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성균관대 법학 학·석·박사, 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실장,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경기대 부총장 사진 국회입법조사처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
성균관대 법학 학·석·박사, 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실장,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경기대 부총장 사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영향분석’ 없이 법을 만드는 것은 중요 부품이 빠진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은 9월 26일 인터뷰에서 한국 국회 입법에 입법영향분석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입법영향분석은 법안을 상정할 때 법안 시행 후 사회적 영향 등 입법영향분석을 첨부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의회에서 법안 통과를 논의할 때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토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법안 완성도를 높여, 졸속·과잉의 부실 입법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영국⋅스위스⋅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며, 한국도 지난 8월 법안 상정 시 입법영향분석을 첨부하도록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됐다. 국회의원 10인 이상 동의로 발의되는 의원입법은 정부(행정) 입법과 달리 법제처의 사전 법제 심사 절차가 없어 법안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례로 음주 운전이 2회 이상 적발되면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 은 202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법이 음주 운전 재범 여부를 판단할 때 아무런 시간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입법상 불비를 인정한 것이다. 

박 처장은 2023년 4월 국회입법조사처장 취임 이후 입법영향분석 도입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는 2023년 7월 국회입법조사처 산하에 ‘입법영향분석사업단’을 발족해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과 시행 방안 등을 연구·지원하고 있다. 박 처장은 “입법영향분석은 현실에 맞는 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입법 절차 중 하나”라면서 “의원입법 발의 건수가 계속해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국회 의안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입법 발의 건수는 총 2만6637건으로, 16대 국회(1651건) 대비 15배 이상 증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입법영향분석이 구체적으로 뭔가.

“입법영향분석은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국회에서 어떤 법이 만들어졌을 때 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연쇄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 절차를 말한다. 법안 상정 시 입법영향분석을 첨부하면 국회의원이 이를 토대로 법안을 객관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여야 당론을 떠나 과학적 검증을 거친 입법영향분석 내용을 토대로 한 합리적 토론이 가능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법대로 사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법치국가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법 규범이 국민 생활과 일치하도록(맞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입법영향분석이 꼭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왜 아직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나.

“20대 국회부터 입법영향분석 의무화를 내용으로 한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아직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8월에 다시 국회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 국회법 개정안이 상정돼 22대 국회에는 입법영향분석이 법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야에서도 이 제도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어 (법안 통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입법영향분석 샘플을 만들었다고.

“국회입법조사처가 작년에 입법영향분석 샘플을 만들었다. 올해 초 내가 미국에서 유엔개발계획(UNDP) 관계자를 만났을 때 우리가 만든 입법영향분석 샘플을 저개발 국가에 번역해서 전파하는 걸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UNDP 지원 사업 중 하나가 ‘민주주의 확산’인데, 내가 UNDP 관계자에게 좋은 법을 만드는 게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K푸드, K팝뿐 아니라, 앞으로는 K입법 세계화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법 조사는 늘고 있나.

“좋은 법을 만드는 데 입법 조사는 필수다.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데, 21대 국회 때 감소했다가 다시 늘고 있다. 19대 국회 때 2만2501건, 20대 국회 때 2만8110건, 21대 국회 때 2만874건, 22대 국회(2024년 5~9월 기준) 때 2257건의 입법 조사를 실시했다. 현재 100여 명의 입법조사관이 입법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12개 상임위원회로 나누면 1개 상임위원회별로 8명 정도가 배정된다. 조사관의 업무 과중이 불가피하다.”

입법영향분석이 의무화되면 조사 인력이 더 부족해질 텐데.

“그렇다. 지금도 조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보강이 필요한데, 입법영향분석이 의무화되면 어느 정도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

사기업 연구원 대비 급여가 적고, 업무가 과중한 조사관 이탈에 대한 우려는 없나.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외적으로 국회입법조사처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조사관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는데, 처우가 좋아져야 한다. 내부 승진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내가 취임 후 직원 만족도조사를 했고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조사 결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재교육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파악돼, 이런 방향에서 지원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예산 확보 필요성을 느낀다.” 

언론과 접점을 늘리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다.

“내가 취임 후 조사관들에게 강조했던 게 언론과 접촉을 늘리라는 것이었다. 조사실마다 미디어 소통관을 임명하고, 언론에 많이노출된 보고서 작성자에게 상을 줬다. 입법 조사 현황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과 접점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만큼은 여야를 떠나 모든 것을 열어놓고 오픈 토론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정보 전달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감사 중점 주제 책자를 만들었다고.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매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있는데, 내가 취임한 작년부터는 중점 주제에 대해 이슈를 분석한 책자를 추가로 발행하고 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중점 주제를 정리해서 언론에 배포하면 기자들이 이를 참고해 취재할 수 있고, 국민 알권리 보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국회사무처 소관 사단법인으로 ‘한중동행(한중 국민과 경제의 동행)’을 만들었는데.

“한국과 중국의 경제 교류 증진을 위해 설립을 추진했다. 이 단체에 한국과 중국 국회의원 총 104명이 가입했다. 국내외 안보 환경 변화(미중 갈등)로 양국 기업인의 투자 위축과 인적 교류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인데 한중동행이 냉각된 양국 관계를 회복하고 미래지향적 한중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

국회의장 직속 ‘헌법 개정 및 정치 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공동 위원장도 역임했다. 어떤 방향으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나. 

“우리 헌법은 1987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다. 미래 사회 대응을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 1987년 독재를 막기 위해 채택한 5년 단임제가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4년 중임제를 통해 대통령이 임기 말 국민의 평가를 받도록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적 결단 사항은 아니지만, 다당제 정착을 위해 중선거구제 도입도 헌법 개정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국회 권한 강화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추천권을 국회가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