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냐, 해리스냐? 이 고민은 비단 미국 국민만의 것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할 정도로 기성 정치인과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트럼프 집권 시 심하면 한미 동맹이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조차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에서 본 한미 동맹
한미 동맹은 우리 입장에서는 국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자 성과다. 애초에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에 의해 분단되면서 세력 균형의 장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김일성, 미국을 저지하려는 대리전을 치르려는 마오쩌둥(毛澤東), 어떻게든 미국의 관심을 유럽에서 돌리고자 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욕망이 얽히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은 전시 작전 통제권까지 미국에 넘기면서 생존을 의탁했다. 어쨌든 나라가 무너지는 건 막았지만, 종전 후 미국이 아예 발을 빼버리면 국가는 무너질 터였다. 그래서 반공 포로를 석방하며, 정전협정에 서명을 거부하면서까지, 겨우 떠나려는 미국의 발을 붙잡고는 한미 동맹을 만들었다.
한미 동맹이 결성되고도 동맹을 유지·강화하려는 노력은 투쟁에 가까웠다. 미국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과 다른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우리는 최적의 생존과 상생 방안을 강구해왔다. 베트남전쟁 발발로 미군 감축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베트남에 참전하여 안보도 지키고 경제적 활로도 찾았다. 닉슨 독트린으로 미국이 배신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돌아서자, 발 빠르게 자주국방으로 전환하면서 공업 역량을 키워내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냉전 이후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철수하자,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나 북핵 개발 저지에 실패하자 미국의 확장 억제(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거나 위협에 노출됐을 때 미국이 본토와 동일한 수준의 전력을 지원한다는 미국의 방위 공약) 강화를 유도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결성하고 미국과 핵 공동 작계 지침을 만들어,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핵 보장을 얻어냈다. 이미 핵 공유 중인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조차 한미 NCG와 핵 공동 작계 지침을 놓고, 유럽은 뒷전이라며 볼멘소리한다.
미·북 정상회담의 ‘전과자’?
이런 한미 동맹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상당한 시련을 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어찌 보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얘기였다. 자국의 예산이 국제 질서 유지에 쓰이는데 정작 자국민이 혜택받지 못하는 상황에 미국 국민은 답답했을 것이다. 기성 정치인이 미국 국제 리더십의 논리를 명확히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리그에 몰입할 때, 국민의 눈높이로 대안을 제시한 것이 트럼프다. 물론 메시지는 선정적이다. ‘중국 등 외국이 빼앗아 간 일자리를 되찾아오자’ ‘미국이 부자 나라를 지켜줄 이유가 없다’ 등 사실과 거짓이 묘하게 뒤범벅된 트럼프의 메시지에 기성 정치인에게 지쳐버린 미국 서민층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판을 한 번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 민심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국제정치에 대한 트럼프의 몰이해였다.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트럼프 는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고, 당연히 기존 행정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방위비 분담금의 다섯 배 인상을 외치고 거부 시 병력 감축하자던 트럼프를 제지했던 H.R. 맥마스터 장군은 결국 경질된 후 전역했다. 그 후임이던 존 볼턴도 트럼프가 사고 치는 것을 막느라 정신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북 정상회담이다. 애초에 비핵화 의지가 없는 김정은 정권과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문재인 정부다. 양국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면 심각한 아마추어고, 알았음에도 추진했다면 사기에 가까운 행위다. 문제는 이런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트럼프다. 대화가 나쁘지 않다는 비즈니스 수준의 인식으로는 통일전선 전술에 능숙한 북한 정권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 안보팀의 속내는
다행히 존 볼턴 등 노련한 보수 안보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경거망동을 막았기에 북한에 악용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애초에 김정은과 만난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일단 회담 자체가 열린 것만으로 6자회담 실패 후 오바마 정권이 힘겹게 만들어온 대북 제재 체제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취임 후 무려 6년간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를 피하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행여나 하여 부랴부랴 김정은을 만났다. 동북아에 관심이 없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김정은을 만났다.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갑자기 김정은은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트럼프의 경거망동이 국제사회의 ‘왕따’인 김정은을 갑자기 ‘인싸(insider·인기가 많은 사람)’로 만들어준 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핵을 가진 이와 사이좋게 지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자신의 행위를 두둔했다. 트럼프의 안보 브레인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욱 암담하다. 트럼프 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미국에 의존만 하는 동맹은 필요 없다며 한국의 국방비 증액을 주문했다. 차기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오브라이언은 중국 견제가 차기 트럼프 정부의 명확한 목표라며, 한국도 이에 동참해야 함을 암시했다.
트럼프 당선 시 국가 안보 보좌관으로 유력한 엘브리지 콜비는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이 “평화로운 시기엔 할 수 있는 약속이지만 유사시엔 미국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에서 전력을 손실하면 중국과 싸움에서 질 수 있다면서, 한국이 북한을 전담해야 하고 심지어 독자적 핵무장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해리스는 얼마나 다른가
한편 트럼프의 대척점에 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어떨까. 해리스 집권 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로 갑작스럽게 민주당 후보가 된 해리스는 자신만의 외교 안보 정책이 명확하지 않다. 해리스는 부통령으로서 바이든의 정책을 충실히 따라왔고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기에 바이든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모든 것이 진행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다.
그러나 막상 누구를 활용할 것인가 보면 약간 다를 수 있다. 해리스의 안보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인 필고든은 민주당 정권마다 NSC(국가안보회의)에서 근무하면서 정책을 가다듬어온 중동 전문가다. 실용주의 실무가로서 고든은 보수적이면서도 유보적인 정책 성향을 펼쳐왔는데, 과연 전 세계를 주도할 안보 리더십을 얼마나 구체화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여기에 부통령 국가안보부보좌관인 레베카 리스너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변할수 있다. 학자 출신인 리스너는 어찌 보면 고든보다 더 유보적이다. 미국이 굳이 헤게모니에 집착하는 대신 국제적 역할을 축소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 리더십을 회복하자고 외치던 바이든의 안보 브레인들과는 다른 맥락을 보인다.
미국과 한국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결국 누가 당선되건 간에 미국의 안보 정책이 바이든 정부와 같을 수는 없다. 트럼프 정부라면 한국의 비용 부담을 더욱 강요하며 한반도의 재래식 억제는 한국이 전담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미국에서 전시 작전 통제권 전환을 더욱 가속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한국과 동맹 와해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해리스 집권 시 여전히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하겠지만, 적극성은 바이든 정부 때보다 감소할 수도 있다. 분명 동맹을 강조하겠지만 실제로 미군 전력의 부족으로 재래식 억제를 동맹에 더욱 맡기고자 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이며, 한미 핵·재래식 통합(CNI)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우리는 안심해선 안 된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미국에 다시 인식시키고, 동맹으로서 북한을 막는 한국의 역할을 다시금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미 양국의 국익이 합쳐지는 점에서 협력을 최대화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