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날레디의 무덤을 발굴하는 모습을 보여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언노운(Unkown)’. /넷플릭스
호모 날레디의 무덤을 발굴하는 모습을 보여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언노운(Unkown)’. /넷플릭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의 리 버거(Lee Berger) 교수가 이끈 미국 지질학회 연구진은 뇌가 현대인의 3분의 1에 불과한 화석인류 호모 날레디(Homo naledi)가 약 25만 년 전 지하 동굴 두 곳에 시신을 의도적으로 묻었으며, 무덤 입구에 기하학 표시도 남겼다고 발표했다. 발굴 과정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로도 방영돼 엄청난 화제가 됐다.버거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보다 최소 16만 년 전에 무덤을 만든 것이다. 호모 날레디는 머리는 침팬지와 비슷한 크기지만 손과 발 모양은 오늘날 사람과 흡사한 미스터리 화석인류다. 하지만 학계는 줄곧 발굴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오늘날 인류만 한 크기의 두뇌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행동이 훨씬 오래전 화석인류부터 기능했을까. 아니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상상이었을 뿐일까.

33만~24만 년 전 아프리카 남부에 살았던 화석인류인 호모 날레디 복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
33만~24만 년 전 아프리카 남부에 살았던 화석인류인 호모 날레디 복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 연구진이 라이징 스타 동굴에서 발굴한 호모 날레디 유골 화석을 조사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 연구진이 라이징 스타 동굴에서 발굴한 호모 날레디 유골 화석을 조사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2022년 6월 2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동굴에서 발견된 기하학 표시들. 시신이 매장된 무덤 입구에서 나왔다. /리 버거
2022년 6월 2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동굴에서 발견된 기하학 표시들. 시신이 매장된 무덤 입구에서 나왔다. /리 버거

X선 분석 결과 재현하지 못해

버거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의 정식 심사를 거쳐 논문을 발표하지 않고 지난해 6월 논문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올렸다. 다음 달 정식 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에 발표했으나 평가는 혹평 일색이었다. 7월 30일(현지시각) 미국 조지메이슨대는 킴벌리 포케(Kimberly Foecke) 인류학과 교수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고인류학(PaleoAnthrop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호모 날레디가 의도적으로 시신을 묻었다는 증거가 동굴 퇴적물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학계는 버거 교수 연구진이 자기들의 연구 결과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이라이프’를 악용했다고도 지적했다. ‘이라이프’가 공개 학술지인 오픈 액세스 저널이어서 논문 게재가 쉽다는 것이다. 버거 교수 연구진은 처음 발표한 연구 결과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주(9월 중에)에 지난해와 같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포함된 새로운 논문 수정본을 게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버거 교수 연구진은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인근 ‘떠오르는 별(Ris-ing Star)’이라는 이름의 동굴 깊숙한 곳에서 호모 날레디의 화석을 발견했다. 날레디는 현지 언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연구진은 2015년 ‘이라이프’에 발표한 논문에서 침팬지보다 약간 큰 두개골 크기로 볼 때 250만~280만 년 전의 인류 초기 종(種)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이 동굴에서 최소 27명의 유골이 발굴됐다.

발굴 당시 일부 유골은 생전 모습처럼 배열돼 있었지만, 다른 유골은 흩어져 있었다. 근처의 석회암 동굴 벽에는 십자형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버거 교수 연구진은 호모 날레디가 무덤이라고 표시한 그림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는 이 자국이 자연적인 과정이나 최근 동굴을 방문한 방문객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학자들은 이 동굴의 인류 화석이 흥미롭고 중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유골이 자연적으로 묻혔는지 아니면 사람이 묻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점. 버거 교수 연구진은 화석과 가까운 퇴적물과 멀리 떨어진 퇴적물을 비교하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했다. X선을 쏘아 화학 성분을 알아보는 형광 기술을 적용했더니 먼 곳 퇴적층은 층층이 깔끔하게 쌓여 있었지만, 유골 근처는 뒤섞여 있었다. 연구진은 뼈의 방향과 토양이 교란된 형태를 볼 때 의도적으로 파낸 구덩이에 시신을 묻고 흙으로 덮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X선 형광 기반 기술 개발을 도운 호주 라트로브대의 앤디 헤리스(Andy Her-ries) 교수와 스페인 국립인간진화연구센터의 마리아 마르티논-토레스(María Mar-tinón-Torres) 박사는 지난해 ‘인간 진화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버거 교수 연구진도 뼈가 홍수로 씻겨 들어오는 식의 자연적인 방법으로 동굴에 도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포케 교수는 “처음 공개된 결과는 X선 설정이 어땠는지, 데이터가 실제로 어떻게 수집됐는지가 누락된 불완전한 보고였기 때문에 결과를 재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호모 날레디가 시신을 묻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버거 교수 연구진이 제공한 증거가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하지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독특한 논문 게재 방식도 혼란 불러

‘사이언스’는 버거 교수가 거듭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라이프’ 논문의 공동 교신 저자였던 요하네스버그대의 테보고 마쿠벨라(Tebogo Makhubela) 교수는 포케 교수의 비판 중 일부에 동의했다. 그는 분석 방법을 잘못 택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마쿠벨라 교수는 “우리 연구진은 동료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논문 출판 전 결과를 공개했다”며 “다른 연구자는 정식 논문이라고 가정하고 비판했는데, 이는 부정확한 가정”이라고 말했다. 아직 최종 결과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라이프’의 논문 게재 과정은 다른 학술지와 다르다. 기존 학술지는 투고된 논문에 대해 동료 심사와 저자의 수정 과정을 거쳐 최종 결과물을 게재한다. 반면 ‘이라이프’는 일단 사전 결과물을 올리고 이에 대한 논평을 받아 공개한다. 저자는 논평에 답하고 결과를 수정할 수 있다.

버거 교수 연구진은 모두 회의적인 내용의 논평 네 건에 대해 장문의 답변을 게시했지만, 아직 논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마쿠벨라 교수는 ‘사이언스’에 자신과 동료들이 모든 비판을 고려한 수정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신 매장 주장을 뒷받침하는 퇴적물의 미량 원소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이라이프’ 논문을 수정하는 것보다 다시 정식 논문 발표 절차를 밟는 게 낫다고 지적한다. 여전히 버거 교수 연구진은 자신들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가 준 충격이 사실인지, 아니면 과학자들의 오해 아니면 심지어 조작이었는지 곧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