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가 ‘성장률 5% 안팎’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잇달아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19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을 위해 각종 정책 금리를 조정하고, 특별 국채를 발행하는 등 재정 정책까지 총동원하고 있다. 9월 24일부터 10월 17일까지 4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한동안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대해 선을 긋던 중국 정부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경기회복을 위한 중국 정부의 의지가 강력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중국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높여 잡으면서도 5%에는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1│지준율·금리 내려 190조+α유동성 공급
중국 정부의 첫 번째 경기 부양책은 9월 24일 나왔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판궁성(潘功勝) 총재와 리윈쩌(李雲澤)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吳清)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등 중국 세 개 금융 당국 수장은 이례적으로 함께 기자회견장에 섰다. 이 자리에서 판 총재는 “조만간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을 0.5%포인트 낮춰 금융시장에 장기 유동성 1조위안(약 191조원)을 제공할 것”이라며 “연말까지 3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어 상황에 따라 0.25~0.5%포인트 더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인민은행은 발표 사흘 뒤인 9월 27일 지준율을 낮췄고, 가중평균 지준율은 약 6.6%가 됐다.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낮춘 것은 올해 2월 0.5%포인트 인하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연내 지준율이 0.5%포인트씩 두 차례 인하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중국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2021년 이후 첫 사례다.
인민은행은 정책 금리인 역환매조부채권(역레포) 금리도 0.2%포인트 인하해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와 대출우대금리(LPR), 예금 금리 등이 0.2~0.25%포인트 낮아지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준율 인하와 정책 금리 인하) 두 가지 조치가 함께 시행된 사례는 최소 10년간 없었다”고 했다. 이외에도 △주택 담보대출 금리 0.5%포인트 인하 △2주택 주택 담보대출 최소 계약금 비율 인하 △부동산 개발 업체 자금 지원책 연장 △미분양 주택 재대출 출자 확대 △기업 자사주 매수 목적 대출 허용 △ 인수합병 목적 대출 확대 등의 부양책이 대거 쏟아졌다. 하지만 주톈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 교수는 “시장이 앞으로도 통화정책이 계속 완화되고 더 많은 지원이 제공될 것이라는 강력한 기대감을 가져야 하는데, 여전히 약하다”라고 했다.
2│재정·금융 중심 ‘증량 정책’ 동원
약 보름 만에 재정 당국이 또다시 나섰다. 중국 거시 정책 담당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의 정산제 주임은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속적 경기회복 촉진을 위한 점진적 정책 패키지 출시에 박차를 가할 것” 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점진적 정책 패키지란 ‘증량(增量) 정책 패키지’를 말한다. 정부 투자와 국유기업 자금 운용 확대 등을 포함한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9월 26일 “증량 정책의 효과적 이행과 추가 도입에 나서야 한다”며 직접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발개위는 △거시 정책 경기 대응력 강화 △내수 확대 △기업 지원 확대 △부동산 시장 침체 방지 및 안정 촉진 △자본시장 활성화 등 다섯 개 목표를 증량 정책 패키지의 목표로 설정했다.
문제는 재정을 얼마나 동원할지 구체적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날 발개위가 돈을 풀겠다고 밝힌 새로운 부분은 내년중앙예산 1000억위안(약 19조1000억원) 투자 계획과 연내 1000억위안 양중(兩重·국가중대 전략과 안전·안보 능력 등 중점 분야) 건설 프로젝트 목록도 미리 발표해 지방정부가 사전 작업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부분에 불과하다. 발개위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모건스탠리와 시티그룹은 각각 2조위안(약 381조원), 3조위안(약 572조원) 규모의 재정 패키지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은 올해 경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장을 더욱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추가적으로 내놓지 않아 투자자를 실망하게 했다”고 했다.


3│국채 발행·대출 확대로 부동산 위기 진화
10월 12일 중국 재정부가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란포안 중국 재정부 부장(장관)은 “중앙정부는 부채를 늘릴 수 있는 상대적으로 큰 여지를 갖고 있다”며 국채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올해 말까지 발행하기로 했던 정부채 기금 중 2조3000억위안(약 440조원)을 지방정부 재정난 완화와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활용하고, 지방채 잔액 4000억위안(약 76조원)을 지방정부 지출을 위한 재원으로 삼기로 했다. 토지 매각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재정을 꾸려나가던 지방정부가 부동산 경기 악화로 어려움에 처하자, 지원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최근 계속된 경기 부양책에 동원된 국유 은행을 돕기 위해 특별 국채를 발행하고, 지방정부에도 유휴 토지와 미분양 주택 매입을 위한 특별 채권 발행을 허용하기로 했다. 개인 소득세 환급 등 부동산 관련 세금 감면도 예고해 거래 활성화에 대한 적극 지원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국채 발행 규모 등 세부 내용은 빠졌다.
이어 니훙 중국 주택도시농촌건설부 부장은 10월 17일 국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말까지 우량 부동산 개발기업 명단인 ‘화이트리스트’ 프로젝트 대출 규모를 4조위안(약 763조원)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샤오위안치 국가금융관리총국 부국장은 전날까지 금융기관들이 화이트리스트 프로젝트에 2조2300억위안(약 425조 1700억원)의 대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1조7700억위안(약 337조4700억원)의 추가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소비 주도 경제로의 체질 전환 난항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경기회복 의지만큼은 시장이 인정하고 있다. 중국의 올해 경제 성적표 전망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IB 골드만삭스는 10월 13일(현지시각) 중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7%에서 4.9%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역시 4.7%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기존 4.3%에서 0.4%포인트 오른 것이다. 후이샨, 리셍 왕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중국 경기 부양책은 당국이 경기 순환적 정책 관리로 전환하고 경제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여전히 중국 정부가 내세운 목표치인 5%에 못 미친다.
각종 경제지표는 투자 중심의 중국 경제 체질을 소비 주도로 전환하는 노력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8월까지 18개월 연속 마이너스 또는 0%대 성장을 이어가는 등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 심각한 상황이다. 내수와 연관돼 있는 소매 판매와 산업 생산도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고, 그나마 선방하던 수출마저 9월 들어 큰 폭으로둔화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청년 실업률이 8월 18.8%까지 높아졌다는 점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가계 지갑을 닫게 하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