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목표 범위로 지속 가능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정책은 ‘충분히 제한적’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이 단행된 지 일주일여가 지난 9월 24일(이하 현지시각) 호주중앙은행(RBA)의 미셸 불럭(Michele Bull-ock) 총재는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35%로 동결한 후 “가까운 시일 내 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금리를 내린) 국가 대부분이 기준금리를 5% 혹은 5% 이상으로 올렸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욱 긴축적”이라고 했다.
“2024년 1~8월 전년 대비 11% 증가한 주택 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의 과도한 쏠림을 막기 위해 신용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9월 19일 기준금리를 2.00%로 동결한 대만 중앙은행(CBC)의 양친룽(楊金龍)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만 중앙은행은 이날 은행 예금에 대한 지급준비율(이하 지준율)을 1%포인트 인상하고 주담대 담보 인정 비율(LTV)을 축소하는 등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양 총재는 “지난 8월 말 현재 부동산 대출 집중도는 37.5%로 역사상 최고점인 37.9%에 매우 근접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로 깜짝 인상한 일본은행(BOJ)은 9월 20일 정책 결정 회의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금리 인상이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청산을 촉발해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의식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부동산 급등 호주·대만, 피벗 기대감 차단
미 연준이 9월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 5.25~5.50%였던 기준금리를 4.75~5.0%로 인하한 빅컷 이후, 중국은 인민은행(PBOC)이 9월 24일 은행 지준율 0.5%포인트 인하 등 1조위안(약 190조원) 유동성 공급 중심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세계경제의 G2(주요 2개국)인 미국, 중국의 통화정책 완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호주, 대만 등이 금리 인하로의 피벗(pivot·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즉각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이유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자국 내 경제 상황 때문이다. 일본은 8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비 2.8% 오르며 4개월 연속 상승 폭을 확대했다.
호주 또한 2022년 이후 계속 호주중앙은행의 목표 범위(2~3%)를 넘어서고 있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때문에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호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초 3% 중반대로 하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5월 4%, 6월 3.8%로 반등 후 7월 3.5% 수준을 유지했다. 호주 중앙은행의 금리 동결 후인 9월 25일 발표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로 내려왔지만, 불럭 총재는 하루 전(24일) 통화정책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내일 물가 상승률 수치가 앞에 ‘2 자’가 붙는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호주중앙은행은 2022년 5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가 12년 만에 최고치인 4.35%까지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주택 가격(8월 말 현재)이 19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금리 인상을 단행한 대만 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10년 만에 가장 높은 2.00%로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주택 가격은 TSMC 본사가 위치한 신주시 등 대도시 중심으로 폭등했다. 올해 2분기 기준 신주시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8.1% 상승했다. 타이난 등 TSMC 공장이 있는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도 12.1% 올랐고, 고가 주택이 많은 수도 타이베이도 주택 가격이 7.9% 상승했다. 대만 중앙은행은 올해 초부터 금리와 지준율을 올리는 등 긴축을 강화했지만, 반도체 호황으로 2024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8%로 전망되는 등 경기가 살아나고 있어, 규제가 부동산 안정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한국은행, 10월 기준금리 방향은?
미 연준의 빅컷에도, 자산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동결을 선택한 호주와 대만의 사례는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한국은행(이하 한은)에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시각이다. 대만은 주력 업종인 반도체 산업 의존도가 높다는 측면에서, 호주는 대외 개방 수준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경제구조가 유사하다.
전문가들은 서울 주택 가격 상승을 방치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산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난 6월 0.56%, 7월 1.19%, 8월 1.27%씩 올랐다. 주담대가 6월 6조2000억원, 7월 5조6000억원, 8월 8조2000억원씩 늘어난 영향이다. 금융 감독 당국이 고강도 대출 규제에 나서면서, 9월 첫째 주(2일 기준)와 둘째 주(9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0.21%와 0.23%로 6년여 만에 최고치였던 8월 셋째 주(0.32%) 대비 둔화했지만, 부동산 안정을 확신하기에는 미약하다는 시각이 많다.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출 규제를 시행했음에도, 한은의 ‘9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주택 가격 전망 CSI(동향 지수)가 2021년 10월 이후 최고치인 119로 치솟는 등 집값 상승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출 규제 등 금융 당국의 거시 건전성 조치가 집값 상승 기대감을 안정시켰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하려면 몇 달이 더 걸릴 수 있다”면서 “한은이 10월이 아닌 11월에 금리를 인하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연준 빅컷을 계기로 정부 측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는 게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25일 관훈토론회에서 “미국이 빅컷을 단행했으니까 (금리 인하에 대한) 외부 요인의 제약은 많이 없어졌다”면서 “단기적으로는 (가계 부채 관리보다) 내수 회복이 조금 더 우선”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9월 24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유지했던 통화정책이 전환점(pivot)을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9월 30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를 방문해 최상목부총리와 구조 개혁 구상 등을 논의한다.
190兆 中 경기 부양안, 韓 경제 파급효과는?
9월 24일 판궁성(潘功勝) 인민은행 총재가 직접 발표한 중국의 경기 부양안에는 은행 지준율 0.5%포인트 인하(7→6.5%), 정책 금리인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 0.2%포인트 인하(1.7→1.5%) 등이 모두 포함됐다. 이를 통해 1조위안(약 19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판 총재는 “연말까지 3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어 상황에 따라(지준율을) 0.25~0.5%포인트 더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추가 부양 가능성도 시사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이하 블룸버그)는 보고서에서 “금리 및 지준율 인하부터 주식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까지. 모든 조치를 함께 제공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기대 이상의 부양안이 예상보다 일찍 나온 것은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불룸버그는 이번 부양안을 통해 2024년 중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추정했다. 블룸버그의 기존 전망치(4.7%)를 감안하면 중국 정부의 목표치인 5% 안팎에 가까운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025년까지의 성장률 제고 효과는 1~1.1%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의 경기 부양안이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권효성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GDP 성장률이 1%포인트 올라가면 한국의 성장률을 0.2%포인트 제고하는 파급효과가 있다”면서 “내수 부진을 완화할 수 있는 경기 상방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