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동부 케손시티에 있는 졸리비 매장. /사진 블룸버그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동부 케손시티에 있는 졸리비 매장. /사진 블룸버그

‘동남아시아 음식’ 하면 ‘뿌팟퐁커리(게 카레 볶음)’와 ‘똠얌꿍(새우 수프)’ 등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태국 요리나 쌀국수로 대표되는 베트남 음식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식인 ‘나시고랭(볶음밥)’ 과 ‘미고랭(볶음면)’도 빠지면 섭섭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인구 약 1억6000만 명으로 동남아시아 2위 대국인 필리핀 음식은 접하기 쉽지 않다. 대신 필리핀에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체인 ‘졸리비(Jollibee)’ 본사가 있다. 

1975년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동부 케손시티에서 토니 탄 칵티옹(71)이 아내와 함께 창업한 ‘매그놀리아’ 아이스크림 가게가 졸리비의 모체다. 그로부터 49년이 지난 지금 졸리비는 필리핀은 물론 미국과 중국,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 17개국에 1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얼마 전에는 북미 매장 100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영국의 브랜드 전문 평가 기관 브랜드파이낸스는 지난 3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레스토랑 브랜드’ 평가에서 졸리비가 중국의 루이싱(瑞幸·Luckin)커피에 이어 2위라고 발표했다. 14억 거대 시장을 등에 업은 루이싱커피는 중국 내 매장 수 1만8590개로 2위 스타벅스(6975개)에 크게 앞서 있다. 브랜드파이낸스는 당시 졸리비의 브랜드 가치를 23억달러(약 3조1459억원)로 산정했다. 졸리비의 2023년 매출은 2441억필리핀페소(약 5조8240억원)로 전년 대비 15.2% 늘었다.

지난 7월, 아직 매장이 없는 국내에서 졸리비의 위상을 확실히 각인시킨 사건이 있었다. 가맹점 수 기준 국내 3위 커피 프랜차이즈인 컴포즈커피를 졸리비가 인수한 것. 졸리비는 10월 2일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엘리베이션PE와 함께 컴포즈커피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졸리비가 지분 70%를, 엘리베이션PE가 25%의 지분을 갖는다. 나머지는 졸리비 지분이 90%를 차지하는 타이탄다이닝펀드가 가져간다. 인수 금액은 4723억원이다. 졸리비는 한때 ‘콩다방’으로 불리며 스타벅스 라이벌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커피 전문점 커피빈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7월 미래에셋자산운용 사모펀드(PE) 컨소시엄이 보유한 커피빈 지분 80%를 인수했다.

햄버거와 치킨이 주메뉴인 필리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졸리비가 햄버거의 본고장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졸리비가 거느린 외식 업체들. /그래픽 손민균
졸리비가 거느린 외식 업체들. /그래픽 손민균

성공 비결 1. 최고의 교과서는 고객

탄 회장의 부모는 중국 푸젠(福建)성 출신이다. 부친은 필리핀으로 건너간 뒤 마닐라의 한 불교 사찰 요리사로 일하다 이후 필리핀 남부 다바오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몰라도 탄 회장은 대학(필리핀 산토토머스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도 요식업에 관심이 많았고, 고객의 취향과 ‘맛집 트렌드’를 읽는 데 능숙했다. 7남매 중 셋째인 탄 회장은 2013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린 시절 입맛이 유독 까다로워 모친이 힘들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럭저럭 장사가 잘되던 매그놀리아 아이스크림 체인을 햄버거와 치킨 중심의 졸리비 프랜차이즈로 전환한 것도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매그놀리아를 운영하던 시절, 그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다른 업체보다 큰 스쿠프(scoop·아이스크림을 뜰 때 쓰는 국자같이 생긴 숟가락)를 사용했다. 고객은 싫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고싶어 하는 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신메뉴로 선보였는데, 아이스크림보다 반응이 좋았다. 결국 매그놀리아는 1978년 졸리비로 이름을 바꿨고(졸리비는 이 해를 창업 원년으로 기념한다)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매장을 늘리기 시작했다.

성공 비결 2. 철저한 시장 조사는 기본

햄버거·치킨 프랜차이즈로 업종 전환을 결정한 탄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닐라 시내에 입점한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를 최대한 많이 맛보는 것이었다. 경쟁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고객 입맛을 분석해 단번에 ‘대박 메뉴’를 내놓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얌버거(Yumburger)’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졸리비는 필리핀의 국민 패스트푸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치킨조이’와 ‘졸리스파게티’ 등 졸리비의 다른 스테디셀러 메뉴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치킨조이는 지난 8월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의 ‘최고의 패스트푸드 치킨’ 설문 조사에서 파파이스와 칙필레이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치킨조이는 바삭하고 육즙이 가득한 프라이드치킨이다. 오리지널과 매콤한 스파이시 두 가지가 있으며, 그레이비소스를 제공한다. 

탄 회장은 일흔이 넘은 요즘도 해외 일정 중 자유 시간 대부분을 외식업 트렌드 조사와 맛집 투어를 하며 보낸다. 뭔가 특별한 메뉴를 발견하면 관련 분야의 인수 가능한 매물을 찾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국내에도 지점이 있는 딤섬 전문점 팀호완, 미국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 스매시버거, 필리핀 피자 체인 그리니치피자, 베트남 국민 커피 브랜드 하이랜드커피 등이 졸리비그룹의 일원이 됐다. 사업권을 가진 브랜드까지 확대하면 진용은 더 화려해진다. 졸리비그룹은 레스토랑 체인 하드록카페 베트남 사업권, 던킨 중국 사업권, 중식 패스트푸드 판다익스프레스 필리핀 사업권, 버거킹 필리핀 사업권, 일본 덮밥 체인 요시노야(吉野家)의 필리핀 사업권 등을 가지고 있다. 탄 회장의 10월 23일 기준 ‘포브스’ 추정 자산은 14억달러(약 1조9146억원)다. 

성공 비결 3. 적이 싸우기 힘든 곳에서 싸워라

탄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졸리비그룹을 글로벌 레스토랑 제국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의 그런 꿈은 맥도널드가 1981년 필리핀에 진출하면서 처음으로 큰 도전에 직면했다. 당시 매장이 다섯 개에 불과했던 졸리비가 현대적인 햄버거의 창조자나 다름없는 맥도널드와 경쟁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후에 탄 회장은 “아직 수익이 괜찮을 때 졸리비를 매각하고 빠지라”고 조언한 친구가 많았다고 털어놨다(그랬으면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패티를 뒤집고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맥도널드의 장단점을 파악한 그는 맥도널드가 고유의 경쟁력을 희생하면서 달콤하고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필리핀 사람의 입맛에 다가가는 건 힘들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탄 회장과 졸리비는 ‘미국에서 온 정통 햄버거’를 표방한 맥도널드와 달리 필리핀 사람의 입맛에 맞는 패스트푸드 메뉴에 집중했다. 달콤한 토마토소스로 조리한 졸리스파게티가 대표적이다. 얌버거에 들어가는 마요네즈도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또 다른 인기 메뉴인 ‘햄버그스테이크’는 햄버거 패티에 쌀밥을 곁들였다. 빵 없이 밥과 고기를 내놓고 그 위에 그레이비소스를 얹은 것. 동남아시아답게 쌀알이 가늘고 찰기가 적은 ‘안남미’가 나온다. 이 같은 차별화 노력이 호응을 얻으면서 졸리비는 맥도널드와 KFC를 제치고 필리핀 1위 패스트푸드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졸리비의 상징인 꿀벌 마스코트도 맥도널드의 공격에 앞서 1980년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탄 회장은 졸리비의 꿀벌이 부지런하고 낙천적이며 쾌활한(jolly) 필리핀 사람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꿀벌 마스코트를 만든 건 어린이의 환심을 사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후 필리핀의 많은 어린이가 부모에게 “졸리비에서 생일 파티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는 후문이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