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마르칸테 아카디아 재단 설립자가 10월 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피카소 추정 작품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AP연합
루카 마르칸테 아카디아 재단 설립자가 10월 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피카소 추정 작품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AP연합
이탈리아 카프리섬의  가정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피카소 추정 작품의 왼쪽 상단 서명 부분. /AP연합
이탈리아 카프리섬의 가정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피카소 추정 작품의 왼쪽 상단 서명 부분. /AP연합
정철훈 미술칼럼니스트고려대 대학원 문화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정철훈 미술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10월 2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한 고물상은 수십 년 전 이탈리아 카프리섬의 가정집 지하실에 버려져 있던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고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못생기고 끔찍하게’ 보이는 그림을 거실 벽에 약 50년 동안 걸어뒀다고 한다. 당시 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집 벽에 걸린 그림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수십 년간 그림의 진품 여부를 알아내려 노력했고, 최근 스위스 예술품 감정·복원 비영리 단체 아카디아 재단으로부터 거장 피카소의 작품으로 보인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그림을 감정한 재단은 사용된 물감이 그림이 제작됐을 당시 피카소가 사용한 물감과일치하며, 그림 왼쪽 상단에 있는 서명 또한 피카소의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의 가치는 약 660만달러(약 89억1330만원)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처럼 가끔 외신에 나오는 로또 같은 명작과의 인연은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자코메티가 나타났다

1960년 즈음 영국 런던 말리본에 위치한 골동품 가게에 한 화가가 나타났다. 그는 가게를 둘러보다가 ‘작자 미상’이라고 적힌 샹들리에를 보고 단숨에 250파운드(약 44만원)를 지불한다. 샹들리에를 구매한 화가의 이름은 존 크랙스턴(John Craxton·1922~2009)이다. 당시 영국에서 꽤 알려진 화가였다. 크랙스턴이 단숨에 구매한 그 샹들리에는 곧이어 경매에 출품되면서 화젯거리가 됐다. 세계적인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66)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된 자코메티의 ‘피터 왓슨을 위한 샹들리에’는 다층 구조의 뼈대와 중앙 줄기에서 뾰족한 가지가 다양한 각도로 날카롭게 방사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각 지점은 섬세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코메티는 가늘고 얇은 막대기 같은 인물의 조각으로 유명한, 미술 시장에서 놀라운 기록을 가진 작가다. 2015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포인팅 맨’은 1억4130만달러(약 1908억2565만원)에 낙찰됐다.

크랙스턴은 이 샹들리에가 그의 후원자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피터 왓슨(Peter Wat-son, 1908~56)이 소유했던 샹들리에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알아차린 것으로 전해진다. 왓슨이 운영하던 잡지사 로비에 걸려있던 샹들리에는 1950년 잡지사가 문을 닫은 이후 사라졌는데, 10여 년이 지나서 크랙스턴이 골동품 가게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왓슨은 자코메티에게 이 샹들리에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다락방에서 발견된 카라바조 추정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위키피디아
프랑스 다락방에서 발견된 카라바조 추정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위키피디아
알베르토 자코메티, ‘피터 왓슨을 위한 샹들리에’. /크리스티스
알베르토 자코메티, ‘피터 왓슨을 위한 샹들리에’. /크리스티스

잭슨 폴록이 누구예요?

은퇴한 여성 트럭 운전사인 미국의 테리 호턴(Teri Horton)은 1992년 어느 날 친구의 생일 선물을 위해 벼룩시장을 찾았다. 마침 그녀의 눈길이 간 그림이 있었다. 빨간색, 흰색, 검은색 및 노란색 페인트가 튄 자국으로 가득 찬 큰 그림이었다. 그녀는 5달러(약 6800원)로 흥정하며 그림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림을 친구에게 선물했다. 이동식 주택에 살고 있던 친구는 그림이 너무 커 집 안에 들여놓기 여의치 않자, 그림을 다시 호턴에게 돌려줬다. 호턴은 이 큰 그림을 처분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주말 차고 판매에서 그림을 내놨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지역의 미술 교사가 마당에 내놓은 그림을 보고,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56)의 그림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호턴은 “잭슨 폴록이 누군데요?” 되물었다. 폴록은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트럭 운전사 호턴은 그림이 진품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방으로 전문가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전문가 반응은 냉담했다. 폴록과 같은 현대 작가의 작품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미술계가 아닌 과학적인 방법으로 눈을 돌려 캔버스 뒷면에서 지문을 찾았다. 호턴은 그것이 폴록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폴록의 작품으로 현재까지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진품으로 인정된다면 그녀의 그림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가격이 될 가능성이 있다. 2006년 경매에서 폴록의 ‘넘버.5(No.5)’는 1억4000만달러(약 1890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1억유로 그림을 다락방에서 찾다

2014년, 프랑스 툴루즈의 한 집주인은 지붕에 빗물이 새자 다락방을 살폈다. 그러던 중 먼지로 덮인 얼룩진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오래된 그림이라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싶어 경매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을 방문한 친구는 조심스럽게 면봉을 사용해 그림에 그려진 얼굴을 닦아내고, 카라바조(Caravaggio·1573~1610)의 그림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곧이어 파리에 본사를 둔 미술품 감정사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림은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로 여겨졌는데, 카라바조가 그린 같은 이름의 그림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모작일 가능성이 컸다. 2019년 미술품 감정사는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이 그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5년 동안 그림에 대한 다각도의 고증과 연구를 진행한 결과, 그림은 1607년 카라바조가 나폴리를 떠날 때 나폴리에서 함께 작업실을 사용하던 플랑드르의 화가 두 사람에게 남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작품은 진위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일부 미술품 감정사는 이 작품이 이탈리아에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과는 다른 것이며, 카라바조가 아니라 작업장을 공유했던 루이스 핀슨(Louis Finson)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또 다른 감정사들은 이 작품이 카라바조의 두 번째 버전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 정부는 이 그림에 대한 국외 반출을 금지하고, 진위를 가리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 2019년 루브르박물관과 소유자는 1억유로(약 1475억1500만원)에 거래를 시도했으나 불발됐고, 작품은 비공개로 미국의 수집가에게 팔리게 된다.

벼룩시장이나 다락방,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미술품이 명작임을 알아본 수집가에 의해 보물로 다시 탄생하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이 오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미술품이라도 보는 안목이 없으면 알 수 없다. 이런 행운도 평소에 관심 어린 눈으로 볼 때 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을 떠나,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철훈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