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해외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던 지인의 아들이 잠시 귀국해 연로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그간 무엇을 했는지 손자에게 물었다. 손자는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으나 원하는 박사 학위는 아직 받지 못했다며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참을 귀담아듣던 할아버지는 짧게 답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할아버지의 짧은 한마디가 그 청년에게는 가장 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지인은 자기 아들이 여러 전공을 옮겨가며 공부하느라 한계에 부딪히고 희망을 잃어 불안해하던 시기에 ‘그걸로 충분하다’고 용기를 주지 못해 아들이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인생으로 여기게 한 죄책감이 컸다고 말했다.
최근 추석 명절을 맞아 멘티 청년과 영상 인사를 나눴다. 그는 미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을 다니던 때,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연구실에 출근하는 지도 교수와 면담을 외래 환자의 병원 진료와 비교하곤 했다. 교수는 항상 무엇인가에 쫓겼다. 학생이 연구 결과를 보여주면 그중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선택하고 다음 미팅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지시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늘 부족했다. 교수가 원하던 결과를 학생이 가져오면 유사한 연구를 수행한 박사과정 선임자와 함께 논문을 작성하게 하고, 고만고만한 수준의 학술지에 투고하게 했다. 그 후 단기간 내 승인될 정도의 심사 의견이 나오면 논문을 마무리하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중단시켰다. 논문의 질이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수준 높은 학술지에 게재될 가능성이 작은 석사과정 학생의 연구는 아예 학술지 투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교육이 없는 연구였다.
그 청년은 지도 교수에게 퇴짜 맞아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한 연구 결과를 붙들고, 부족한 실험과 논리를 보충하느라 졸업을 한 학기 늦춘 후에야 웬만한 수준의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제때 졸업하는 한국의 이공계 석사과정졸업을 한 학기 늦출 정도로 보잘것없는 성과였다. 이후 그 청년은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미국의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영상 속 얼굴은 밝아 보였다. 미국 지도 교수는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엉뚱한 결과가 왜 나왔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토론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지도 교수에게 빠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데이터를 버리는 일 없이 정직한 연구를 하게 되고, 설명되지 않는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즐겁게 한다고 했다. 엉뚱한 결과가 실험의 오류에서 비롯했다 할지라도 지도 교수는 “그걸로 충분하다”면서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이 잘못을 줄이는 의미가 있다고 격려했다. 이 청년이 경험한 두 나라의 연구 문화의 차이는 왜 우리나라에서 노벨 과학상을 받기 어려운지를 설명해 준다.
얼마 전 세계적인 수학 난제를 해결한 박진영 교수를 국내 언론이 소개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6년간 수학 교사로 지낸 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미국으로 가 럿거스대 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녀는 2022년에 지도 교수와 함께 세계적 수학 난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자신의 공을 박사과정 지도 교수에게 돌렸다. ‘빨리 공부하는 것보다 깊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도 교수의 격려가 큰 용기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평범한 수학 교사가 위대한 수학자가 되는 데는 이렇듯 훌륭한 스승의 정성과 공감이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 시절 모든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이렇게 말씀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보람은 너를 낳고 기른 것이다.” 어머니가 필자에게 보여준 삶의 본보기는 어떤 위인보다 거룩했다. 이 세상에 보잘것없는 사람은 없다. 인생의 스승과 학문의 스승이 보잘것없는 사람 속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본인이 의지와 끈기로 화답하면 보잘것없는 사람도 뛰어난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그 뛰어난 사람을 만든 인생 역시 뛰어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