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높은 건축물, 권력과 부의 상징
이상적인 천장 높이 2.7~2.8m
1979년에 나온 대중가요 중에 ‘석탑’이라는 노래가 있다. 정성희가 작사하고, 이규대가 작곡한 것으로 나온다. 가사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돌덩이/ 이름 모를 석공의 땀과 눈물이 흘러내리는/ 은은한 너의 모습 은은한 너의 모습/ 바람이 놀다간 바람이 놀다간 너의 가슴속엔/ 석공의 땀이 어린 석공의 손때 묻은 징과 쇠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들려온다 들려온다.”
이 노래는 당시에는 크게 히트하지 않았지만, 한 대학의 응원가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 노래를 작사한 이가 상정한 석탑이 말 그대로 돌로 만든 단순한 탑이었는지, 혹은 다른 어떤 석조 건물을 통칭하는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높고 웅장한 건물에 압도당한 느낌과 아울러 그 건축물을 만들었던 당시의 현장 분위기, 무명으로 헌신한 석공을 기리는 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군더더기 없는 가사가 경쾌한 곡조 속에 잘 녹아있다.
올해 여름휴가를 나는 유럽에서 ‘한 달 살기’로 보냈다.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을 방문한다는 것 빼고는 아무런 정해진 계획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평소 3000보도 채 걷지 않던 내가 유럽에서는 열흘 이상의 일정을 하루 평균 대략 2만~3만 보를 주파하는, 나로서는 나름대로 강행군의 나날을 보냈다.
짧은 기간에 유럽 여러 도시의 박물관은 물론이고 궁궐이나 성채, 구도심을 거니는 일은 멋진 경험이었다. 그만큼 체력이 필요한 일종의 노동이기도 했다. 이런 여정 속에서도 나는 몸이 지칠 때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도심에 있는 큰 성당이나 교회에 들러 재충전을 했다.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성당의 높은 천장이나 천장화, 혹은 내부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슈테델뮤지엄을 한나절 이상 관람하고 다음 여정은 박물관 맞은 편의 다리를 건너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보기로 했다. 너무 힘들고 지친 우리 부부는 근처에 보이는 성당에 들렀다. 평일 낮에도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어서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상대적으로 작은 성당이었지만, 높은 천장과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함께 아늑한 분위기가 지친 몸과 마음에 신선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을 찾았을 때도, 개관 시간부터 마감 시간 직전까지 하루 종일 집중과 몰입감에 빠져 관람하느라 사지가 녹작지근했다. 이렇게 지친 몸을 위로해 준 것은 박물관 내부의 레스토랑이었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원래 궁전이었는데 박물관으로 바뀐 것이다. 내부 시설은 모두 천장이 높고 화려한 장식으로 심미감을 선사했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오스트리아 생맥주를 한 잔 들이켜는 순간 목마름도 해소되고 피로도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성당이나 궁궐 같은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을 선호하고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대성당 효과(Cathedral Effect)’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은 대성당이나 궁궐, 성채처럼 천장이 높고 넓은, 이른바 열린 공간(open space)에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고 더 추상적이고 더 창의적 사고를 하며, 더 자유롭고 더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어떤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도 천장이 높을수록 사람이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낮을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결과가 있다. 다른 연구에서는 가상현실(VR)을 이용하여 일종의 가상 미술관을 만들어 사람의 반응을 조사해 봤다. 사람은 천장이 높을수록 기쁜 감정이 증가했고, 낮을수록 두려움이나 분노 수준이 증가했다.
우리 인류는 초기부터 좁고 낮은 공간은 포식자로부터 회피를 어렵게 만드는 반면, 넓고 개방된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한 공간은 위험 요소를 미리 발견하고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남아서 넓은 시야와 개방감을 주는 장소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고 진화심리학자는 추정한다.
또 성당이나 궁궐처럼 천장이 높은 건축물은 옛날부터 강한 권력과 높은 지위를 가진 권력자와 엘리트가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자연스럽게 천장이 높은 건축물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됐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다수의 추종자가 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넓은 공간은 풍부한 자원과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진화 과정에서 사람은 공간이 넓을수록 물과 식량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스레 넓은 공간을 더 선호하는 본능이 발달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람은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을 선호한다. 미국에서도 9피트(2.7m) 이상의 천장을 가진 주택이 8피트(2.4m) 높이의 천장을 가진 집보다 평균 11% 이상 비싸게 팔렸다는 통계가 있다.
건축 및 환경심리학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도시 거주자는 시간의 90% 이상을 실내에서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천장이 낮고, 창문이 작고, 칸막이나 벽이 촘촘한, 이른바 닫힌 공간(close space)에 있을 때는 열린 공간에 있을 때보다 일종의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는 코르티솔의 분비가 증가한다고 한다.
우리 일상 주거지의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의 이상적인 높이는 얼마일까. 연구에 의하면, 이상적인 천장 높이는 2.7m에서 2.8m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의 아파트 평균 천장 높이는 대개 2.3m에서 2.4m이고 드물게 2.5m 이상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2.2m 이하도 수두룩하다. 구미의 학자가 이상적이라고 한 천장 높이와는 최소 30㎝ 이상 차이가 있다. 거칠게 말하면 안타깝게도 한국인은 구미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닫힌 공간에 살고 있고, 결과적으로 코르티솔 분비도 많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박물관이나 공연장 같은 열린 공간을 일부러 더 많이 찾아다닐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천장 자체가 없는 더 넓은 창공을 천장으로 가진 푸른 자연을 더 많이 찾아다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찾아보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요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사람 사이에 캠핑 붐이 이는 것도 열린 공간을 찾는 무의식적 심리가 발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텐트나 캠핑카의 낮은 천장은 오히려 닫힌 공간을 상징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캠핑하는 사람은 지겨운 도심의 일상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으로 나왔다는 사실과 우리 DNA에 뿌리 박힌 노마드 본능으로 잠자는 순간의 텐트와 캠핑카의 낮은 천장은 뇌리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캠퍼의 마음은 이미 무한정 열려 있는 드높은 창공이 자신의 ‘마음속의 천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천장이 낮은 한국의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있으려면 좀이 쑤신다. 학교 연구실에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다. 천장이 높고 백색소음이 있어 집중하기 꽤 좋은 카페는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공유 오피스에 관심이 많다. ‘멀쩡한 집 놔두고, 학교 연구실 놔두고 공유 오피스가 뭐냐?’ 이렇게 타박부터 할 게 분명한 아내에게,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이 어쩌니, 대성당 효과가 저쩌니 침을 튀겨가며 설명해야 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나는 목하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