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11일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하한 배경으로 ‘낮아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지목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은 “국내 물가 상승률은 안정세가 뚜렷해졌다”면서 “9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유류 가격의 큰 폭 하락으로 1.6%로 낮아졌다. 앞으로 물가 상승률은 낮은 수요 압력으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낮아진 물가 상승률’을 소비자는 체감 못 한다. 오히려 김장철을 앞두고 체감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0월 21일 기준 배추 1포기당 소매 가격은 9162원으로 평년(4912원)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무도 1개당 3586원으로 전년(2163원)보다 65% 뛰었다. 한은이 발표하는 소비자 동향 조사에 따르면, 10월 물가수준전망CSI는 147로 9월(144)에 비해 3포인트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하향 안정에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소비자가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체감 물가와 공식 소비자물가의 괴리에 대해 통계청은 ①소비자가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흐름 ②물가 상승 횟수와 폭 ③소비자의 물가 인식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1│소비자가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흐름
전체 가구의 물가 변동을 보여주는 소비자물가지수는 458개 품목의 평균적인 가격 변동을 측정한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액 비중을 근거로 가중치를 정하여 산출되기 때문에, 가격이 낮은 품목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그러나 체감 물가는 구매 횟수가 많은 상품 가격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주 구입하는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비록 지출 금액이 적더라도 구매 때마다 가격이 상승했음을 인지하게 되고, 그에 따라 체감 물가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면서 “구매 빈도가 높은 신선 식품 등이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채솟값 급등으로 인한 생활물가지수의 상승은 체감 물가를 불안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특히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024년 9월까지 채솟값은 급등세를 지속했다. 29개월간 배추는 112%, 상추 115%, 무 90%, 파 38%, 시금치 240% 가격이 폭등했다. 이로 인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신선 채소 48.8%, 식품류 11.5%, 생활 물가는 7.2%씩 올랐다. 문재인 정부(신선 채소 28.5%, 식품류 5.6%, 생활 물가 2.9%)와 박근혜 정부(신선 채소 -26.4%, 식품류 2.1%, 생활 물가 0.2%) 집권 30개월과 비교해도 상승률이 과도하게 높은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반까지의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7%로, 문재인 정부(2.6%)와 박근혜 정부(2.2%) 보다 2~3배 이상 높다. 윤석열 정부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국정 과제에 두고 거의 매월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주요 품목별 물가 관리를 강화했지만, 체감 물가 불안을 진정시키는 것에는 무력했다. 한 전직 경제 부처 고위 관료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감염병 대유행)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고조된 대외 여건이 다른 정부와 달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대외 영향이 존재하지 않고, 국내 수급에 의해 가격이변동하는 채소류 가격 급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 폭이 커진 것은 정부의 물가 대응 체계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물가 상승 횟수와 폭
물가 변동의 평균을 보여주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전 수준과 비교하는 ‘전년 동월비’를 벤치마크(benchmark·표준)로 사용한다. 겨울철 난방비, 여름철 집중호우 피해 등 계절 효과를 제거하고, 장기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비자는 1년 전 가격보다는 한 달 전 가격과 비교해 물가수준을 체감한다. 1년 전 고물가에 따른 기저 효과(base effect)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더라도 전월비 상승률이 높아진다면, 소비자의 체감 물가는 높아진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것을 더 인식하기 때문에 체감 물가는 가격이 내리는 것보다는 오르는 것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는 전월비 물가 상승의 횟수와 폭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체감한다. 임금과 가격의 하방 경직성으로 전월비 물가 상승이 일반적이지만, 국내 수요와 수급에 따라 때때로 물가 하락이 나타나면서 물가 안정이 이뤄진다. 전월비 물가 하락이 없으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체감도가 높아지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강화될 수 있다.
최근 소비자의 체감 물가 불안이 가중된 것은 ‘전월비 물가 하락’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 후 29개월 동안 전월비 물가가 23번 올랐다. 하락은 4번, 보합은 2번에 불과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임기 전반부 30개월간 전월비 상승 18번, 하락 12번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상승 15번, 하락 9번, 보합 6번으로 등락의 분포가 균형적이었다.
상승 폭도 커졌다. 전월비 상승률 평균치는 윤석열 정부 0.245%, 문재인 정부 0.093%, 박근혜 정부 0,087%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전월비 상승률이 0.0~0.2% 범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물가 안정’ 상태로 본다.
3│소비자의 물가 인식
통계상 소비자물가지수는 어느 특정 시점의 가격 변동만 측정하지만, 체감 물가는 소비자의 지출액 증가분까지 포괄한다. 가격 변동의 누적으로 늘어난 전체적인 소비지출 증가액을 물가 상승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의 물가 인식은 미래에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에 수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비자는 물가 변화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는 ‘적응’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소비자의 물가 인식과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디커플링(de-coupling)됐다. 한은에 따르면, 소비자의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022년 7월 4.7%로 올라간 이후 3%대로 하향된 반면, 물가 인식(지난 1년간)은 2023년 2월까지 5%대를 지속한 후, 기대인플레이션율보다 1%포인트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물가 인식이 기대인플레이션율을 초과하는 현상은 채소 및 식품류 가격의 고공 행진으로 체감 물가가 떨어지지 않을 경우 나타난다. 전직 경제 부처 고위 관료는 “소비자의 물가 인식이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뛰어넘은 현상이 장기화하면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을 포함한 광범위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3분기 GDP 성장률, ‘고작’ 0.1%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1.6%)의 둔화에도 배추 등 채솟값 급등으로 인한 김장철 체감 물가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경기 둔화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비 0.1% 증가에 그쳐 지난 2분기 마이너스 성장(-0,2%)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가까스로 경기 침체의 사전적 정의인 두 개 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난 수준으로, 한은이 전망한 0.5%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이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월별 수출액(달러 기준)이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지만, 부가가치 비중이 큰 자동차·석유화학의 부진으로 수출이 분기 기준으로는 202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기 때문이다. GDP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 또한 순 수출이 -0.8%포인트, 내수가 0.9%포인트를 기록했다. 이같이 3분기 성장률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2024년 연간 경제성장률의 한은(2.4%)과 정부(2.6%) 전망치 달성이 불투명해졌다. 민간 경제 전문가들은 3분기 부진으로 올해 연간 성장률이 2.2% 안팎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