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1│“외국인에게는 변리(이자)를 놓더라도 같은 동족에게는 변리를 놓지 못한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것이 애초부터 철저히 지켜지지 않았거나, 후세에 변질된 탓인지 신약성경에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에 이자가 동원되고 있다.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며 세 명의 종에게 능력에 따라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관리할 것을 지시했다. 이 사람이 한참 만에 집에 돌아오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이 돈을 두 배로 불려 놓았으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이를 그냥 땅속에 묻어 놓았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주인은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 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는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 주어야 할 것 아니냐(마태복음 25장 27절)”라며 그 쓸모없는 종을 내쫓았다.
#2│구약성경도 금지하지 못한 이자 관행을 중세 들어서 교회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관행은 ‘은밀히’ 계속됐다. 영국만 해도 저리든 고리든 대금업이 성행했는데 이를 ‘유저리(usury)’라 불렀다. 그러나 죄악시 된 이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다른 말로바꿔 부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빌려준 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 채권자에게 그 ‘보상금’ 형태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관행은 인정됐는데 이는 ‘인터레세(interesse)’ 라 불렸다. ‘inter(사이에)’와 ‘esse(있다)’에서파생된 이 단어에서 ‘이해관계’라는 뜻이 나왔고, 14세기 말에는 ‘손해에 대한 보상’이라는 뜻으로 확대됐다. 이후 이 말은 아예 금리나 이자를 뜻하게 됐다.
#3│경제학에서는 금리정책을 재정 정책과 함께 정책 당국이 경기를 조절하는 두 축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 중 무엇이 더 효과 있다고 주장하느냐에 따라 ‘통화론자(mone-tarist)’와 ‘케인지언(Keynesian)’으로 학파가 나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중 통화정책의 주요 정책 조절 변수인 금리의 경우 세 가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체효과’ ‘자산 효과’ 그리고 ‘소득 효과’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 불황 시 금리가 인하되면 은행 예금의 매력이 떨어져 가계는 저축을 덜 하고 소비를 늘리는 반면, 기업은 은행 대출이자가 낮아져 부담이 적으니 돈을 빌려 투자에나설 것이다. 즉 금리 인하로 저축이 소비와 투자로 바뀐 것이다. 또한 금리 인하는 (거의 반드시) 집값과 주가를 올리는데, 덕분에 두둑해진 지갑을 소비자가 열면서 경기가 부양된다. 즉 오른 자산 가격이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인 효과도 있다. 예금 형태로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고 부채가 적은 가계는 금리 인하로 인해 이자 소득이 감소하게 되고, 이에 따라 소비를 줄이게 된다. 경제 내에 이런 가계가 많으면 금리 인하는 오히려 경기를 더 나쁘게 할 것이다. 일본의 30년 이상 장기 불황이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60세 이상 인구가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고, 현금 및 예금 비중 역시 절반이 넘는 일본 가계의 특징이 불황 장기화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10월 11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며 금리 인하에 나섰다. 이제 물가도 잡혔고, 경기 상황도 심각해졌으며, 미국도 금리를 인하했다는 점 등을 금리 인하 이유로 내세웠다. 그간 금리가 높아졌음에도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아파트 가격 과열 상태인데 금리 인하가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점은 우려되지만,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최근 거래량이 감소하는 등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은행은 차주(借主) 1인당 연간 대출 이자가 15만원 정도 줄어들며, 전체 차주의 이자 부담이 연간 3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 초 발표된 통계(가계금융복지조사)로 추산컨대 기업의 부담도 같은 규모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부담 경감이 경기회복에 얼마나 큰 효과를 낼까. 같은 통계에 의하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 예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2279조원인 데 반해, 가계 대출금은 2164조원이었다. 예금이 대출금보다 115조원가량 더 많은 것이다. 이는 금리 인하는 예금에서 얻는 수익도 그만큼 상쇄한다는 것을 뜻하며, 소비 증가에 의한 경기 부양에 그리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거듭된 금리 인하에도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집값만 폭등을 거듭한 것이 그 예다.
특히 인구구조가 급속도로 일본을 닮아가는 우리나라도 고령화로 인해 고령 인구 비중이 많이 늘어난 상태에서 그들의 예금 비중도 매우 큰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금리 인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또한 고령층은 특성상 금리 인하로 집값이 올라도, 집을 팔아 현금화할 가능성이 작은 만큼 자산 효과도 적다. 게다가 한국 경제는 장기간 저금리로 인해 체질이 크게 악화해 왔던 점도 금리 인하 효과를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저금리 체제가 여러 해가 지나 정권이 거듭될수록 갈수록 더 심화해 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20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가 쌓였다. 신용카드 장려 정책 등 ‘빚 권하는’ 정부 정책은 차치하고라도, 저금리 유혹이 갈수록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금리는 필연코 집값을 상승시켜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이런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저금리→집값 상승→가계 부채 증가→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 증가, 고령층의 이자 수입 감소→소비 부진→저성장→ 저금리’의 악순환이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됐다.
그렇다면 향후 금리 인하가 긍정적인 효과를 내되, 부정적인 효과는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런 묘수가 없을까.
첫째, 금리 인하 시 가장 큰 부작용인 집값 상승은 더욱 잡아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 때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증명된 세금 인상은 지양하되 현행 대출 규제 등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동산 중개 업계에서 지난 2년간 금리 인상기에도 강남 집값 폭등 원인으로 지목되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의 수요에 대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9만 가구 이상의 주택을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고 이 중 중국인 비중이 55%를 넘어서고 있다. 수도권 집중도 심해 73%의 외국인 소유 주택 소재지는 수도권이다. 중국인은 우리나라의 대출 규제를 받지 않아 자국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오며, 향후에도 자국의 경제 부진 심화와 정치 불안으로 더욱 한국으로 몰릴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에 대한 취득세 차등 부과 등을 고려해 봄 직하다.
둘째, 더욱 장기적으로 고령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 노력과 함께, 정년 연장을 통해 이들 계층의 예금 소득 의존도를 낮춰 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년퇴직자를 더 낮은 임금으로라도 재고용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등을 크게 강화하는 정책 등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는 금리 인하의 경기 부양 효과는 향후 경제주체의 소비 및 투자 심리에 크게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나아가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높아질 필요가있다. 안타깝게도 낮은 대통령 지지도 등은 영부인 관련 문제 등으로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를 살리려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시 금리는 그 어원대로 이해관계가 제대로 정리돼야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