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등록한 국가법 적용
등록 선박 늘어나는 효과 커
사람은 태어나면 국적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혈통주의(속인주의)다. 아버지가 한국인이면 한국 국적을 받는다. 주소가 어디든 상관없다. 미국은 속지주의라고 해서 태어난 곳을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 국적을 받는다.
내가 탔던 첫 배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몬로비아항(港)’에 등록된 선박이었다. 그래서 라이베리아 국적이었다. 운항사가 일본 회사였는데, 소유주는 몬로비아에 주소를 둔 이상한 이름의 회사였다. 한국에서 삼등 항해사용 해기사 면허를 받고 선원수첩도 한국의 지방해양수산청에서 받았다. 그런데 배를 타려고 하니 라이베리아 면허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면허를 기초로 해서 라이베리아 면허를 새로 받았다. 선박은 움직이는 영토다. 배가 라이베리아 국적의 배였기 때문에 나는 라이베리아 법의 적용을 받았던 것이다.
일본 회사가 굳이 아프리카 작은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이유가 의아했다. 알고 보니 일본에 선박을 등록하면 일본법 적용을 받게 돼 불편한 점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선원법 적용을 받으면 일본 선원을 태워야 한다. 필리핀 선원보다 봉급이 높다. 반면 라이베리아는 세금이 비교적 싸다고 했다. 결국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영업이익을 얻기 위해 운항사와 전혀 무관한 국가에 선박을 등록하는 것이다.
이런 선박을 ‘편의치적선(便宜置籍船)’이라고 한다. 전 세계 상선대의 60%에 육박한다. 그래서 편의치적을 제공하는 파나마, 라이베리아, 마셜제도가 3대 등록국이다. 실제 소유주별로는 그리스가 1위, 일본이 2위다. 그래서 싱가포르와 홍콩은 빌려온 배도 자신의 국가(지역)에 등록을 허용해 안전 관리를 해준다. 영업적 관점에서 접근한 셈이다.
우리나라는 선박 소유주가 한국인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인정한다. 미국같이 속지주의를 택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건조되는 선박도 한국 국적을 인정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건조된 선박에 한국 국적을 허용했다면 세계 상선대의 3분의 1은 우리나라에 등록된 선박일 것이다. 큰 변화다. 왜 이런 제도 도입을 검토하지 않았을까.
선박이 한국 국적이라면 안전 검사를 한국 정부로부터 받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안전에서 최고 국가로 인정받으면, 한국 선적(船籍)이라는 것 자체가 신용이 된다. 한국 선급과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orea P&I)의 입급(등록) 선박도 늘어나서 좋다.
선박은 등록항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선주의 주소와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정기 선사가 바로 스위스의 ‘MSC’다. 육지 국가 스위스가 어떻게 해운을 하겠는가. 해운은 바다에서 선박이 운송하는 것이다. 육상에서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MSC는 선박 등록을 중남미 파나마 등에 했다.
한국도 해외 선박에 국적을 주는 다른 편의치적 국가처럼 면세 혜택을 제공하면 어떨까. 다만 우리나라 법체계와 달라지므로 특정 구역을 정하고 특별법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서울 한강이나 부산 해운대, 송도에 일명 ‘선박 등록 특구’를 설치할 수 있다. 선박은 선적국(船籍國) 깃발을 선미에 달고 입항한다. 마스트(돛대)에는 입항하는 국가 깃발을 달아야 한다. 송출선(외국 선주가 운항하는 선박)을 탔기 때문에 한국 깃발을 달고 입항한 적이 없다.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 깃발을 단 선박이 줄줄이 서서 해상 퍼레이드를 하는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