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스윙 스테이트는 펜실베이니아(19명·선거인단 수), 노스캐롤라이나(16명), 미시간(15명), 조지아(16명), 애리조나(11명), 위스콘신(10명), 네바다(6명) 등 7개 주를 가리킨다. 이들의 선거인단을 모두 합하면 93명으로 전체 선거인단의 17%에 달한다. 스윙 스테이트에는 총 6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4조4000억달러(약 5883조원)에 이른다. 독일 전체와 비슷한 규모다.
팬데믹 이후 느린 경제 회복, 스윙 스테이트 공통 고민
스윙 스테이트는 각기 자신들의 이슈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어느 당이 이런 불만과 어려움을 해소할 맞춤형 공약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에 따라 유권자의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스윙 스테이트의 유권자가 느끼는 불만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선거의 향방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하기 전까지는 이들 스윙 스테이트에서 공화당이 전반적으로 유리했다. 공화당으로서는 바이든 대통령 4년 동안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이 커졌음을 부각하면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기와 비교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먹혀들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로 인해 이런 기존 대결 구도가 약해지고 있다.
스윙 스테이트의 공통된 고민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피해에서 회복이 느리다는 점이다. 미국 약 20%의 카운티가 2022년 말 기준 2019년 수준으로 회복이 안 됐다. 그런데 스윙 스테이트에서는 25%로, 그 비율이 더 높다. 2020년 대통령 선거 당시 1인당 GDP 성장률이 높게 나타난 주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으며 낮은 주에서는 공화당 지지가 많았던 것을 고려해보면 민주당으로서는 고민되는 지점이다. 스윙 스테이트의 카운티 중 2022년 말까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250개 카운티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곳은 197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민주당에 현재 상황은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7개 스윙 스테이트 가운데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3개 주의 경우 2019~2023년 GDP 성장률은 다른 지역의 3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미국 제조업 중심지였던 이들 3개 주는 지난 30년간 탈제조업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최근 10년간만 놓고 봐도 10%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민주당으로서는 과거 노동조합의 조직력에 기대어 이 지역을 텃밭으로 간주했지만, 노동자는 ‘과연 민주당이 자신들의 진정한 친구인지’ 점차 의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불만을 파고든 트럼프는 2016년 이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고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 지역에 전기차, 이차전지 등 미래 산업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 유권자 입장에서는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 공급 부족·교통 체증 등 문제도 산적
서부의 네바다주는 다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카지노를 위주로 한 관광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네바다주는 최근 물류와 각종 첨단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필요로 하는 주택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자 주택 가격은 상승했고 임대료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2019년 네바다주에서 중위 가격에 해당하는 주택을 구입할 경우 노동자 평균 임금의 20%를 주택 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면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3년의 경우 37%를 원리금 상환에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는 인력이 외부에서 유입되면서 주택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네바다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택 가격 안정 및 주택 구매 지원을 위한 방안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남부 조지아주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조지아주에 투자를 늘리면서 지역의 일자리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일자리를 좇아 최근 몇 년 사이에 20만 명 이상이 조지아주로 유입됐다. 이들 대부분은 조지아주 최대 도시인 애틀랜타와 그 주변 지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 2019~2023년 조지아주의 GDP는 25% 성장하였지만 1인당 실질 GDP 성장은 2.5%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는 인구 증가에 따라 성장의 과실이 쪼개졌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 확대는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기존 주민의 불만을 확대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주택 가격 급등, 교통 체증의 확대, 주민 구성 급변 등이 더해지면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기업 투자 유지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가 주민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만 TSMC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서부의 애리조나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이 스윙 스테이트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런 불만을 효과적으로 잠재우는 동시에 자신들의 업적을 강조해야 한다. 민주당이 최근 이 지역을 대상으로 광고비 집행을 대폭 늘린 배경이다. 반면 공화당은 대규모 관세 인상을 통해 소득세 감면에 따른 세수 부족분을 채우는 동시에 일자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컨벤션 효과 힘입은 해리스 지지도 상승, 트럼프 반격도
후보 교체와 전당대회를 통한 컨벤션 효과가 겹치면서 8월에는 스윙 스테이트에서 해리스에 대한 지지도가 분명하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이 9월 본격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스윙 스테이트 주민이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는 선거 과정 내내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전통적인 지지 기반의 복원을 노리는 민주당과 백인 노동자의 불만을 공략하면서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공화당의 전략 가운데 어느 쪽이 승리할지는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