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인공지능(AI) 기술이 몇 마디 명령어로 정교한 가상 영상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이는 딥페이크, 가짜 뉴스 등 부작용을 야기했고, 서방 주요 국가는 AI 규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는 일부 규제로 서방의 AI 혁신이 저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월 5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유럽연합(EU)·영국 등 10개국이 ‘유럽 의회 AI 조약’에 서명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이 조약은 민간·공공 시스템 관련 규제에서 인권 및 민주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며, AI 시스템과 관련해 유해하거나 차별적인 결과물에 대해 조약 당사국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EU는 세계 최초로 AI 규제 법안인 ① ‘AI 법(AI Act)’을 제정해 8월 1일 발효한 바 있다. 미국은 연방 의회 차원에서는 AI 규제를 위한 포괄적 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다만 기술 기업이 모여 있는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업계의 반대에도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 대해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최근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스콧 위너에게 서한을 보내 “캘리포니아의 AI 혁신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EU가 AI 법 초안을 공개했을 때도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규제나 정부 간섭이 상대적으로 많은 권위주의 국가는 AI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을까. 이에 대해 필자는 “민주주의 국가보다 아랍에미리트(UAE)나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가 AI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권위주의적 통치에 AI를 활용한 안면 인식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정부 지원을 업고 방대한 공공·민간 데이터를 AI 모델 훈련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U는 세계 최초로 AI 법을 제정해 8월 1일 발효했다. /셔터스톡
EU는 세계 최초로 AI 법을 제정해 8월 1일 발효했다. /셔터스톡
안젤라 후유에 장 서던캘리포니아대 법학 교수‘High Wire: How China Regulates Big Tech and Governs Its Economy’ 저자 사진 ⓒ프로젝트신디케이트
안젤라 후유에 장 서던캘리포니아대 법학 교수
‘High Wire: How China Regulates Big Tech and Governs Its Economy’ 저자 사진 ⓒ프로젝트신디케이트

지난해, UAE는 오픈소스 거대 언어 모델(LLM)인 ‘팰컨’을 출시하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놀랍게도 팰컨은 메타(페이스북)와 알파벳(구글) 같은 빅테크의 LLM을 능가하거나 동등한 수준의 성능을 보였다.

이후 UAE는 AI 모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글로벌 AI 경쟁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고, 이런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 4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UAE 주력 AI 기업인 G42와 15억달러(약 2조76억원) 규모 투자 협약을 맺으며 소수 지분을 확보했다. 이는 AI 영역에서 UAE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UAE가 AI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로 막대한 국가 지원, 풍부한 자본, 저렴한 전기료 등을 꼽는다. 이 모든 것이 LLM을 훈련하는 데 필요한 요소지만, 간과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기술혁신을 국가 권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권위주의 체제’다. UAE만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같은 권위주의 체제 국가는 국내 디지털 감시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AI 개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강력한 경쟁 우위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안면 인식 기술은 공공 보안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감시하고 반체제 의견을 진압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UAE의 AI 기업은 서구 기업에 비해 엄청난 이점을 누리고 있다. 데이비드 양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와 여러 학자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 정부와 계약을 맺은 AI 기업은 상대적으로 더 혁신적·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방대한 공공·민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 승인을 받은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UAE 기업도 병원과 국가 지원 산업의 익명화된 의료 데이터로 AI 모델을 훈련할 수 있다. 반면 서구 국가에서는 안면 인식 기술이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8월 1일 발효된 EU의 AI 법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공장소에서 안면 인식 기술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중국과 UAE의 기업은 훨씬 더 관대한 규제 환경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권위주의 체제 국가에서 데이터 프라이버시나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AI 개발 촉진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규제가 관대하다.

권위주의 체제 국가에서는 소비자도 AI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Ipsos) 조사에 의하면, 걸프 지역의 또 다른 권위주의 국가이자 기술적 야망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AI에 낙관적인 국가로 꼽힌다. 또한 권위주의 정부는 국영 기업과 ② 국부 펀드를 통해 자원을 기술혁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UAE와 중국 모두 글로벌 AI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하향식 국가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논문에서 설명했듯이 중국 정부는 단순한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 이 분야의 공급자이자, 고객이자, 투자자이기도 하다.

UAE는 2017년 세계 최초로 AI 담당 국무장관을 임명했다. AI 담당 국무 장관은 민관 파트너십을 촉진하고 기업이 필요한 학습 데이터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팰컨 AI 모델은 국책 연구 센터인 기술혁신연구소(Technology Innovation Institute)에서 개발했다. UAE의 국부 펀드 지원을 받고 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이 의장을 맡고 있는 G42는 다양한 국가기관과도 협력하고 있다. 또 UAE는 기술 발전을 이끄는 데 있어 학술 연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계 최초의 AI 중심 대학 모하메드 빈 자예드 AI대도 설립했다.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은 서구 국가의 제재 대상이 되고 있지만, UAE는 이러한 필수 자원에 대해 제한 없는 접근이 가능하다. 지난해 G42는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세레브라스와 1억달러(약 1339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두 기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AI 학습용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올해 초에는 올트먼 CEO와 반도체 신사업 투자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UAE의 성공 요인은 아직 잘못 평가되고 있다. 올트먼 CEO는 최근 “UAE가 전 세계를 위한 ③ ‘규제 샌드박스’ 역할을 하면서 AI 규제에 대한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UAE의 접근 방식을 높이 평가하는 올트먼 CEO는 이러한 방식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근본적인 점을 간과하고 있다. 

Tip

EU 내에서 AI 개발·사용·유통을 규율하는 규정. AI 기술을 허용할 수 없는 기술, 높은 위험, 중간 위험, 낮은 위험 등 네 단계로 분류하고 기술 개발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발효 6개월 뒤부터 부분 시행되며, 2026년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법을 위반한 기업은 경중에 따라 전 세계 매출의 최대 7%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투자용으로 출자해 만든 펀드. 중동 지역 국가가 원유를 수출해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국가 차원에서 운용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 국부 펀드로는 중국의 중국투자공사(CIC), 싱가포르의 싱가포르투자청(GIC), UAE의 아부다비투자청, 한국의 한국투자공사(KIC)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업이 신제품이나 신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 그동안 기존 규제로 인해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신산업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시장에 출시되거나 시험·검증받을 수 있도록 규제 특례를 부여한다.

안젤라 후유에 장 서던캘리포니아대 법학 교수

정리=이주형 기자

정리=오윤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