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암호화폐에만 쓰이는 기술이 아니다. 금융을 비롯해 디지털 전환 과정에 놓인 산업이라면 어느 분야든 블록체인을 접목할 수 있다. 분산된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다. 블록체인의 근본적인 잠재력은 여기에 있다.”
샌드라 로 글로벌블록체인비즈니스협의회(GBBC) 회장예일대 군사역사학, 런던 비즈니스 스쿨 재무회계 석사, 현 일본 경제산업성 블록체인 분야 자문위원, 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디지털자산시장 소위원회 자문위원, 전 모건스탠리 M&A 외환파생상품 자문 및 글로벌 자본시장 부문 부사장,
전 시카고거래소그룹 디지털 전환 부서 총괄임원 사진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샌드라 로 글로벌블록체인비즈니스협의회(GBBC) 회장
예일대 군사역사학, 런던 비즈니스 스쿨 재무회계 석사, 현 일본 경제산업성 블록체인 분야 자문위원, 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디지털자산시장 소위원회 자문위원, 전 모건스탠리 M&A 외환파생상품 자문 및 글로벌 자본시장 부문 부사장, 전 시카고거래소그룹 디지털 전환 부서 총괄임원 사진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가장 먼저 블록체인 기술의 대중화 사례가 나올 산업군은 금융이다. 이미 블록체인은 화폐의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있다. 이제까지 정부가 발행한 화폐만 공인받았지만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되는 암호화폐)의 등장과 함께 디지털 화폐 개념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민간에서 먼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자 누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보관하며,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는 중이다. 결국 금융권부터 신기술의 충격을 받은 셈이다.”

샌드라 로(Sandra Ro) 글로벌블록체인비즈니스협의회(GBBC)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암호화폐의 등장은 블록체인 대중화의 첫 단계일 뿐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로 회장이 이끄는 GBBC는 2017년 설립된 글로벌 블록체인 비영리 기구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현재 500여 개 기관 회원이 이 협의회에 속해 있다. 리플, 체이널리시스 등 유명 블록체인 기업부터 JP모건, 뱅크오브뉴욕(BNY) 멜런 등 대형 글로벌 금융사까지, GBBC에 참여하는 회원사 면면도 다양하다. GBBC는 블록체인 산업의 기술 및 규제 등에 대한 표준 제정을 연구하고 있다.

예일대를 졸업한 로 회장은 모건스탠리와 시카고거래소(CME)그룹을 거치며 20년 가까이 전통 금융권에 몸담았다.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 그도 처음으로 블록체인 개념을 접했다. 

로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라며 “이 시점에 비트코인을 알게 되고 블록체인 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2017년 GBBC 설립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블록체인 기술의 쓰임새는 많지 않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에만 쓰이는 기술이 아니다. 금융을 비롯해 디지털 전환 과정에 놓인 산업이라면 어느 분야든 블록체인을 접목할 수 있다. 분산된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다. 블록체인의 근본적인 잠재력은 여기에 있다. 향후 블록체인을 활용해 디지털 결제나 디지털 신원 확인 등을 도입하면 더욱 개선된 조직 간 정보 공유가 가능해진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금융을 믿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공식 채택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란 견해도 있다.

“디지털 혁신을 받아들이는 경향엔 세대 간 차이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 혹은 그 윗세대는 물리적 상품이나 현금을 더욱 신뢰한다. 그러나 Z 세대(1997~2010년생)나 알파 세대(2011년 이후 출생)는 디지털 기술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들 세대는 전통 금융기관보다 디지털 인프라를 더욱 신뢰한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25년쯤 Z 세대가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인구구조가 변하고 있다. 어떤 산업이든 Z 세대가 향후 10년 동안 미칠 영향력을 계산해야 한다. 이를 고려한다면 정부와 기업은 기존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대중화의 첫 사례가 금융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어떤 산업군에서 블록체인 활용 사례가 나올까.

“금융에서 먼저 블록체인 실사용 사례가 나왔고 다음의 이용 사례는 디지털 신원 증명일 것이다. 차세대 디지털 신원 증명은 학력, 경력, 신용 정보, 소셜미디어(SNS) 프로필 등을 모두 망라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전자지갑이 이러한 신원 증명을 담는 도구가 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실용성을 넓히기 위해 GBBC는 어떠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가.

“현재 GBBC는 글로벌 물류 및 운송 산업에 블록체인이 쓰일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술로 국제 상거래 추적 표준을 만들고 있다. 페덱스, UPS, 델타항공 같은 물류 대기업과 협력해 글로벌 공급망에 쓰일 블록체인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GBBC는 각국 정부가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싱크탱크 기능도 맡고 있다. 현재 GBBC는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규제 당국과 소통하며 블록체인 규제 수립을 돕고 있다. 뚜렷한 글로벌 표준 규제가 먼저 세워져야 블록체인 대중화의 물꼬도 터질 수 있다는 게 로 회장의 생각이다.

주요 경제 대국들은 블록체인 관련 명확한 규제를 마련했는가.

“미국의 규제 환경은 복잡하다.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방 차원의 블록체인개발사 규제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미국 내에선 암호화폐가 증권인지 상품인지 성격을 정의하는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미국 연방법상 명확한 정의는 아직 없다. 미국의 규제는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유럽은 미카(MiCA)법을 수립하면서 조금 더 명확한 규제 환경을 조성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이런 제도는 계속 고쳐 써야 하고 발전해야 한다.”

재빠르게 규제를 마련해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주도하는 국가가 있다면.

“스위스는 8년 전부터 블록체인 관련 규제를 마련해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스위스에 본사를 두도록 환경을 마련했다. 스위스의 주크는 인구 4만 명의 소도시지만 ‘크립토밸리’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암호화폐 기업의 본거지로 거듭났다. 이외에 일본은 최근 2년 동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가 이뤄지는 만큼 내년을 기점으로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하위 기구인 디지털자산시장소위원회(DAMS) 자문위원이다. CFTC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2023년 6월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최근 자문위원들은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 및 분류 체계를 확립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우리가 수립한 정의는 CFTC가 규정하는 공식 암호화폐 개념으로 채택됐다. 또한 3435개 블록체인 개발사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를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해당 보고서는 10월 공개를 앞두고 있으며 현재 CFTC의 검토를 받고 있다. 이 보고서엔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 전체의 자금세탁 방지 및 신원 증명 수준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블록체인 전체 생태계를 아우르는 연구는 이번이 세계 최초다.”

지난 9월엔 한국을 방문해 한국 금융위원회와 면담했다.

“글로벌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와 함께 김성진 금융위원회 암호화폐과장과 만났다. 이 면담에서 미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의 규제 동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금융위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GBBC가 미국과 유럽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연구 자료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평가한다면.

“적절한 규제 환경만 갖춰지면 한국은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잠재력이 있다.”

향후 한국 내 사업을 키울 계획이 있는가. 

“물론이다. GBBC는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현지 시장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 상주 인력도 차차 늘릴 계획이다. 한국 업계와 파트너십을 맺어 한국 시장 이해도를 높이고 글로벌 업계의 관점을 한국 시장에 전파하고자 한다.” 

김태호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