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9회 캐나다 토론토 영화제(TIFF)에 참석한 여배우 김고은의 파격적인 쇼트커트가 화제가 됐다. 남성 쇼트커트보다도 짧은반삭에 가까운 매우 짧은 쇼트커트여서다. 김고은의 대담하고 매력적인 쇼트커트는 ‘픽시 커트(Pixie Cut)’다. 픽시 커트는 앞머리와 옆머리만 조금 길게 남기고 전체적으로 짧게 자른 후 구레나룻을 뾰족하게 자르는 쇼트커트를 의미한다. 귀가 뾰족한 요정 또는 도깨비를 뜻하는 픽시(Pixie)에서 나온 이름이다.
김고은의 픽시 커트는 1960년대 패션 아이콘 진 세버그(Jean Seberg)를 추억하게 한다. 진 세버그의 픽시 커트는 1960년대 패션의 상징이자, 그 시대 여성 스타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대담한 선택이었다.
픽시 커트의 상징
진 세버그가 쇼트커트 스타일로 변신한 건, 1957년 영화 ‘성 잔 다르크’부터다. 그러나 그녀의 픽시 커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건, 1958년 영화 ‘슬픔이여 안녕’에서부터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슬픔이여 안녕’에서 진 세버그는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아온 17세 소녀 세실을 연기했다.
영화 ‘슬픔이여 안녕’ 속에서 진 세버그는 세실 역을 통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남겼다. 클래식한 프랑스 감성과 미국의 캐주얼이 완벽하게 조화돼, 지금까지도 패션계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프랑스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코트다쥐르에서 펼쳐지는 진 세버그의 여름 휴양지 스타일이 너무나도 인상 깊어서, 픽시 커트는 영화 속 세실의 이름을 따라 ‘세실 커트(Cecile Cut)’로 불리기도 한다.
‘슬픔이여 안녕’을 통해 이름을 알린 진 세버그는 미국 태생 여배우임에도 과감하게 할리우드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리고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에 출연한다. 이 참신하고 독특한 장르 파괴 영화는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 시대를 여는 걸작으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영화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강렬한 이미지를 전한 진 세버그 역시 세계적인 스타이자 세기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흑백영화의 스틸 컷 하나하나가 모두 패션 화보 같아서, ‘네 멋대로 해라’ 속 진 세버그의 스타일은 패션사를 공부하는 이들의 교과서 같다고 할 수 있다.
진 세버그가 연기한 패트리샤의 가장 아이코닉한 신은 패션에 앞서 픽시 커트다. 패트리샤의 픽시 커트는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스타일로 개성과 자신감,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동시에 톰보이(Tomboy·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인 ‘Tom’과 소년을 뜻하는 ‘boy’의 합성어로, 활달하고 남성스러운 여성을 의미함)적인 소년미로, ‘프렌치 시크’를 대표하는 헤어스타일이 됐다.
미국계 배우의 프렌치 시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코닉 패션은 스트라이프 톱과 드레스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착용한 블루 스트라이프 톱과 팬츠의 조합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파리지앵 스타일을 완성했다. 여성스러운 스트라이프 드레스와 짧은 픽시 커트의 소녀미와 소년미를 오가는 듯한 상반된 매치도 매력적이었다. 그밖에 오버사이즈 셔츠와 하이웨이스트의 짧은 쇼트 팬츠를 매치한 룩, 베레모와 선글라스 등이 스트라이프와 함께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가 됐다.
진 세버그는 미국계 여배우이면서 프렌치 시크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적을수록 더 좋다(Less is More)’의 미니멀리즘으로 간결하면서도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클래식 룩은 패션계에 영원한 영감을 주고 있다. 또한 그녀의 스타일은 톰보이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테일러드 블레이저, 버튼다운 셔츠, 청바지 같은 캐주얼 아이템을 다양하게 스타일링해, 심플한 기본 아이템만으로도 세련되고 대담한 룩을 창조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녀의 중성적인 스타일은 대담한 빨간 립스틱이나 발레 플랫 슈즈와 주로 매치되곤 했는데, 이런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합은 당시 여성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다.
동시에 진 세버그는 패션의 필수 아이템을 활용한 데일리 룩 연출에 뛰어났다. 터틀넥, A 라인 스커트, 클래식한 트렌치코트, 화이트 티셔츠를 요즘 표현으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스타일로 즐겼다. 액세서리도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간단한 스카프, 헤어밴드만으로 심플하게 포인트를 주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삶
그러나 진 세버그의 실제 삶은 당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휘말려 평탄하지 못했다. 1979년 파리에서 실종된 후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40세밖에 되지 않았다.
경찰은 그녀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결론지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과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감시 대상이 됐던 그녀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찬란했으나 비극의 새드 엔딩으로 끝난 진 세버그의 삶과 스타일은 2019년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세버그’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배우가 수많은 쇼트커트를 보여줬지만, 진 세버그가 진정한 레전드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전통적인 스타일 기준을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반짝이던 진 세버그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쿨함을 대표하는 타임리스 아이콘으로, 영원히 사랑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