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은 중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역사적인 미국 방문을 통해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나고 텍사스 시몬톤에서 열린 라운드업 로데오에 참석했다. 그리고 덩샤오핑은 양국 관계가 빠르게 정상화될 것을 암시하는 ① 미·중 과학기술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기술, 과학자, 학자, 학생 교류뿐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양국 간 공동 프로젝트 추진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45년이 지난 현재 그 역사적인 협정은 미·중 관계 긴장 고조로 인해 파기(5년 주기 연장 불발)됐다. 이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 관세 부과, 미국 첨단 기술의 대중국 수출 금지, 러시아 군수품 보급 관련 42개 중국 기업 무역 제한 목록에 추가하는 조치에 이어 일어난 일이다.
미국과 중국 간 경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악화했다.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경제 문제 중 몇 가지는 양국 합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산재한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선 두 경제 대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다. 그런데 최근 양국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생겼다. 설리번 보좌관이 지난 8월 중국베이징을 방문하면서 향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건설적인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문이 차기 미국 행정부에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더 잘 인식시키고 협력을 강화하는 조처를 하도록 기여한다는 점이다.
양국 관계가 개선될 출발점은 인공지능(AI) 규제에 대한 협력일 수도 있다. 양국 간 협력이 없다면 양국 모두 혁신적인 AI 기술 개발에서 뒤처질 수 있어서다. 미·중 과학기술협정이 다시 체결된다면 이는 AI 기술 규제를 논의하기 위한 프레임워크가 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대국(大國)만이 기후 위기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한 양국 간 협력도 필요하다. 2023년 말 발표된 ② 서니랜드 성명은 양국이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양국이 협력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친환경 제품 제조에 있어 중국의 강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중국이 보조금 제도를 더욱 투명하게 운용한다면 태양광 패널, 풍력발전기, 전기자동차를 세계시장에 덤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미국이 납득하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중국산 친환경 수입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철폐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무역 전반에 걸쳐 더 많은 개선이 이뤄질 수도 있다. 중국이 제조품의 자국 내 소비를 늘리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면 미국은 양국 간 무역 불균형과 중국의 세계무역 흑자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무역 균형을 조정한다면 양국 간 관세 인하가 촉진되고 전 세계적으로 무역이 다시 원활해질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또한 소득이 낮은 저발전 국가의 친환경 전환을 위해 필요한 자금과 이들 국가의 채무를 줄이기 위해 함께 힘써야 한다. 양국은 또 우주에서 과도한 경쟁을 규제하는 제도에도 합의해야 할 것이다. 펜타닐(Fentanyl) 및 기타 마약의 생산과 밀매에 대응하는 데도 양국의 상호 관심사는 이미 분명하다. 물론 인권 문제, 대만 문제 등 양국 간 협력에 심각한 장애물이 남아 있고, 중국은 미국의 무역 및 기술 규제 정책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다.
경제학자 ③ 프레드 버그스텐(Fred Berg-sten)이 제안한 것처럼 미국과 중국은 협력할 수 없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분야와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가능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카멀라 해리스는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중국의 인권 침해를 강조하고 미국 노조의 중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하게 된다고 해도 블라디미르 푸틴,빅토르 오르반, 김정은 같은 다른 독재자들을 포용했던 방식으로 시진핑 주석을 포용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정치가 양국 관계 진전의 유일한 장애물이라는 말은 아니다. 최근 와이탄 금융 서밋 참석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출입국 심사대에서 미국 정부에서 일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입국을 위해 심사대 직원에게 내가 근무하는 (캘리포니아대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연방정부가 아니라는 점을 길게 설명해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양국 관계에 대해 낙관적으로만 생각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의 국제 정세에 대해 확실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전 세계는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Tip
①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체결된 첫 양자 협정으로,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과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공동 서명했다. 이 협정을 통해 농업, 에너지, 환경, 보건, 항공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연구, 과학자 교류, 기술혁신을 위해 양국 간 협력을 약속했다. 5년마다 연장해 온 이 협정은 2023년 8월까지 지속됐지만, 미·중 갈등 심화로 연장이 불발됐다. 6개월씩 두 차례에 걸쳐 총 1년간 협정을 연장했지만, 8월 27일 협정이 최종 만료됐다. 미국 내에서 중국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군사력을 증진하는 데 사용되는 협정이라면서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컸던 탓이다.
② 2023년 11월 발표된 서니랜드 성명은 기후 위기에 대한 미·중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이 성명은 미국과 중국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COP28)을 앞두고 공동 발표한 것으로, 두 나라는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다양한 조처를 할 것을 약속했다. 특히, 메탄 및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기술 교류 및 정책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양국은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경제 전반에 걸쳐 이행하기로 합의하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③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프레드 버그스텐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설립자이자 초대 소장이다. 그는 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버그스텐은 미·중 관계에서 ‘조건부 경쟁적 협력’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경제 리더십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거나 서구식 관점을 중국에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봤다. 그는 두 나라는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문제에서 협력해야 하며, 경제 분야에서의 리더십은 국가 안보 분야와는 가치를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다자간 무역 체제 개혁을 위해 중국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