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국가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성하기 어렵다고 해서 목표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조금은 벅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진력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이 발생하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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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 녹색 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을 헌법불합치로 판결하였다. 해당 조항은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 비율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 목표에 관해서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는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써 필요한 성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 헌법재판관 전원의 판단이었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내년 2월 말까지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이 판결은 2020년 청소년 기후 활동가 19명의 청구로 시작하였다. 이후 2021~2023년 영유아 62명이 낸 헌법 소원을 포함, 세 건의 헌법 소원이 추가로 접수되었다. 쟁점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도록 한 탄소중립기본법이 위헌인지 여부였다. 두 번의 공개 변론을 통하여 청구인은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커져 헌법상 평등 원칙이 위배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정부는 무리한 감축 목표가 도리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헌법재판소는 최종적으로 청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럽에서는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판결이 있었지만, 아시아에서 판결이 나온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언론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헌재 “2031~2049년까지 탄소 감축 목표 만들라”

법적인 측면에서 이번 판결의 논리와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내 깜냥을 넘는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우리에게 내준 과제를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2030년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 436만6000t 배출)와 2050년 탄소 중립 목표 간 연결 경로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림으로 나타내면, 수평축이 연도, 수직축이 배출량인 그래프에서 ‘2030년 배출량 436만6000t’과 ‘2050년 배출량 영(0)’을 나타내는 두 점을 찍고, 이를 잇는 선을 그어야 한다. 어떻게 그어야 할까. 어쩌면 누군가는 두 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목표 모두 이전 정부에서 세운 것이니 바꿔도 되지 않을까. 

우선 2030년 436만6000t 목표를 변경하는 것은 어떨까. 2022년 배출량이 654만5000t이나 되는데, 2030년 목표 배출량을 느슨하게, 가령, 500만t으로 바꾸는 것은 안 될까.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2030년 감축 목표가 과소 보호 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면서, 이를 ‘2050년 탄소 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를 때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전제로 한 중간 목표’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받아들인다면, 2030년 목표를 느슨하게 재설정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주문에 어긋난다.

그렇다면 아예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바꾸는 것은 어떤가. 2050년 탄소 중립 역시 쉽지 않을 듯한데. 예를 들어, 2060년으로 약간 미루는 것은 어떨까. 

이 역시 어렵다. 탄소중립기본법 제7조 1항에서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 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판결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즉, 헌법재판소는 2050년 탄소 중립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아들인다면, 2030년 배출량 436만6000t과 2050년 배출량 영(0)의 두 점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은 5개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주어진 2030년과 2050년 두 점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누군가는 직선으로, 누군가는 위로 볼록한 곡선으로, 누군가는 아래로 오목한 곡선으로, 누군가는 지그재그 선으로. 내가 긋는 선과 당신이 그은 선은 아마 다를 것인데, 어떻게 하나의 선으로 합의해서 제8조 제1항을 개정할 것인가. 그것도 5개월 만에. 

쉽지 않다. 기술적으로도 어렵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난망해 보인다. 국회, 정부, 산업계, 시민단체 등에서 여러 안을 준비하고, 국회에서 여러 차례 토론회를 거치는 동안 개정 시한은 훌쩍 지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정치적 스캔들이라도 일어난다면 타협의 시간은 더 미뤄질 것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이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 소원 최종 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소송 청구인인 한제아양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이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 소원 최종 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소송 청구인인 한제아양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당신의 선’은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의 주문은 전문가나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나라면 그 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한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50년까지 매년 동일한 양을 줄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신은 두 점을 직선으로 이을 것이다. 

아니면 이왕 줄이는 것, 일찍 많이 줄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되면 ‘당신의 선’은 아래로 오목한 곡선이다. 혹은 새로운 감축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려 나중에 많이 줄이는 것인가. 당신은 위로 볼록한 곡선을 선택했다. 

이렇게 단순하게 시작해 당신만의 선을 찾는 과정에서 당신의 생각은 풍성해질 것이며, 나의 것과 상대의 것이 다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결국에는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최종 결정될 것이지만, 그래도 서로의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참고로, 나는 총감축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두 점을 잇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로, 2030년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 중립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리고 결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명문화하는 것은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도 2030년 국가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성하기 어렵다고 해서 목표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 자체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충분히 이루어진 상황에서, 조금은 벅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진력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이 발생하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낼 수 있다. 

과학 저술가 매트 리들리(Matt Ridley)에 따르면, 혁신은 ‘한 개인이 일으키는 현상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점진적이고 혼란스럽게 뒤얽힌 네트워크 현상’이며, 정부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네트워크가 발현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지키지 못할 가상의 선을 긋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쉬쉬하였던 2050년까지의 국가 감축 목표 경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 해외 사례의 지루한 인용을 넘어서, 우리나라 기후·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논의하자. 재생에너지, 원전, 전기 요금, 수소, 석탄 발전 폐쇄 등 산발적으로 다루어졌던 에너지 현안을 성장 동력의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에너지 공기업에 어떠한 역할을 부여할 수 있는지 구체화하자. 

한국문학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단히 역량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결코 불가능해 보였던 노벨 문학상이라는 경이가 벼락처럼 찾아왔던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탄소 중립에 어느새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