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Animals’의 표지(왼쪽)와 윙스의 1978년 ‘베스트 모음집(Wings Greatest)’ 표지. /엑스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Animals’의 표지(왼쪽)와 윙스의 1978년 ‘베스트 모음집(Wings Greatest)’ 표지. /엑스
임희윤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임희윤
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해안가에 고대 문명의 흔적처럼 박혀 있는 약 4만 개의 육각형 주상절리를 처음 목도했을 때 26세의 영국인 오브리 파월은 다른 세계에 당도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상에 없을 듯한 풍광을 원했는데 바로 이곳이 딱 그랬다. 그는 바쁘게 카메라 렌즈를 조립했고 스케치 숏 촬영부터 바로 시작했다. 1972년 어느 날 북아일랜드의 절경, 자이언트 코즈웨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날 여기서 진행된 것은 ‘인터스텔라’나 ‘듄’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SF 영화 촬영이 아니었다. 마이클 잭슨 같은 대형 팝스타의 뮤직비디오도 아니었다. 이듬해 나올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새 앨범 표지 촬영이었다. 검푸른 거친 파도를 이마로 받치고 있는 4만여 개의 주상절리는 흡사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잊힌 고대 문명의 기이한 제단을 연상케 했다. 아역 배우 두 명을 나체로 투입했고 추운 날씨와 극한 환경을 염려한 그들 부모의 로케이션 참관도 허용했다. 비행기 특별편을 띄워 날아가 몇 날 며칠에 걸쳐 촬영한 뒤 콜라주 기법으로 더욱 환상적인 시각예술로 마무리된 그날의 결과물은 1973년 3월 발표된 레드 제플린 정규 5집 ‘Houses of the Holy’의 표지로, 록 역사에 영원히 박제된다.

사진작가 오브리 파월과 그가 속한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는 당시 표지에 투여된 천문학적인 제작 예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반사 쪽에서는 얼마큼의 예산이 들든 목표한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술회했다. “(예산은) 사실상 무제한이었다.”

힙노시스는 핑크 플로이드, AC/DC, 블랙 사바스 등 수많은 아티스트의 앨범 커버를 제작한 전설적 디자인 그룹이다. 이들의 지향점은 훌륭한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아니, 그 판타지를 더 극대화할 환상적 시각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목표는 환상이었지만 과정에선 철저히 사실주의, 현장 주의를 지향했다. 비틀스의 전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이끈 그룹 ‘윙스’의 1978년 ‘베스트 모음집(Wings Greatest)’ 표지 촬영을 위해서는 스위스의 만년설 덮인 고봉으로 날아갔다. 제설차를 동원해 정지 작업을 한 만년설 위에 실제 조각상을 올려놓고 헬리콥터에서 카메라로 촬영해 완성했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합성 한 방에 끝날 작업이었다.

핑크 플로이드, 화력발전소 위에 ‘돼지 풍선’ 띄워 커버 촬영

방탄소년단이 뮤직비디오 ‘불타오르네’에서 오마주했던 저 유명한 ‘Wish You Were Here(1975년 핑크 플로이드 앨범)’의 표지 사진은 워너 브러더스 영화 제작 스튜디오 앞마당에서 화재 장면에 특화된 최고의 스턴트맨을 기용해 실제 그의 몸에 불을 붙여 촬영한 것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또 다른 명반 ‘Animals(1977년)’ 표지는 화력발전소 상공에 특수 제작한 거대한 돼지 모양 풍선을 실제로 띄워 찍었다.

1980년 록 밴드 10cc의 ‘Look Hear?’ 앨범 표지 촬영은 거의 마지막 ‘돈 파티’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양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단순한 장면을 찍기 위해 하와이 오하우섬으로 날아갔고 양을 고분고분한 모델로 만들기 위해 동물 심리 전문가까지 고용해 촬영했다. 당시 제작 총예산은 5043파운드. 힙노시스의 고난도 작업에 비하면 비교적 단순했던 이 표지 제작에도 현재 가치로 약 2만6000파운드(약 4500만원)가 들었다.

1981년 여름, 파티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해 8월 1일 미국에서 영상 음악 전문 채널 MTV가 개국한 것이다. 음악의 환상을 배가했던 음반 표지의 역할은 빠른 속도로 뮤직비디오와 공연 실황 비디오를 비롯한 영상물에 그 자리를 내줬다. 앨범 표지 제작 예산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은 ‘Thriller’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본인 스스로 공동묘지 답사를 했을 뿐 아니라 최상급 댄서는 물론이고 할리우드 최고의 특수 효과 분장 팀을 고용했다. 이 작품은 무려 13분짜리 단편영화 스타일로 제작됐고 음반사는 관련 예산에 약 50만달러(약 6억7000만원)를 지출했다.

앨범 표지의 시대는 급속도로 가버리는 듯했다. 표지는 이제 거대 음반 산업의 이인자 자리로 물러났다. 대중이 어떤 가수가 어떤 춤을 추는지, 뮤직비디오에서는 어떤 옷을 입고 나와 어떤 배역을 맡아 어떻게 연기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앨범 표지는 호시탐탐 음반 산업 총아 자리의 재탈환을 노렸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쿨한 표지, 멋진 커버를 원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한 정보를 취득하는 데 시각에 약 70%, 청각에 약 20%를 의존한다고 했던가. 청각이 만들어내는 멋진 환상은 시각이 뒷받침하는 쿨한 이미지에 의해 완성되기 마련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여전히 인류 예술의 성전, 최고 미술관에서 추앙받듯이 앨범 표지는 음악에 그 나름의 오라(aura)를 부여하며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음반점 판매대에 도열해 있었던 것이다.

MP3와 스트리밍의 시대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앨범 표지는 PC 화면 속 작은 이미지로 전락하더니 결국 휴대전화 안의 섬네일(엄지손톱만 한 이미지)로까지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표지의 미학이 지닌 가치는 단순히 이미지의 크기나 제작 예산의 규모로 저울질할 수 없다.

2013년, 미국의 전설적 래퍼 제이지(Jay-Z)는 새 앨범 제목을 ‘Magna Carta... Holy Grail’이라고 지었다. ‘carta’가 제이지의 본명 가운데 성인 ‘carter’를 비튼 것이라 해도, 힙합이 아무리 플렉스(자기 과시) 문화의 선두에 있다지만, 대헌장과 성배를 나란히 앞세운 타이틀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묵직했다. 제이지의 야심은 텍스트 몇 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 고대 석상 이미지로 채워진 이 앨범의 실물을 영국 윌트셔의 솔즈베리 대성당에 있는 대헌장의 원본 네 부 중 한 부 옆에 한 달간 전시했다.

앨범 표지는 이제는 글로벌 장르가 된 K팝에서도 중요한 존재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 미니 5집 LOVE YOURSELF 承 ‘Her’를 내면서 네 가지의 디자인을 동시에 출시했다. K팝에서 멤버별 특별 디자인이나 여러 버전 발매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앨범의 모든 버전을 모아 붙이면, 또는 동봉된 28장의 포토 카드를 모아 뒷면을 이어 보면 펜화로 그린 꽃을 닮은, 방탄소년단의 안무 대형이 완성되도록 했다.

앨범 디자인은 K팝에서 새로운 판촉 전략이 되고 있다. 몇 달 전,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이사가 유명한 기자회견을 통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팬에게 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바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꼭지 틀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언제든 원할 때 넘쳐흐르는 시대, 전축도 CD 플레이어도 박물관의 전시물이 되는 시대에 CD 같은 실물 앨범을 한 장도 아닌 여러 장 반복해 사도록 하는 마케팅에서 K팝은 가히 세계 최고의 ‘스킬’을 자랑한다.

지난해 K팝 그룹 세븐틴은 테일러 스위프트를 제치고 전 세계 단일 앨범 최다 판매 그룹이 됐다. 무려 600만 장 이상의 CD를 팔아 치우면서 세계 음반 산업이 주목하는 이름이 됐다. 세븐틴뿐 아니다. 

상위권의 인기를 누리는 K팝 그룹은 이제 신작을 낼 때마다 미국 빌보드 종합 앨범 차트 정상을 수시로 밟는다. 티저 영상, 뮤직비디오, 자체 예능 콘텐츠, 숏폼 댄스 챌린지를 비롯한 움직이는 영상이 팬덤을 끌어모으는 시대에 이들은 여전히 정지된 사진이 박힌 앨범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판매한다. 아이돌 그룹의 앨범 표지 사진은 이 시대의 새로운 러시모어 산 암각화, 신개념 바미안 석굴로 우뚝 서고 있다. 아이돌의 뜻이 뭔가. 우상 아닌가.

1970년대, 레드 제플린과 힙노시스가 쌓아 올린 음악의 제단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청각예술이 청각만으로 추앙받던 시대는 선사시대처럼 옛날 일이 됐다. 새로운 시각예술이 구시대 시각예술을 갱신한다. 4K나 8K의 고해상도, 5G와 6G의 초고속 이동통신 시대에 음악의 성화(聖畫), 앨범 표지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임희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