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의 일이다. 지인 중 한 사람이 만취한 상태에서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100% 그 사람 과실이었다. 자가용이 상대적으로 큰 덤프트럭을 받아 사고가 나서인지, 상대 차량은 차량 후미가 약간 파손되었을 뿐 인명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사고 당사자와 동승자는 팔과 다리에 영구 장애가 생겼고 그로 인해 평생을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지인은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해, 약간 각색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 지인은 워낙 학문적 업적이 탁월하고, 다양한 분야의 행정 경험이나 실무 역량이 뛰어났다. 정파적인 색채도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여러 언론에서 중용될 주요 인물로 거론하곤 했다. 그 지인의 출세 지향적 욕구도 만만치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에게는 오래전 젊은 시절에 음주 운전으로 인해 새겨진 주홍 글씨가 워낙 선명했다. 결국 그는 청문회를 거치는 직책은 말할 것도 없고, 변변한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하고 변방을 떠돌다가 지금은 잊힌 사람이 됐다.
사람이 왜 음주 운전을 하는가 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사람은 왜 술을 마시는가, 더 나아가 한국에는 어떤 음주 문화가 있는가 등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예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시한 ‘바람직한 음주 습관 십계명’을 보면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십계명에는 낮은 도수 술 마시기와 폭탄주 금물에서 시작해, 빈속에 술 마시지 않기, 술 천천히 마시기, 술잔 돌리지 않기, 술 권하지 않기 등이 포함돼 있다. 또 거절 의사는 확실히 밝히라, 매일 마시지 말라, 술자리는 1차로 끝내라, 약을 먹을 때는 술을 마시지 말라도 있다. 물론 ‘음주 운전 절대 금물’이라는 계명도 들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이런 권고 사항을 뒤집어 보면 우리나라 음주 문화를 잘 알 수 있다.
이런 음주 문화는 특정 계층,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러한 음주 문화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방송가에는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한국 배우들이 거의 예외 없이 가장 리얼리티를 잘 살리고, 별다른 NG 없이 잘 소화해 내는 연기가 음주 연기라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음주는 일상화된 매우 친근한(?) 국민 문화라는 말이다.
사람은 왜 술을 마시는 것일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한국 남자는 워낙 일밖에는 모르고 제대로 노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오직 시간을 술 마시는 것으로 때우기 때문일까. 융심리학자 이부영 교수의 진단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대인관계를 할 때 진정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관계를 만들어 가려 하지 않고, 하룻저녁에 즉흥적인 알코올 소비로 상대방과 성급한 ‘정신의 합일(合一)’을 이루려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음주 문화는 일상화된 직간접적인 경험이기에, 음주 운전의 폐해 역시 굳이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신경계 기능을 억제해 시야를 제한하고, 반응 속도와 주의력, 판단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자제력을 잃어버리게 해 평소 하지 않는 위험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음주 운전을 하는 것일까.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도록 진화돼 왔다.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추구하거나 배우자를 구하는 데 유리했다는 것이다.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맹수를 사냥해 온 사냥꾼은 그 무리 안에서 타인보다 더 나은 보상과 지위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갑질의 뇌’ 영향… 위험한 행동, 습관적으로 반복
하지만 이렇게 인류의 뇌에 깊이 새겨진 위험 감수 성향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적응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 인간 뇌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생존하거나 사회적인 유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래서 오늘날의 복잡한 시스템과는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한다. 옛날에는 위험 감수 성향에 따른 보상이나 부작용은 오롯이 자신 혼자만 짊어지면 끝나는 것이었다. 다만 오늘날 음주 운전 같은 위험 감수 행동은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 없는 타인의 귀중한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중대한 범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오래전부터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즉각 보상이 생존에 더 유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냉장고 등의 저장 시설이 없었던 시절에는 한 번 사냥한 동물은 적절한 분배가 끝난 이후, 부패하기 전에 가능하면 빨리 먹어 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귀한 단백질과 지방의 원천이었다. 또 눈앞에 나타난 베리 열매 서식지도 마찬가지였다. 베리 같은 달콤한 열매는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많이 먹어두지 않으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귀중한 당원(糖源)이었다. 과도한 지방과 당분 섭취로 골머리를 앓는 현대인 역시 이런 즉각적 보상에 집착하는 바람에 비만, 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린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음주는 그 자체로 빠른 보상을 보장하는 활동이었다. 술을 마시면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돼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렇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함, 쾌감, 자신감 증가 등 긍정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 물론 장기적인 음주로 인한 부작용은 또 다른 문제다.
이렇게 즉각적인 보상에 익숙한 인류는 음주로 인한 즉각적인 쾌감 회로의 작동에 이은 즉각적 귀가라는 보상을 추구한다. 대리운전을 부르고 기다리는 시간적 지체 없이, 빠른 귀가가 가져다주는 즉각적인 편리함이라는 보상이 안전한 귀가라는 장기적 보상을 앞선다. 게다가 대리운전은 기다리는 시간뿐만 아니라, 별도로 대리운전 비용까지 치러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요즘 영어권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유명인이나, 사회 지도층 등 공인을 ‘셀럽(celeb)’ 이라는 단어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과 달리 셀럽의 경우에는 또 다른 심리가 작동한다. 일부 셀럽 중 자신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법과 규칙 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과 특권 의식은 술을 마신 뒤에도 자신은 통제력이 있다고 믿게 한다. 일부 이런 셀럽이 평소 누리는 권력과 지위에 따른 강한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비판과 성찰 기회를 앗아간다. 더구나 주위 사람이 그들을 지나치게 예우하면서, 아첨과 아부에만 익숙해진 이들은 단순한 ‘승자의 뇌’가 아니라 ‘갑질의 뇌’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평소 자기 행동에 어떤 비판이나 지적을 받아보지 못한 일부 셀럽 중에는 술을 마시면 객관적인 자기 평가 능력이 더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잘못된 행동을 해도 어떠한 경고나 저항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이미 갑질의 뇌로 변한 일부 셀럽은 위험한 행동을 아무런 제지 없이, 어떤 죄책감도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한다. 이것이 상습적인 음주 운전자 중에 셀럽이 많은 이유다. 그들은 음주 운전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도 어떤 반성도 없다. 오히려 큰소리친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돈 많고, ‘빽’ 있는 사람이야!” 그러다가 술이 깨고, 사건이 공론화되면 진정성 없는 사과와 음주 운전을 반복한다. 이부영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술은 어머니와 같은 것, 인간은 때때로 어린애처럼 그녀의 품에 기대어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참아야 할 때는 참고, 깨어 있어야 할 때는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일에도 때가 있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노교수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나저나 그들이 이부영 교수의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기나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