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티 셰플러가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 9번 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로이터연합
스코티 셰플러가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 9번 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로이터연합

“스코티 셰플러는 공이 잘 맞고 팬 환호가 클 때는 일부러 발을 더 많이 움직이면서 스윙을 한다고 한다. 특이한 스윙 자세에 사람들이 흥미 있어 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체격도 크고 강인한 모습이지만 톰(김주형의 미국 이름 톰 킴)하고 장난도 잘 치고 유쾌한 성격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말대꾸하거나 사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톰하고 성경 모임도 열심히 하고, 여섯 살 아래 톰에게 골프나 생활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한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도 예전부터 몰던 차를 바꾸지 않는다. 골프 연습할 때는 사람이 또 바뀐다.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

지난 4월 남자 골프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 만난 김주형(22)의 어머니로부터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28·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김주형 가족과 셰플러 가족은 가깝다. 미국 텍사스 댈러스 인근에 같이 살고 여섯 살 차이지만 생일이 똑같은 셰플러와 김주형은 친형제처럼 스스럼없다. 

마스터스 본 대회가 시작하기 전날 마스터스 참가 선수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캐디백을 맡기고 함께 파3홀 9개를 도는 ‘파3 콘테스트’는 늘 화제를 모으는 명물 이벤트다. 기자는 우연히 셰플러와 함께 카트를 타고 이동하게 됐다. 

당시 영화배우 류준열이 김주형의 캐디로 나서기에 따라붙었다가 막내 여동생 몰리에게 캐디를 맡긴 셰플러가 함께 타고 가자고 권했다. 191㎝·91㎏의 거구인 셰플러는 삶과 일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지닌 청년 이미지였다. 1남 3녀의 둘째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누나, 여동생들과 골프를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를 경쟁하고 즐기면서 컸다”며 “부모님이 늘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게 최고의 행운이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경쟁심이 강해서 필드에선 열심히 골프를 하지만, 골프장을 벗어나는 순간 더는 골프가 내 삶을 지배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고 했다. 셰플러 가족은 마스터스를 비롯해 주요 대회에 늘 응원을 다닌다. 셰플러의 어머니(다이앤)가 로펌(법률 회사) 최고 운영자(COO)로 가계를 책임지고, 셰플러의 아버지(스콧)가 가사를 돌봐왔다. 셰플러가 어릴 때부터 골프장에 데려다주고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한 아버지는 “아들이 앞으로도 늘 겸손함을 잃지 않고 평범한 사람의 도리를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하는 셰플러의 부모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과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가정에서 셰플러가 자랐다는 걸 실감했다. 고교 시절부터 연인 사이었던 셰플러의 아내 메러디스는 당시 아들 베넷의 출산이 임박해 마스터스에는 오지 않았다. 셰플러 부부는 5월 8일(이하 현지시각) 아들 베넷을 낳고는 주요 대회에 함께 다니고 있다. 

셰플러가 우승 후 아들 베넷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
셰플러가 우승 후 아들 베넷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
셰플러가 페덱스컵 트로피를 들고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셰플러가 페덱스컵 트로피를 들고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셰플러가 아내 메러디스, 아들 베넷, 어머니 다이앤, 아버지 스콧, 막내 여동생 몰리와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
셰플러가 아내 메러디스, 아들 베넷, 어머니 다이앤, 아버지 스콧, 막내 여동생 몰리와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

‘포스트 타이거 시대’ 열어젖힌 셰플러

2024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이 막을 내린 9월 1일은 ‘포스트 타이거 시대’를 연 셰플러의 대관식이 열린 날이었다. 이날 셰플러는 2위 콜린 모리카와를 4타 차로 이기고 시즌 우승자를 상징하는 페덱스컵과 보너스 2500만달러를 거머쥐었다. 시즌 7승을 거둔 셰플러는 18번 홀 그린 옆에서 기다리던 아내 메러디스에게 태어난 지 석 달 지난 아들 베넷을 받아 번쩍 안아 올리며 기뻐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려 하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셰플러 모습에 팬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페덱스컵 순위 30명이 겨루는 투어 챔피언십에서 셰플러는 2전 3기 끝에 우승했다. 셰플러는 2022년과 지난해 페덱스컵 포인트 1위로 투어 챔피언십을 시작했으나 각각 로리 매킬로이(35·북아일랜드)와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에게 역전패했던 아쉬움을 풀었다. 

셰플러는 올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9· 미국)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성적을 올렸다.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를 포함해 PGA투어 7승과 파리 올림픽 금메달까지 차지했다. 셰플러의 시즌 7승은 1983년부터 따지면 비제이 싱(피지), 우즈에 이어 세 번째다. 우즈가 시즌 7승 이상을 네 차례 달성했기 때문에횟수로 따지면 여섯 번째 기록이다.

셰플러는 지난 시즌 정규 대회 2101만4343달러의 상금을 획득해 PGA투어 최초로 단일 시즌 상금 2000만달러를 돌파했다. 올해는 2922만8357달러로 3000만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여기에 정규 시즌 성적으로 따지는 컴캐스트 비즈니스 투어 1위 보너스 800만달러 등 올 한 해 모두 6222만8357달러를 벌어들였다. 셰플러는 미국의 유명 코치들이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스윙” “자칫 다칠 수도 있으니 아마추어는 따라 하지 말라”고 하는 독특한 스윙을 한다. ‘낚시꾼 스윙(fisher-man swing)’으로 유명한 한국의 최호성을 보는 듯하다. 샷할 때 두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데 특히 스윙이 큰 드라이버 샷은 어드레스 때와 공을 치고 난 뒤 양발의 위치가 확연히 다르다. 특히 왼발 앞쪽이 꺾이면서 뒤꿈치 바깥쪽만으로 버텨 양 발바닥의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보인다. 주니어 시절 부족한 비거리를 늘리려고 지면 반발력을 극대화하려다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선수를 압도하는 정확한 샷을 날린다. 셰플러는 올해 티잉 구역에서 그린에 공을 올리는 과정까지 투어 평균보다 라운드당 2.4타의 이득을 보는 초정밀 샷을 자랑했다. 지난 시즌 퍼팅 순위 최하위권이었던 셰플러는 로리 매킬로이의 조언에 따라 말렛 퍼터(mallet·퍼터 헤드 뒷부분이 뭉툭한 스타일)를 사용하면서 한결 좋아졌다. 

훈련 전 초보자용 그립 클럽 사용

셰플러는 훈련에서 기본 중 기본에 집중한다. 본격 훈련에 앞서 올바른 그립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초보자용 그립 클럽(grip club)을 사용한다. 클럽을 쥘 때 왼손과 오른손이 올바른 위치에 오게 한 클럽이다. 그리고 클럽 페이스가 목표를 향해 똑바로 있는지 확인한다. 프로 골퍼라면 대부분 사용하는 론치 모니터(샷의 각종 데이터를 보여주는 장비)는 이용하지 않는다. 어드레스를 올바로 하기 위해 얼라인먼트 스틱을 사용하고, 샷 하기 전 자신의 발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는 “골프는 예민한 운동인 만큼 늘 기본을 다시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셰플러는 “메이저 15승 포함 PGA투어 82승을 거둔 우즈와 견주려면 아직 멀었다”고 자세를 낮춘다. 메이저 2승 포함 통산 13승을 거둔 셰플러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궁금하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