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스톡
/셔터스톡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단편소설 ‘아Q정전’ 에는 ‘아Q’라는 이름의 지질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동네 건달들이 아Q를 때리면 ‘네 놈들은 내 아들이다. 아비를 때리는 못된 놈들, 세상이 말세다’라고 생각하면서 동네 건달을 자기 아들놈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위안을 한다. 또 다른 건달들에게 혼날 때는 자신을 버러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경멸하는 데 일인자네. 경멸한다는 앞 구절을 빼면 일인자라는 말만 남는다. 그럼 나는 일인자지. 장원급제만 일인자인가?’라며 기분 나쁜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기분 좋게 만든다. 이것을 아Q의 ‘정신 승리법’이라고 한다. 정신 승리법? 초긍정 사고 같기도 하고 어째 말도 안 되는 자기 위안 같기도 하다.

정신 승리에는 두 개의 심리적인 자기방어가 사용된다. 첫째는 부정이다. 부정은 아예팩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건달들에게 맞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그 사실을 부정하고 ‘아들놈’에게 맞았다고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한다. 부정은 가장 심각한 병적인 자기방어다. 두 번째는 합리화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해석을 하는 것이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가 대표적이다. 점프력이 달려서 포도를 못 먹은 여우가 ‘저 포도는 실 거야. 그래서 내가 열심히 안 뛴 거야’라고 변명을 한다. 자기 못남을 인정하는 대신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이다. 부정과 합리화 뒤에는 왜곡이 뒤따른다. ‘건달’을 ‘아들’로 바꾸고 ‘경멸의 일인자’를 그냥 ‘일인자’로 바꾼다.

정신 승리법이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저급한 자기 위안이고 병적인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모자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니 변화나 성장이 없다는 것이다. 눈 감고 귀 막고, 못난 모습 그대로, 아무 문제 없다고 살아가는 꼴이다.

이런 정신 승리법을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용한다면 최악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정신 승리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집단이 정치인이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뒤에 어느 야당 정치인이 ‘25만 표 차뿐이 안 되니 실제로 졌다고 할 수 없다. 투표안 한 사람 중에 우리 당 지지자가 더 많다’ 고 했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21대보다 우리 당 국회의원이 5명이 늘었으니 패배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역대 정부마다 ‘우리의 개혁을 국민이 못 알아준다’면서 아쉬움을 호소한다. 모두 정신 승리법이다. 이런 병적인 자기방어 속에서는 뼈저린 반성과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정신 승리법과 초긍정 사고의 차이가 뭘까? 그건 팩트에 대한 인정 여부다. ‘우리는 졌지만 다시 이길 수 있다’와 같이 팩트를 인정하되 좌절을 넘어 새로운 결과를 얻겠다는 마음이면 긍정 사고다. 반면 ‘우리는 안 졌다. 그러니 문제 될 게 없다’면서 망상적인 자기 위로에 빠지는 게 정신 승리다. 긍정 사고와 정신 승리는 비슷해 보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