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수많은 감정적 정보가 오가는 정거장이며, 아이들은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 교사보다 또래 집단에서 더 많은 질서와 규칙을 배운다. 싸우거나 협력하고 거절당하고 받아들여진다. 부모는 시시때때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와 마주한다. 스스로 잘 컸으면 싶은 마음 도와서 잘 키우고 싶은 마음, 두 마음이 다투는 것 같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부모 자신도 현실에서 내 감정을 몰라 ‘기분 장애’ 환자처럼 좌불안석일 때가 많다. ‘불안이’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2’를 보면서, 정작 눈물이 터진 쪽은 부모였다는 고백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자신과 단절된 채 지내온 걸까?
짧은 워크숍 일정으로 최근 내한한 리타 마리 존슨(Rita Marie Johnson)은 두뇌와 심장의 뇌를 연결해서 내적 고통을 해결하는 심리 시스템 ‘연결 실천(Connection Prac-tice)’의 창시자다. 세계적인 심장 연구 기관 하트매스연구소(HeartMath institute)의 두뇌 ‘심뇌’ 정합 프로세스에 영감받은 존슨은 심장 호흡법에 비폭력 대화법을 결합해 2002년 연결 실천이라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존슨은 현재 코스타리카를 거점으로 유엔(UN)평화대,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일본과 한국을 두루 돌며 연결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열렬한 지원으로 2009년 코스타리카에 평화부를 만든 일은 유명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장맛비가 들이쳤다. 존슨 선생이 인터뷰 직후 일본으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창밖에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푸른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서재로 들어섰다. 금발의 존슨은 온유한 얼굴로 인터뷰 전에 내게 연결 실천을 체험해 보길 권했다. 그는 내게 당장 해결하고 싶은 관계 대상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지난 주말, 고교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의 새 차가 긁혀 찜찜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초행길에 롤러코스터 타듯 가파른 언덕길로 안내했던 나는 죄책감과 억울함에 좌불안석이었고, 친구는 헤어질 때까지 걱정과 원망으로 어두운 안색을 풀지 않았다. 존슨은 친구를 향한 내 감정과 욕구를 ‘언어 카드’에서 뽑게 했고, 나를 향한 친구의 감정과 욕구도 추측해서 뽑아보도록 했다. 내가 최종 선택한 나의 핵심 카드는 짜증과 수용, 친구의 핵심 카드는 공포와 안전이었다. 당시엔 상황을 모면할 생각만 가득했는데, ‘친구의 두려움에 먼저 공감해 줘야 했다’는 자각이 뒤늦게 머리를 쳤다. 이어 눈을 감고 편안한 이미지를 연상했고(고양이가 자는 모습), 호흡에 집중했고, 어느 순간 번쩍 해결책(사과 편지와 예쁜 컵을 선물한다)이 떠올랐다. 연결 실천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①내 감정과 욕구를 연결하고 ②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연결한 후 ③두뇌와 심장을 연결한다. 순서에 따라 엉킨 실타래 같은 감정과 욕구를 하나의 핵심 언어로 좁히는 행위, 호흡으로 두뇌와 심뇌의 합을 맞추는 행위를 통해 통찰이 발생했다. 몸과 마음을 다 써야 하지만,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직관이 솟아올랐다. 무엇보다 심장에 두뇌가 있다는 감각이 신선했다. 존슨이 쓴 책 ‘Completely Connected(완전히 연결된)’는 노틸러스 상 수상작으로 심리 부문 아마존 베스트셀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선 완전히 연결됐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일단 ‘단절’부터 이야기해 보자. 어떤 상황에서건 내면의 상처가 건드려졌을 때 머릿속에 소용돌이가 일어난 적 있지 않나. 생각과 감정이 서로 막 겉도는 느낌, 그게 바로 두뇌와 심뇌가 끊어진 단절(disconnected) 상태다. 그럴 땐 억지로 감정을 누르거나 생각나는 대로 마구 표출한다. 두뇌와 심뇌가 끊어져서 그렇다. 반면 완전히 연결된 상태는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도 침착해진 상태다. 심장 집중 호흡, 안전한 이미지 명상을 통해서 나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한 상태다.”
그렇게 연결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미소 지으며) 평화가 온다.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지적이고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해결책을 통한 구체적 평화다.”
일상에서 자주 활용하나.
“그렇다. 두뇌와 심뇌의 정합은 활용법이 더 다양하다. 가령 나는 6개월 동안 코막힘으로 고생했다. 호흡으로 통찰했더니 ‘물구나무를 서라’는 답이 떠오르더라. 물구나무를 섰더니 정말 코막힘이 해결됐다. 우리 신체는 답을 알고 있다. 두뇌와 심뇌가 연결되면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통찰이 나온다.”
부정적 감정을 제거할 때 몸이 말하는 깊은 지혜에 닿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고통을 감내할 줄 알아야 성숙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꿈을 향한 인내의 고통, 존재의 다름에서오는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상상력에서 오는 고통은 변환돼야 한다.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지 말고 새로운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10년 괴로워할 것을 10분만 괴로워하고 변환시킬 수 있는데, 왜 망설이나?”
명상이나 감정 코칭과는 무엇이 다른가.
“명상은 몸을 이완시켜서 초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연결 실천은 심장의 힘을 사용한다. 초월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돼서 명확한 물리적 통찰력을 끌어낸다. 수평적이라는 점에서 감정 코칭과도 다르다. 감정 코칭은 수직 관계에서 리더가 상대 감정을 조율해 주는 것이다. 큰 덩어리로 몰려드는 감정을 하나씩 쪼개서 ‘언어화’해 주는 거다. 부모가 걸음마 하는 아이 손을 잡아 주고 자전거 탈 때 안장을 잡아 주듯이 말이다. 일대일만 가능하다. 반면 연결 실천은 여럿이서도 할 수 있다. 아이도 노인도 사장도 직원도 다 함께 수평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연결 실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부 뇌 질환자나 소시오패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고.
가장 중요한 욕구는 역시 안전과 사랑의 욕구일까.
“그렇다. 외부 공격을 포착하는 편도체는 1초당 12번에서 100번까지 속사포로 질문한다. ‘나는 안전해? 나는 소중해?’ 편도체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심리 워크숍을 할 때 청소년에게 알려주는 규칙은 두 가지다.
‘첫째, 나에게 해로운 행동은 안 돼. 둘째, 남에게 해로운 행동도 안 돼.’ 남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면 내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면 내가 소중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안전한가? 소중한가? 가정도 학교도 일터도 이 두 가지가 우선 확보돼야 창의의 꽃이 핀다.”
가정에서 부모가 먼저 연결 실천을 통해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공감해 주면, 아이도 따라 할 거라고 했다. 부모에게 공감하는 아이의 마음이야말로 새로운 차원의 존경이라고.
그런데 아이는 부모도 자기와 같은 인간이라는 걸 종종 잊는다.
“그렇다. 그래서 양육 갈등은 누구나 겪는다. 대개 부모가 먼저 큰 소리로 야단치고 벌주고, 칭찬하고 선물 주고, 처벌과 보상을 반복한다. 다이애나라는 여성도 입양한 딸을 그런 방식으로 대했고, 사이가 나빠졌다. 나중에 연결 실천을 배운 후, 딸의 감정을 들어보니 아이는 ‘병균 공포증’이 있었고, 생모에게 버림받은 기억으로 양엄마에게 한 번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와 연결됐다고 느끼는 순간,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어린 시절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는 협박성 농담을 듣고 자랐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유기 불안’을 안고 살았다. 온전히 수용받고, 안전하게 연결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더라면, 끈 떨어진 연처럼 어정쩡하게 헤매고 다니지 않았을 텐데.
존슨의 연결 실천은 연결이 끊어진 것도 모르고 살아온 이 땅의 수많은 ‘성인 어른’에게 희망의 씨줄이 돼 줄 수 있을까.
“정말 많은 사례가 있다. 어릴 때 온종일 장사하러 나간 부모 밑에서 큰 사람이 있다. 매일 저녁 ‘학원 다녀왔냐? 숙제했냐? 집 치웠냐? 설거지했냐?’ 방임 상태에서 야단만 맞고 컸다고 한다. 그런데 이이가 부모가 돼서 자기도 아이에게 화만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결 실천을 배운 후에야, 자기 분노의 정체가 두려움이라는 걸 파악했다. 아이와 연결되고 싶다는 자기 욕구, 엄마 사랑을 원하는 아이의 욕구, 서로의 감정을 차례차례 이야기한 이후, 가정에서 상호작용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의 ~가 걱정돼’ ‘엄마가 ~이걸 이해해 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로. 소리칠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연결 실천 방법은 매우 쉬운 데 비해, 그 변화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극적이라는 게 신기했다.
정말 그렇게 빨리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렇다. 자기와 연결되면 아이와 연결되는 건 아주 쉽다.”
무엇보다 소용돌이 상태의 감정을 ‘억울함’ ‘슬픔’ ‘질투’ ‘짜증’ 등으로 언어화하는 것, ‘식욕’ ‘안전’ ‘자유’ ‘연결’ ‘사랑’ 등의 욕구로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한 첫 단계라고.
반면 자기와 끊어지면 어떻게 되나.
“자기와 끊어진 상태가 중독이다. 술이나 마약에 자기 통제 권한을 맡기는 상태다. 모든 종류의 중독은 무절제가 아닌 단절 때문에 생긴다. 그냥 취한 게 아니라 자기와 내면의 연결이 끊어진 거다.”
대부분 내적 고통은 연결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까.
“말했듯이 불필요한 고통에 한해서다. 불쾌한 일을 겪으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온갖 나쁜 상상력을 발동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저 사람 의도가 뭐냐? 왜 나를 무시하냐?’ 잘못된 과거와 어두운 미래를 섞어서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걸 중지하는 거다.”
얼마 전까지 나는 연결만큼 수용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 각자 자기 생에서 우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바라봐 주는 수용성이 현명한 어른의 특징이라고 말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고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불필요한 고통에 머물 필요는 없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타인도 불필요한 고통에서 빨리 빠져나오도록 도울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고유한 능력을 타고났다.”
무엇보다 감정과 욕구 파악, 호흡과 명상, 해결책 도출, 모든 공정을 거치는 데 평균 3분이면 족하다는 부분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
정말 3분이면 평안에 이를 수 있나.
“처음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익숙하면 3분도 안 걸린다.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젊은이 키에라는 연결 실천 앱을 설치해서 매일 조깅하듯 한다고 했다. 키에라는 습관적으로 자해하던 청소년이었는데, 연결 실천을 배운 후 인생이 달라졌다. 대학 진학도 했고 지금은 연결 실천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도 평화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존슨. 존슨의 제안으로 2009년 입각된 코스타리카 평화부는 현재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빈민가에 세워진 8개의 ‘평화를 위한 시민의 전당’에는 해체 직전의 가족들이 찾아와 웃으며 귀가한다.
코스타리카 공립학교에 의무화된 연결 실천 커리큘럼 덕분에 학교 폭력과 괴롭힘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존슨은 그 공로로 2004년 아소카상을 받았다. 평화적 통찰을 가르쳐주는 것만으로 저출산이 해결될 거라고, 그는 웃으며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