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보워 수비안토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20일 자카르타 메르데카 궁전에서 내각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프라보워 수비안토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20일 자카르타 메르데카 궁전에서 내각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프라보워 수비안토(73·이하 프라보워)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20일(이하 현지시각) 공식 취임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에서 조코 위도도(63·이하 조코위) 시대가 10년 만에 막을 내렸다. 프라보워는 2014년 6%포인트, 2019년 11%포인트 차이로 조코위에게 밀리며 대선에서 두 차례 낙선한 인물이다. 2019년 대선 직후 조코위는 프라보워를 국방부 장관으로 전격 임명했고, 프라보워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조코위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7·이하 기브란) 수라카르타 시장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발탁하며 화답했다. 또 조코위 정부의 핵심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해, 사실상 여당 후보로 여겨졌다. 프라보워 정부는 사실상 ‘조코위 2기’의 연장선으로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군인 출신, 독재자 수하르토가 장인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주류인 자바족(族)의 명문가 출신 자제다.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 국영 은행 BNI의 설립자이고, 아버지는 인도네시아를 32년간 철권 통치한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 내각에서 경제부 장관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다.

프라보워는 군인으로서 이력이 돋보인다. 인도네시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 특수부대에 복무했다. 1983년 수하르토의 딸 시티 헤디아띠 하리야디(65)와 결혼하며 수하르토의 오른팔로서 승승장구했다. 수하르토의 독재를 비판하는 군인이나 정치인을 입막음하는 데 앞장서 왔다.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1998년 3월 인도네시아 육군 최정예 부대인 코스트라드(전략 예비군) 사령관에 올랐다. 하지만, 그해 5월 인도네시아 내부에서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저항이 커지고 수하르토가 하야하면서 상황이 뒤바뀐다. 프라보워는 1998년 민주화 운동가를 납치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불명예제대했고, 같은 해 아내와도 이혼했다. 프라보워와 아내 사이에는 패션 디자이너인 아들(40)이 한 명 있다.

프라보워는 불명예제대 이후 요르단 등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2000년대 초 인도네시아로 귀국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여기에는 남동생 하심(70)의 도움이 있었다. 1990년대부터 기업인으로 활동한 하심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에너지 재벌이다. ‘포브스’ 는 2020년 하심의 재산을 68억5000만달러(약 9조3681억원)로 추산한 바 있다. 프라보워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제지·팜유 등 사업에 성공하면서 부자가 됐는데, 뉴욕타임스(NYT)는 “프라보워가 1억3000만달러(약 1777억8800만원)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곧 정계로 돌아간 프라보워는 2008년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을 창당했고, 보수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대권 후보로 떠올랐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20일 취임식을 마친 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EPA연합
프라보워 수비안토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20일 취임식을 마친 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EPA연합
2월 14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오른쪽) 당시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이 표본 조사 개표 결과를 확인하고 막춤을 추고 있다. 왼쪽은 조코 위도도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사진 로이터뉴스1
2월 14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오른쪽) 당시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이 표본 조사 개표 결과를 확인하고 막춤을 추고 있다. 왼쪽은 조코 위도도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사진 로이터뉴스1
2월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 지지자가 프라보워 수비안토와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캐리커처로 표현한 그림을 들고 있다. /사진 로이터뉴스1
2월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 지지자가 프라보워 수비안토와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캐리커처로 표현한 그림을 들고 있다. /사진 로이터뉴스1

조코위 계승하며 당선

프라보워는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 대선에서 국민에게 인기 높았던 조코위에게 연거푸 패배했다. 조코위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자, 첫 문민 대통령이란 점에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불렸다. 프라보워의 정적이었다. 프라보워는 두 차례 대선 직후 매번 부정투표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선거 결과 불복 소송을 내기도 했다. 

2019년 대선 직후 조코위는 프라보워를 국방부 장관으로 전격 임명했고, 프라보워는 조코위와 맞서는 대신 협력했다. 2014년부터 집권해 온 조코위가 3선 제한에 걸려 출마하지 못하게 되자, 프라보워는 조코위 정책을 계승한다고 공언하며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임기 말이지만 지지율이 80%에 육박하는 조코위의 인기를 물려받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프라보워는 조코위의 장남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조코위는 선거법을 바꾸면서까지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은 40세 이상만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에 출마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데,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연령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조코위의 매제가 소장을 맡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인용하면서다. 요에스 케나와스 인도네시아 아트마자야대 연구원은 NYT에 “조코위의 진짜 목표는 아들의 2029년 대선 출마이며, 부통령직은 이를 위한 수습 기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라보워는 결국 지난 2월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58.6%로 승리했다. 각각 24.9%, 16.5%를 득표한 2·3위 후보를 많은 득표수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조코위 인기를 등에 업은 것과 함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군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귀여운 할아버지’ 이미지를 내세우며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로부터 지지를 얻은 것이 유효했다. 유세 현장에서 막춤을 추는 모습이나 반려 고양이에게 격한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틱톡에서 홍보하고, 한국식 손가락 하트로 기념사진을 찍는 식이다.

영국 BBC는 지난 2월 “인권침해와 민주화 운동가 실종 혐의에 시달리던 전직 특수부대 사령관이 귀여운 할아버지 밈(meme·인터넷 유행 비유전적 문화 요소)이 되었다”면서 “프라보워 수비안토라는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 인도네시아인이 겁에 질렸을 때가 있었는데, 젊은 유권자는 국방부 장관의 매끈한 변신에 매료된 듯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NYT 인터뷰에서 21세의 한 인도네시아 유권자는 “프라보워는 재밌고 유머러스하며, 친절하고 상냥해 보인다”면서 “프라보워의 과거를 얼마 전에야 SNS에서 알게 됐는데, 그도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신임 내각 절반이 조코위 정부 출신

프라보워는 기존 정부의 핵심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라보워의 그린드라당은 조코위가 속한 투쟁민주당 등 6개 정당과 함께 연립 여당을 이루고 있다. 프라보워는 취임식을 마친 뒤 장관과 정부 기관장 등 총 109명에 이르는 내각 명단을 발표했는데, 조코위 시절 내각 구성원의 거의 절반을 다시 기용해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꾀했다.

외교부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인도네시아 대선 결과 분석 및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서 “프라보워는 전반적으로 조코위의 정책을 계승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다운스트림 산업 육성 등을 포함한 국내 정책은 대체로 조코위 정부의 방향과 기조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다. 다운스트림 정책은 조코위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천연자원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는 대부분 원자재로 수출한다.

외교안보연구소는 “프라보워 정부의 외교정책은 미국과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면서 “미·중 사이에서 프라보워의 인도네시아는 비동맹 외교를 견지하며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실용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교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집권 중반기 이후부터 프라보워는 조코위 그림자를 넘어 자신만의 업적과 정치적 유산을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정책적 행보를 보일 것으로 연구소는 전망했다. 연구소는 “프라보워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등 민족주의적 접근을 취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내다봤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