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발렉스트라를 대표하는 ‘이지데’ 가방은 국내 공식 홈페이지에서 65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에서는 이와 똑같은 가방을 469위안(약 9만원)에 살 수 있다. 이른바 ‘짝퉁’으로, 진품의 70분의 1 가격에 불과하다. 이 판매상은 발렉스트라 외에도 에르메스, 샤넬, 보테가베네타, 프라다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 가방을 그대로 베껴 판매 중인데, 이를 팔로우하고 있는 이들은 13만 명에 달한다.
중국 소비자의 ‘짝퉁 사랑’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해 가성비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값비싼 명품을 사느니 질 좋은 짝퉁이 낫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짝퉁까진 아니지만 명품과 같은 원단·재료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중국 토종 브랜드도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인이 보다 저렴한 선택지를 찾아 나서면서 중국을 등에 업고 성장해 온 주요 명품 업체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짝퉁 브랜드는 오프라인에도 매장을 내고 버젓이 영업 중이다. 미국의 패션 브랜드 폴로 랄프로렌을 따라 한 ‘파울로 페드로(PAULO PEDRO)’는 중국 지방 도시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브랜드는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모양의 로고까지 폴로 랄프로렌을 베꼈다. 하지만 가격은 큰 차이가 난다. 폴로 랄프로렌의 여성 원피스는 최소 30만원대에서 100만원대에 육박하기도 하지만, 중국 파울로 페드로의 원피스는 5만원대에 불과하다.
나이키의 ‘에어 조던’을 따라한 ‘치아오단(QIAODAN)’은 중국 전역에 60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치아오단은 미국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8년간 상표권 분쟁 끝에 패소했지만,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명품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지만, 명품의 원단이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브랜드도 중국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즈이 테크놀로지의 데이터를 인용해 ‘Chicjoc’이라는 중국 의류 제조 업체가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티몰에서 지난 7월까지 1년간 9억7800만위안(약 1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 업체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펜디 등이 이용하는 공급상으로부터 코펜하겐산 모피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한다”라고 전했다.
中 소비 위축에 글로벌 명품 기업 실적 악화
짝퉁 또는 명품과 비슷한 품질을 가진 토종 제품을 찾는 중국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은 최근의 경기 침체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 업체 민텔의 블레어 장 명품 및 패션 애널리스트는 “중국 소비자의 명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라며 “명품 핸드백으로 지위를 나타낸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같이 소비를 신중하게 하는 상황에서 명품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더 이상 보기 힘들고, 저렴한 대안제 구매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합리적 쇼핑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사치 풍조를 단속하고 있는 것도 중국인의 명품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동부유(다 함께 잘살자)’ 정책 영향이다. 실제 중국 소셜미디어(SNS) 기업들은 왕홍(인플루언서)이 명품 등 부를 지나치게 자랑할 경우 계정을 차단하고 있다. 일부 고위층 자녀가 돈 자랑에 나섰다가 부정부패, 탈세 등 혐의로 조사를 받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에 주요 명품 기업의 실적은 고꾸라지고 있다. 구찌,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을 소유한 프랑스 명품사 케링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1% 줄었다. 중국 중심으로 매출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구찌 매출이 20% 급감한 여파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 매출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 감소했다. 2분기 들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일본 제외) 매출이 14% 감소했기 때문이다. 오메가·블랑팡 등 고급 시계 브랜드로 유명한 스와치그룹 역시 중국권 매출 감소로 인해 상반기 전체 매출이 14% 줄었다.
블룸버그는 “중국에서 비슷한 품질의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로고나 브랜드가 없는 짝퉁이 확산하면서 안 그래도 타격을 입은 명품부문에 대한 타격이 더욱 커질 수 있다”라고 했다.
중국 명품 시장조사 업체인 야오커그룹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가) 고급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인데, 짝퉁이 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향후 (명품 기업의) 중국 내 성장에 타격을 더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파격 세일에 병행 수입까지… 中 시장서 체면 구긴 명품들
중국 시장에서 명품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명품 기업이 최대 50% 파격 할인에 나서는가 하면, 정식 유통 채널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재판매 플랫폼을 통한 판매량이 많이 늘어나면서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최근 일부 명품 브랜드는 중국 대표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에서 전례 없는 수준으로 제품 가격 할인에 나섰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아워글래스’ 핸드백 가격을 최대 35% 낮췄는데, 이는 발렌시아가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해외 주요 명품 판매 플랫폼에 등록된 가격보다 저렴하다.
업계 관계자는 “발렌시아가는 올해 1~4월 중 3개월간 평균 40% 할인에 나섰다”며 “같은 기간 티몰에서의 할인 제품 수 역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할인에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외 베르사체, 루이비통모에헤네시의 지방시, 버버리 역시 올해 여름 중국 내 전자상거래 플랫폼 판매 가격을 절반 이상 인하했다. 한 관계자는 “베르사체의 평균 할인율은 지난해 초 약 40%에서 올해 50% 이상으로 올랐다”고 했다. 이들 브랜드의 할인 품목 역시 올해 수백 개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할인도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명품 재판매 플랫폼과 같은 회색시장(합법과 불법의 중간)이 공식 판매 채널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컨설팅 업체 리허브에 따르면, 중국 대표적 재판매 플랫폼 ‘더우’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판매된 고급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몽클레르와 캐나다구스 인기 제품 판매량은 티몰 내 브랜드 공식 스토어보다 2.5~15배 많았다.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역시 올해 상반기 티몰보다 더우에서 6.8배 많은 매출을 올렸다.
더우는 공식 허가 없이 수입하는 병행 수입 제품을 주로 판매한다. 애프터서비스(AS)를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격은 공식 판매 채널보다 훨씬 저렴하다. 까르띠에 반지의 경우 정식 유통 채널에선 1만8200위안(약 340만원)이지만, 더우 가격은 이보다 66% 낮다. 명품 브랜드 펜디의 2만9500위안(약556만원)짜리 핸드백 역시 더우에서 절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 시장 내 명품 가치가 하락하면서 이미지 손상도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는 “독점적인 이미지와 가치 유지를 강조하는 명품 브랜드의 할인 행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명품 업계의 중국 매출 부진 및 재고 문제는 물론 중국 소비 부진 문제도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