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
이 말은 필자가 학창 시절 시험을 앞두고,유학을 결정해야 할 때, 혹은 인간관계나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을 때마다 아버지가 툭 던졌던 말이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이 희미해질 즈음,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때는 내가 철이 없었지.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왜 그때는 그렇게 괴로워했을까?’ 인생을 좌우할 것 같던 일이 결국 하나의 기억 속 단편으로 남았고, 지금 이렇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참 우습기도 하다.
물론 필자가 인생을 다 꿰뚫어 볼 정도로 깊은 통찰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생활을 배워나가는 젊은 세대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점점 더 이해가 되는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간단해 보였던 일이 점점 복잡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 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던 일이 예상보다 쉽게 풀리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복잡함’과 ‘단순함’은 독립된 개념이 아니라, 어딘가 서로 비밀스럽게 내통하는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 또한 “예술이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보이게 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예술도 인간의 인생사와 똑같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음악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약 15년 전 독일에서 들었던 우리 시대의 피아노 연주 대가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피아노 독주회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는 독일 낭만파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후모레스케’를 연주했다. 이 작품은 슈만 특유의 낭만적 감성, 유머 그리고 복잡한 내적 갈등이 교차하는 매력적인 곡이다. 특히 첫 부분, 슈만이 지시한 ‘단순하게(einfach)’라는 지시어를 따라 연주가 시작됐을 때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시간이 멈췄다기보다는 내 머릿속 의식의 흐름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 더 정확할 것이다. 몇 개의 음으로 이뤄진 단순한 선율이었지만 그 안에는 연주자와 작곡가가 표현하는 무한한 우주가 담겨 있었다. 그 세계가 너무 커서, 당시 나는 그 감동을 충분히 인지하고 음미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비유하자면, 소콜로프의 연주는 슈만의 단순한 형식 안에 깊은 감성과 이성을 압축해 담아낸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압축된 정보가 내 귀에 도달해 풀릴 때, 그 양이 너무도 방대해 컴퓨터가 과부하에 걸린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 작품은 난해하든 쉽든 상관없이 우리에게 직관적인 감동을 선사하곤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15년 전 소콜로프의 연주를 들었을 때처럼 말이다. 때때로 예술은 우리의 기존 생각과 감각을 뛰어넘어 다가오며, 그로 인해 무의식적인 저항감마저 생기게 한다. 슈만의 ‘후모레스케’ 역시 처음에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감춰진 복잡한 정서와 의미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악보를 읽어나가며 작곡가의 사고에까지 도달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같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문학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아름다움이란 다름 아닌 두려움의 시작이며, 우리가 간신히 그것을 견디고 있을 때, 그것은 차분히 우리를 파괴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경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예술이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뒤흔들 때, 그 저항을 견뎌내는 인내와 노력이 있을 시 비로소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감동의 압축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해제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때의 감동은 두려움보다는 친숙한 감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예술 작품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게 다가오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되며 그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그때 감상했던 슈만의 ‘후모레스케’를 직접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첫 곡은 ‘단순하게’로 시작한다. 독일어로 ‘ein-fach’가 ‘단순하게, 쉽게’를 뜻한다. 현재도 독일어권에서 매일매일 수없이 쓰이고 있는 단어다. 단순하게, 쉽게라는 뜻도 있지만, 뉘앙스를 따져본다면 한국어의 ‘그냥’ ‘막’ ‘소박하게’ 등의 뜻도 함께 포함될 수 있다. 이런 만큼 실제로 ‘후모레스케’의 첫 부분은 두 페이지 남짓하고, 음도 적으며 단순하고 소박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 곡을 연주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네 개의 음만으로 슈만은 30분에 달하는 곡을 완성했다. 이 네 개의 음 안에는 슈만의 내적 세계와 다양한 정서가 응축되어 있다. 이러한 네 개의 음에 담긴압축된 정보를 인지하고, 이해하며, 감정으로 내재화하고, 마지막으로 청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하기 그지없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단순함’ 속에 숨겨진 ‘복잡함’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슈만은 이렇게 복잡한 곡을 ‘단순하게’ 연주하라고 지시했을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시도는 자칫 곡의 많은 의미를 손상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슈만의 ‘후모레스케’는 단순함 속에 복잡함이 숨어 있고, 그 복잡함은 다시 단순함으로 회귀하는 모순적인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그것이 필자에게 주는 교훈은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 때로는 너무 복잡하게 사건이 전개돼도 훗날 기억의 한편으로 귀결될 일이니 용기를 갖고 그 복잡한 순간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어떠한 단순한 일을 대할 때는 겸손한 자세로 그 일의 깊이를 함부로 가늠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연주하라는 슈만의 지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 순간, 다시 아버지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단순함이란 결국 복잡함을 충분히 경험한 후에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복잡하게 느껴질 때 그것을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가 결국 후에 단순함에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슈만의 ‘단순하게’라는 지시는 어쩌면 그의 음악 속에 숨겨진 무한한 우주를 우리에게 열어 보이기 위한 비밀의 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