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워가 한창인 오전 8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기자가 탑승한 자율주행차 우측에서 옆 차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들어온 돌발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는 이미 끼어들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더니 비어있는 좌측 차선으로 핸들을 꺾었다.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와 트래픽콘(안전 고깔)을 만났지만, 이마저도 능숙하게 피하며 정체 구간을 거뜬히 빠져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자 와이퍼로 앞 유리 빗물을 닦아내는 여유도 보였다.
이날 기자가 구글의 자율주행 로보택시(무인 택시) ‘웨이모’를 탄 지 10분 만에 겪은 일이다. 웨이모는 2009년 구글의 자율주행 사업부로 출범해 2016년 분사한 독립 회사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LA)와 피닉스 등 세 곳에서 운행 중이다. 캘리포니아공공시설위원회(CPUC)로부터 작년 8월 서비스 상용화를 허가받았고, 올해 6월부터 일반 이용자 대상으로 24시간 운행을 시작했다. 7월 기준 유료 승차 건수도 10만 건을 넘어섰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웨이모 300여 대가 운전자 없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앞으로 운행 지역과 운행 대수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앱으로 손쉽게 호출… 우버와 가격도 비슷
웨이모를 이용하려면 ‘웨이모 원(Waymo One)’이란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아야 한다. 이날 기자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있는 ‘파웰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모스콘센터’를 목적지로 설정했다. 가격은 20달러(약 2만6700원). 다른 자동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 운임(19달러)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호출을 끝내자, 약 7분 뒤 웨이모가 탑승지에 도착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호출 과정은 전체적으로 우버나 카카오택시 앱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이용자가 원하는 모든 지점을 탑승지로 설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웨이모는 교통 상황과 도로 환경을 고려해 정차가 가능한 곳에서만 이용자를 태운다. 러시아워처럼 도로가 혼잡할 경우 2~3분가량만 정차한다. 이 시간 안에 웨이모가 지정한 탑승지로 이동해 차에 탑승해야 한다. 대신 앱이 이용자 위치를 기준으로 나침반처럼 탑승지 위치를 알려준다.
탑승지에 도착한 웨이모는 재규어의 전기 소형유틸리티차(SUV) ‘I-PACE’였다. 전면, 후면, 상부에 라이다(LiDar)와 레이더, 카메라 29개가 달려 있었다. 로봇청소기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차고지로 돌아간다. 이것도 로봇청소기와 닮은 점이다. 다만 아직 배터리 충전은 차고지에 있는 웨이모 직원의 손을 거쳐야 한다.
웨이모에 탑승하려면 우선 스마트폰의 블루투스와 차를 연결해야 한다. 문손잡이가 매립형이기 때문에 앱으로 문손잡이를 밖으로 꺼내야 한다. 웨이모의 문을 열고 살펴본 내부는 여느 차와 다르지 않았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운전석 자리에 앉을 순 없다. 웨이모는 운전석 자리를 제외하고 최대 4명까지만 탑승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안정적 주행감… 인간보다 사고율 7배 낮아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대시보드 중앙 인포테인먼트 화면의 ‘주행 개시(Start ride)’ 버튼을 터치하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호등과 다른 차의 움직임, 보행자, 장애물을 스스로 인식하며 조금씩 속도를 올렸다. 전체적으로 승차감은 안정적이었다. 급가속이나 급정차는 없었다. 전기차 특유의 울렁거림도 느끼지 못했다. 교통 사정에 따라 주행 경로가 실시간으로 바뀌었는데, 스스로 방향지시등을 켜고 핸들을 한껏 꺾어 차선을 넘나들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거리에서 신호의 남은 시간과 앞차와 간격을 고려해 꼬리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녹색 신호인데도 앞차가 아직 사거리를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다면 가까이 붙지 않았다.
만약 운행 중인 웨이모의 스티어링 휠(핸들)이나 레버를 만지면 어떻게 될까. 직접 와이퍼 작동을 위해 우측 레버를 건들자, 경고음과 함께 고객센터와 자동으로 통화가 연결됐다. 고객센터 관계자는 “차내 우측 레버를 건드린 것으로 확인됐다. 무슨 일이 있느냐” 고 물었고, “실수로 만졌다”고 답하자 “한 번 더 건들면 규정 위반으로 이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가 종료됐다.
일각에서는 웨이모의 안전성에 의문을 표한다. 아직 인간 수준의 위기 및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우버 기사 피터도 “기계의 운전 실력을 믿을 수 없어 당분간 웨이모를 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웨이모에 따르면, 미국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약 94%는 인간의 실수로 발생한다고 한다.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가 웨이모 자율주행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인간이 운전할 때보다 물적 손해배상 청구 건수가 4분의 1로 줄고, 상해 사고 건수도 7분의 1로 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크루즈는 내년부터 우버에 자율주행 차량을 공급한다고 지난 8월 발표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사고를 낸 후 운행을 정지시켰던 크루즈 로보택시가 운영 재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협력이다. 우버 역시 이번 협력을 2018년 발생한 사망 사고로 중단한 자율주행 서비스를 확대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우버는 현재 애리조나주에서 웨이모와 손잡고 자율주행 차량 서비스와 음식 배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韓 자율주행 데이터 표준
미국에서도 쓴다
한국이 만든 자율주행 교통 신호 표준이 미국에서도 인정받았다. 9월 23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한국이 제안한 ‘자율주행 교통신호 데이터 표준(TLSM)’이 미국 자동차기술자협회 표준(SAE J2735)의 2024년 개정판에 반영됐다. SAE J2735는 자율주행 데이터 형식을 정의한 표준으로, 전 세계 자율주행 업계에서 사실상 지배적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TLSM은 자율주행차와 교통 인프라, 스마트 기기 간 소통을 위한 일종의 공용 언어다. 자율주행 안전성을 높이고 자동차 공유, 원격 모니터링 등 미래 모빌리티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은 “우리 자율주행 데이터 표준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라며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 및 산업 활성화의 기본 토양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