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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카이스트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
카이스트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국내 총배출량의 70% 이상이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규제받고 있으며, 발전,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대부분의 다배출 업종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는 제3차 계획 기간이 운용 중이며, 2026년부터2030년까지 제4차 계획 기간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제4차 계획 기간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공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시점과도 맞물려 있어, 어떤 방식으로 제도가 운용될지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배출권 거래제 유상 할당, 온실가스 감축 유인 확대

배출권 거래제에 포함된 기업은 자사가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에 상응하는 배출권을 매년 정부에 제출해야 하며, 부족한 배출권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매하거나, 남는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판매함으로써 제도를 이행한다. 정부는 계획 기간마다 연도별로 규제 대상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배출 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이를 배출권이라는 형태로 생성한다. 이 중 일부를 기업에 계획 기간 시작 전 무상으로 지급한다. 이를 무상 할당이라고 하는데, 무상 할당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모든 온실가스를 공짜로 배출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설정하는 배출 허용 총량이 과거 배출량보다는 적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부가 배출권을 기업에 무상으로 나눠주지 않고, 기업에게 경매 등의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을 유상 할당이라고 한다. 무상 할당의 반대 의미로 유상 할당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기업이 반드시 정부로부터 해당 배출권을 구매할 필요는 없다.

무상 할당이든 유상 할당이든 기업이 온실가스를 1t 줄일 때 기회비용은 동일하다. 무상 할당에서 기업이 온실가스 1t을 줄이면 배출권 한 개를 팔 수 있고, 유상 할당에서 기업이 1t을 줄이면 배출권 한 개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동일한 효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상 할당에서 기업은 직접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감축 유인이 더 크다. 또한 유상 할당을 확대하게 되면, 탄소 비용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어 고탄소 제품의 가격이 오르게 됨으로써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유상 할당은 기업의 현재 배출량을 기준으로 배출권을 구매하기 때문에 기업이 감축 노력을 하는 만큼 배출권 구매 비용이 절약되지만, 무상 할당은 기업의 과거 실적을 통해 할당하기 때문에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과 같이 경기 침체로 인해 기업의 생산 활동이 줄어들면,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은 기업이 무상으로 받은 배출권을 판매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유상 할당이 무상 할당에 비해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소 가격이 제품 가격에 전가되었을 때 국내 기업의국제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점, 물가 상승을 유발하여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제에서는 모든 배출권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무상 업종을 선정하고 있고, 그 외의 업종인 유상 업종에 대해서는 90%의 무상 할당, 즉 10%의 유상 할당을 시행하고 있다. 무상 업종을 선정하기 위해서 무역 집약도와 탄소 비용 발생도라는 두 개의 지표를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철강, 석유화학 등 수출 중심 업종이나 시멘트 등 탄소 집약도가 높은 업종이 무상 업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반면, 발전 업종의 경우에는 전기라는 상품이 수출 또는 수입되지 않아 무역 집약도가 ‘0’이고, 이에 따라 유상 업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복합화력발전소. /뉴스1
복합화력발전소. /뉴스1

발전 업종 배출권 유상 할당 확대 논의 서둘러야

유럽연합(EU), 영국, 미국 캘리포니아와 동부 12개 주, 캐나다 퀘벡, 뉴질랜드 등 배출권  거래제를 운용하고 있는 선진 국가에서는 발전 업종에 대해 100% 유상 할당을 시행하고 있다. 발전 회사는 자사가 배출하는 모든 배출권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해외 사례와 산업 부문 대비 발전 업종의 감축 여력이 높은 점 등으로 인해 2026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계획 기간에 발전 업종에 대한 유상 할당 비율을 현재 10%에서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발전 업종에 대해 유상 할당을 대폭 확대한다고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효과와 영향은 전력 거래소가 운영하는 전력 도매시장과 일반 국민이 전기를 구매하는 소매시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전력 도매시장에서 발전 회사가 연료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력 도매시장에서는 각 발전소가 연료비에 배출권 비용을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 발전소의 가동 유무를 결정한다. 따라서 유상 할당이 확대되면 연료비가 저렴하지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 발전소의 전환을 더욱 빨리 촉진할 수 있다. 석탄에 비해 온실가스가 상대적으로 적게 배출되는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에도 어느 정도의 탄소 비용을 부담시킴으로써 무탄소 전력으로의 전환도 촉진할 수 있다. 발전 회사의 입장에서도 유상 할당의 확대가 기업의 직접적인 재무 부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전력 도매시장에서 배출권 구매 비용을 전력 가격에 반영하여 정산해 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전기 요금에 탄소 비용을 반영함으로써 전력 수요 자체를 줄이는 효과다. 발전 업종에 유상 할당을 대폭 확대했을 때 전기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에 대해서는 현재 온실가스 1t당 1만원 수준인 배출권 비용이 향후에 얼마나 오를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전기 사용 절감을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전기 요금의 상승은 국민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는 전기 요금에 탄소 비용을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 상승 속도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여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 업종의 유상 할당 비율을 빠른 시일에 대폭 확대하면서, 전기 요금에 탄소 비용을 반영하는 속도를 천천히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것이 가능하다면, 온실가스를 빠른 속도로 줄여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도 전기 요금의 급격한 상승을 염려하는 산업계 및 일반 국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발전 업종에 100% 유상 할당을 시행하고 있는 해외에서는 요금 가격에 배출권 비용이 전가되지 않도록 배출권 경매 수입 중 일부를 전기 소비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는 전력 다소비 수출 업체를 대상으로 요금 가격에 반영되어 있는 배출권 비용의 최대 75%를 지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없는 전력 배전 업체에 배출권을 무상 할당하고, 이를 판매한 수입으로 전력 도매시장의 높은 가격이 소매가격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면, 전기 요금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발전 업종에 대한 유상 할당을 대폭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소비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지원을 할지에 대해서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지만, 이러한 논의가 완료될 때까지 유상 할당 확대를 기다릴필요는 없다. 당장에는 발전 업종 유상 할당 확대에 따라 추가되는 모든 비용을 전기 소비자에게 일단 지원하여 유상 할당 확대의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하고, 그 후에 지원 대상에 대한 논의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계획 기간에 대한 논의 시점이 얼마 남지않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발전 업종 유상 할당 확대와 전기 요금 보조에 대한 논의를 관계 부처들이 모여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