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불평등도 韓 저출산 원인
저출산,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정부 과도한 개입, 부작용 우려
제니퍼 D. 스쿠바 美 인구참조국 대표메릴랜드대 정치학 박사, 전 로즈 칼리지 교수, 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 사진 제니퍼 D. 스쿠바
제니퍼 D. 스쿠바 美 인구참조국 대표
메릴랜드대 정치학 박사, 전 로즈 칼리지 교수, 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 사진 제니퍼 D. 스쿠바

유엔 인구국은 2022년 11월,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1974년전 세계 인구가 40억 명을 넘어선 지 48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지구 인구가 20억 명을 넘어선 것은 1927년, 10억 명을 돌파한 것은 1805년으로 추산된다. 불과 200여 년 만에 전 세계 인구가 여덟 배나 불었다. 다만 유엔은 세계 인구 성장률이 전반적으로 둔화했기에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것은 2037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20세기 들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인구 방향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유럽과 북유럽,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을 걱정하지만, 아프리카에선 늘어나는 인구를 고민한다. 

세계적 인구통계학자로 지난해 말 ‘80억 인류, 가보지 않은 미래’를 펴낸 제니퍼 D. 스쿠바(Jennifer D. Sciubba) 미국 인구참조국 대표는 최근 진행한 조선비즈와 서면 인터뷰에서 “대부분 국가의 합계 출산율은 대체 출산율(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로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2.1명이어야 함)보다 낮지만, 소수 국가에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새로운 국제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기에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정부가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출산율 올리기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 봤다. 또 “남편의 가사 노동, 아버지의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이 더 커지는 것 같은 문화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출산에 따른 현금 지급은 ‘뇌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정책의 강조점은 ‘웰빙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부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정부의 정책은 종종 부처별로 다르게 돌아가기에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한 부처는 여성의 노동력 참여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다른 부처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해 출산을 장려할 수 있다. 여기다 여성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성별 문제는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올바른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민간 부문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참여하며, 여러 부서가 참여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한국의 저출산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성 불평등이라고 했다. 

“아시아 학자들은 가부장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 저출산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신부’ 같은 정책을 통해 이런 가치를 강화했고,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이 같은 정책이 ‘여성의 상품화’라고 지적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에서 출생 시 성비 불균형이 엄청났다. 하지만 이후 이런 문화는 시정됐다. 문화는 변할 수 있고, 적어도 정책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다.”

성 불평등 외에 한국의 저출산을 초래하는 원인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다. 하지만 교육과 관련한 압박이 심하고 교육비가 많이 든다. 여기다 한국 직장인은 장시간 일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런 배경은 자녀를 갖거나 대가족을 꾸리는 것을 꺼리게 한다. 정부는 이런 요인 중 일부를 제거해 출산율 증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웰빙을 개선해야 출산율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릴 수 있다.”

동서양센터가 2009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가임 연령층 부인의 가사 노동시간은 일주일에 27시간지만 남편은 3시간에 불과했다. 스쿠바는 저서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가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할 엄두조차 내지못하고 있다. 특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사교육비 때문에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고 지적했다. 

저출산을 극복한 나라가 있나.

“지속적으로 출산율 증가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 나는 전 세계 국가가 저출산을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저출산을 뉴노멀로 받아들이기보다 출산율에만 초점을 맞춘다.” 

대부분 국가가 저출산을 뉴노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경제 이론, 경제 모델은 인구 증가가 끝이 없이 이뤄질 것처럼 보였을 때, 특히 사회의 노년층을 부양할 젊은 근로자가 끝없이 공급될 것처럼 보였을 때 개발됐다. 인구 추세가 영구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 이론과 모델, 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인구 추세를 역전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더 쉽다. 또한 정치인이 인구 추세를 역전시키려고 시도할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효과가 없더라도 말이다.”

당신의 책을 보면 저출산은 걱정할 대상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저출산과 수명 연장으로 인한 고령화가 한 국가와 사회에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저출산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출산을 문제로 삼을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뿐이다. 이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전 세계를 살펴보면 저출산은 일부 국가의 문제고 여전히 일부 국가의 출산율은 높다. 더 나은 접근 방식은 사람들의 웰빙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연령별 인구구조에 적응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일부 국가는 국민이 살아가는 환경보다 국민 수를 늘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웰빙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다. 사람들은 미래를 암울하게 느낄 때, 주택과 교육 비용이 높을 때,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을 때,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웰빙으로 접근해 아이를 키우기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희망을 느끼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

저출산을 막을 수 없다면 한국은 고령화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고령화사회에서도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

“한국 경제가 고령화사회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건강 관리 같은 일부 산업이 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산업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인구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누가 승자와 패자가 될 것인지다.”

선진국 중심으로 저출산을 우려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전 세계 인구는 증가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구 감소보다 통제되지 않는 인구 증가가 더 큰 문제가 될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출산율이 가장 높고 인구 증가도 가장 빠른 지역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지역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남부 아프리카의 총출산율은 여성 1인당 2.4명으로, 세계 인구는 최대 20억 명 정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초점은 세계 인구보다 젊고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와 고령화되거나 줄어드는 인구 사이의 인구 격차에 맞춰야 한다. 이들 국가는 서로 매우 다른 도전 과제와 기회를 갖고 있다.” 

정미하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