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연방법원은 “구글은 독점기업이다(Google is a monopo-list)”라 선언하며 구글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기념비적이라 평가받는 이번 판결은 미 법무부의 제소로 시작됐다. 구글은 애플이나 삼성전자가 자사의 스마트폰이나 웹브라우저에서 구글의 검색엔진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조건으로 거액을 지불해왔다. 2021년 한 해에만 구글이 애플에 지급한 금액은 25조원을 넘는다. 이를 통해 구글은 검색엔진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반독점법의 칼날이 겨누어진 곳은 구글뿐이 아니다. 미국의 핵심 기술 기업은 대부분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를 당했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업들의 가치는 미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분의 1에 달한다. 당연히 주식시장에서는 이를 악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례로 9월 4일 미 법무부의 반독점 조사 관련 소환 소식이 전해지자, 엔비디아의 주가는 10% 가까이 급락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반독점 논의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해당 판결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초당적인 지지와 미국 국민의 우호적인 여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페이스북이 본인에게 불리한 편향된 스탠스를 유지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등, 재임 시절부터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비우호적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 의원 역시 구글의 반독점 판결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구글을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구글 외의 다른 빅테크 역시 쪼개져야 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밴스 상원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실리콘밸리의 바이오 기업과 벤처캐피털에서 일했고, 여기서 쌓은 테크 분야 인맥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과정에서 든든한지원군이 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번 발언의 함의는 적지 않다.
이번 판결이 민주당 정권에서 일어났음을 차치하더라도, 조 바이든 정권은 초기부터 빅테크의 독점적 지위에 강한 문제의식을 표출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이든 정부의 가장 파격적인 인사인 리나 칸 예일대 로스쿨 교수의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임명이다. 1989년생으로 임명 당시 불과 32세였던 칸 교수는 2017년 예일대에서 박사 졸업논문으로 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논문의 핵심 내용은 아마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폐해를 현재의 반독점법이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독점법은 동종 업체가 카르텔이나 트러스트를 구성하여 시장의 독점적인 위상을 획득한 뒤 가격을 높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규제한다. 칸 교수는 미국의 반독점법이 상품 가격이 올랐는가를 기준으로 독점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가격이 오르지만 않는다면 아마존 같은 기업이 실질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더라도 현재의 반독점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비록 물건값은 싸질 수 있으나 모든 소매 업체가 자신의 경쟁자인 아마존을 통하지 않고는 시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아마존 같은 디지털 플랫폼 업체는 규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폐해를 낳을 수 있으므로 독점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골자다.
칸 교수의 논문은 출간 즉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반독점법의 적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새롭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펀딩을 받고 있다고 알려진 티머시 뮤리스 FTC 위원 같은 거물급 인사가 학위를 막 받은 햇병아리 학자를 반박하기 위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던 당시, 빅테크의 기술력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기에 논란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칸 교수의 FTC 위원장 임명을 밀어붙였고, 이를 통해 빅테크에 대한 스탠스와 정책적 방향성을 명확히 천명했다. 미국 정치권은 칸 위원장의 임명을 초당적으로 동의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화답했다.
미국의 반독점법은 1890년에 제정된 셔먼법을 기본으로 한다. 셔먼법을 통해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분할된 것이 독점법 적용의 가장 유명한 사례다. 스탠더드 오일은 막대한 자본력을 통해 경쟁사를 인수하거나 파산시키고, 이를 통해 석유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독점하였으며 이에 따른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당시 스탠더드 오일이 분할된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필수재인 석유의 독점은 경제권력을 통한 시민 통제의 길을 열어주는 것과 동치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법의 적용과 이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는 100여 년 전 스탠더드 오일 분할과 궤를 같이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이 이러한 혁신 기업이 기존 거대 자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들은 데이터에 대한 독점적 권한과 기술력을 앞세워 기존 거대 자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한시적인 정치권력마저 위협할 정도로 영원불멸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지지율을 먹고사는 정치인은 시민의 보편적인 인식에 반하기 어렵다.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법의 칼날이 날카로울 수 있는 이유는 미국 국민이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 판결에 대한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기사의 댓글을 보면 법원의 판단에 긍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다.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미국 국민의 가치관 때문이지만, 독점기업을 막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도 효익이 크다는 인식 역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수탁자책무(fiduciary duty)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의 자산 보유자(asset owner)는 연금, 국부 펀드, 재단으로 정의된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전 세계적으로 10경원가량이다. 이 중 4분의 3인 7경5000조원가량이 연금 적립금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거칠게 표현하자면, 미국 자본시장의 가장 큰 전주(錢主)는 평범한 미국 국민이며, 투자의 목적은 노후 준비다. 따라서 미국의 자본시장은 단기적으로 큰 변동성이 발생하더라도 30년 이상의 장기 투자자가 가장 큰 과실을 누릴 수 있는 식으로 작동한다.
독점법을 위반한 기업은 사업에 큰 지장을 받게 되고 주가는 거의 필연적으로 하락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혁신을 촉진하고, 품질 향상과 가격 인하,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전체 자본시장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국민은 경험적으로 이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당장의 주가 하락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자본시장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기에 독점법 적용을 반기는 것이다.
미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빅테크의 반독점법 적용과 이에 대한 미국 정치권 및 국민의 반응은 우리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밸류업에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 자본시장이 강력한 것은 자유시장 경쟁이라는 원칙하에 단기적인 변동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장기적인 상승에 가장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자본시장의 장기적 성장이미국 국민의 노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부동산이 우리 국민의 노후 소득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인구 감소와 부동산 양극화로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 자본시장의 작동 원리와 그 저변에 깔린 상황을 잘 벤치마크하는 것이 밸류업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