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좋은 경제성장의 원천을 찾아 최근 몇 년간 ‘재개발 국가의 빈곤 퇴치’ ‘임금과 고용의 상관관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등의 과제를 탐구했던 노벨 경제학상이 2024년은 ‘국가와 제도’라는 주제를 주목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월 14일(이하 현지시각) 국가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정치·경제 제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57)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61)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64) 미 시카고대 교수 등 세 명을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야콥 스벤손 왕립과학원 경제과학상 위원장은 “국가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과제 중 하나”라며 “수상자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英 대학 출신, 美 대학서 의기투합
다론 아제모을루, 제임스 로빈슨, 사이먼 존슨 교수는 모두 영국에서 대학에 다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터키(현 튀르키예)에서 성장한 아제모을루 교수는 영국 요크대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LSE를 나온 로빈슨 교수는 워릭대를 거쳐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존슨 교수는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7~2008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교수는 2012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공동으로 저술했고, 아제모을루와 존슨 교수는 2023년 ‘권력과 진보’를 같이 썼다.
이 세 사람은 학자로서 함께 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교수는 1992년 LSE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로빈슨 교수의 세미나 발표에 아제모을루 교수가 논쟁을 벌인 것을 계기로 교류를 시작했다.
26세였던 1993년 MIT 조교수로 임용된 아제모을루는 1998년 MIT로 자리를 옮긴 존슨 교수를 만났고, 이후 로빈슨 교수를 소개하면서 세 사람의 공동 연구가 시작됐다. 이들은 미국과 호주 등 과거 유럽 식민지였던 일부 국가는 번영한 반면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등은 그렇지 못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했고, 지역별 상이한 사망률이 번영의 차이를 초래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세 사람이 2001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호주처럼 질병 발생이 덜한 곳에서는 유럽 이주민 정착이 활발했고, 이들이 공동 번영을 위해 일하고 투자할 동기를 부여하는 포용적인 제도를 개발했다. 반면, 아프리카 등 치명적인 질병 발생이 심한 곳에서는 식민지 개척자의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활동이 만연했다. 이런 차이는 식민지가 독립국이 된 이후에도 지속했고, 지역 간 번영의 차이를 초래했다.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더 이롭다”
현실 경제활동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수요·공급곡선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아니라, 사회 관습, 제도, 계약 관계에 규정된다는 제도경제학파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했다. 거래 비용 개념을 만든 로널드 코스(1993년), 경제사 연구를 통해 사유재산과 정치·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규명한 더글러스 노스(1993년), 공공재와 기업 구조 거버넌스를 정립한 엘리너 오스트롬, 올리버 윌리엄슨(2009년) 등이 대표적이다.
아제모을루, 로빈슨, 존슨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경제·사회적 제도가 국가 간 번영 수준 격차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연구했다. 공정한 시장구조,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을 실증 분석을 통해 규명한 것이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 사회 시스템을 분류하고, 포용적 제도가 국가 번영을 이끈다고 설명했다. 포용적제도는 법치주의, 민주주의 등을, 착취적 제도는 독재와 권위주의 등을 지칭한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수상자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경제 발전에 더 이롭다는 관점을 제기했다” 고 말했다.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도 경제 발전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권위주의 국가는 장기적으로 혁신과 경제 발전을 이뤄내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공지능(AI) 등 기술 진보에도 포용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아제모을루와 존슨 교수는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의 진보로 소수의 기업과 투자자만 이득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자동화가 생산성을 향상하지만, 고용이 줄어들면, 소비자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한파 경제학자 “한국, 우리가 나아갈 방향”
아제모을루, 로빈슨, 존슨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은 한국 경제에도 많은 시사점이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는 한국과 북한을 체제에 따른 경제 번영 차이의 단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슨 교수는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매우 가난하게 시작했으나, 지금의 한국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정말 놀랍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에도 한국은 매우 가난했고 독재 정권을 거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방향”이라고 했다.
부인이 한국계 미국인인 존슨 교수는 1997~98년 한국에서 근무했고 최근에도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제모을루 교수도 수상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그는 “남북은 분단되기 전에는 대등한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 측면에서 차이가 벌어졌다”면서 “(제도로 인해 남북 간 경제 규모 차이가) 10배 이상이 됐으며, 한국 경제는 민주화 이후 속도를 내고 더 건강한 방식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2022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한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 공유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스타 학자 아제모을루…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서 AI發 불평등 경고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는 25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MIT 교수에 임용되는 등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38세였던 2005년 ‘예비 노벨 경제학상’이라고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아 일찌감치 노벨상 수상을 예약했다. 2011년 미국 경제학자 대상 설문 조사에서는 폴 크루그먼, 그레고리 맨큐에 이어 ‘60세 미만의 가장 좋아하는 생존 경제학자’ 3위에 올랐다.
그는 LSE에서의 석·박사학위 과정 중에는 계량 및 수리경제학을 전공했다. ‘거시 경제학의 미시 기초에 대한 에세이: 계약과 경제적 성과’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조국인 터키에서도 소수민족인 아르메니아계라는 점이 제도의 경제 효과를 탐구하는 제도경제학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2023년 9월 13일 발간한 508호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했다. 그는 당시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인류가 인공지능(AI) 개발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자동화, 감시, 데이터 수집에 치우친 AI 개발이 지속될 경우 노동시장의 고용 안정성뿐 아니라 근로자 소득에도 타격을 줄 수 있어서, 기술 발전 방향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자동화를 촉진하는 인위적인 유인책을 없애는 방식으로 AI 연구 방향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세법에선 자동화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근로자를 고용하면 세금을 부과한다. AI가 가져올 불평등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이런 왜곡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인간을 보완하는 방향의 AI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