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대통령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한다. 내치(內治)에 실패하면 정권을 뺏기지만, 외치(外治)에 실패하면 나라를 빼앗긴다. 한반도는 미·중·일·러 강대국 한가운데 있는 국가다. 정치인 모두 뼛속까지 이해해야 하는 건 ‘한반도 분할론’이 강대국에 의해 수없이 제기돼 왔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이라는 과제는 실존의 문제이자 지도자의 숙명이다.
11월 5일(현지시각)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냐, 카멀라 해리스 후보냐. 같은 미국인가, 다른 미국인가. ‘시스템 미국’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보면 비슷한 정책을 쓰는 하나의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선자에 따라 다층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우리의 국가 전략은 무엇인가. ‘넥스트(NEXT)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해야 한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참모진에게 물었다. “미국 없이 살 수 있어요? 없어요? 같이 발제해 봅시다.” 얼마 후 토론에서는 굳건한 한미 동맹이 필요하다는 동의가 이루어졌다. 노 대통령의 2차 질문이 있었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됩니까? 우리 안보는? 우리 경제는?” 치열한 토론을 통해 시대에 맞는 한미 동맹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개방형 통상 국가! 내부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설득과 토론이 진행됐다. 마침내 한미 FTA는 타결됐다. 한국이 수출에서 큰 이익을 냈다.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넥스트 한미 FTA는 무엇일까.
한국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생존과 진화의 방정식을 찾아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시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정보기술(IT)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디지털 인공지능(AI) 시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시대, 우주와 바다라는 공간 혁명 시대, 수명 120세 시대라는 인간 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이 시대를 누가 개척하는가를 두고 미국과 중국은 향후 30년간 치열한 패권 경쟁을 이어갈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무엇을 협력해 인류에게 기여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룰 것인가. ‘윈윈(win-win)’ 전략의 퍼즐을 찾아내야 한다.
첫째, 에너지 협력이다.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전기의 시대다. 에너지는 국가 존망의 문제다. 한국은 에너지 93%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의 원천 기술과 한국의 건설 기술이 결합해야 한다. 경제성, 안전성, 사용 후 연료 처리 기술까지 진화 과정을 함께해야 한다. 용인 반도체 도시가 본격 가동하려면 큰 원전 여섯 개가 필요하다. 전기를 어디에서 생산하고,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이 문제 해결 없이는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둘째, 한국, 미국, 일본의 가스 협력 추진이 필요하다. 매년 액화천연가스(LNG)를 일본은 약 70조원, 한국은 약 50조원어치 수입한다. 미국은 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구매를 하고, 비축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한·미·일의 실질적 경제협력이 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극동 러시아 가스에 투자하는 국제 정세가 마련된다면 러시아까지 협력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동해는 에너지 협력이 일어나는 평화의 바다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유럽으로 가는 북극 항로의 길, 미국으로 가는 북동 항로의 길이 될 것이다.
셋째, 신재생에너지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RE100(Renewable Energy 100%라는 의미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에서 살아남으려면 신재생에너지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RE100 주요 기업은 미국 기업이다. 서해안 해상 풍력발전에 국가의 총력 투입이 필요한 시기다. 탄소 배출이 없고 가격과 질이 좋은 전기는 디지털, 기후 위기 시대를 돌파하는 중요한 과제다.

넷째, 한국과 미국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두는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 데이터 트래픽 기준으로 필요한 하이퍼 스케일(초대형) 데이터센터 개수는 약 1만2288개 수준인 데 반해, 2022년 집계된 글로벌 데이터센터 개수는 약 8000여 개에 불과하다. 추가로 필요한 데이터센터 개수만 약 4000개가 넘는다.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둘 수 있는가.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전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기온이 높으면 불리하다. 그래서 북유럽 일부 국가는 물이 차가운 바다에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인가. 한국이 최적지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데 데이터센터를 두는 게 맞냐고 하지만, 세계적인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두는 것이 평화를 정착시키는 인류의 지혜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을 만드는 하류 정치를 넘어 평화를 만드는 일류 정치가 필요한 시기다.
다섯째, 통신 협력이다. 미국의 저궤도 위성과 한국의 5세대(5G), 6세대(6G) 통신 네트워크가 결합하는 것이다. 디지털 AI 시대에는 통신 없이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를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무엇인가. 와이파이다. 우리가 만든 사이버 세상의 모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통신망이다. 통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국이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김대중 대통령 시절 IT 테스트베드 국가가 된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통신망 구축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3세대(3G) 통신망 네트워크 투자는 게임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위성통신 시대다. 미국의 저궤도 위성과 한국의 5G, 6G 기술을 결합하는 시대를 연다면 윈윈이 될 것이다. 2025년에는 스타링크 서비스가 한국에서 시작된다. 소셜미디어(SNS) 사용료를 달러로 결제하고, 통신도 미국 통신을 쓰면 우리 경제가 무엇이 되겠는가. 민생 경제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 진화를 모르고 경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 기술의 진보를 이용해 인류의 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섯째, 기후 위기가 가져올 4대 재난 극복을 위한 협력이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와 네 가지 주요 문제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 확산, 식량 부족, 물 부족, 빈번한 재난이다. 미국과 한국의 선진적인 의료 시스템과 백신 생산 능력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입증됐다. 네 가지 주요 문제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공동으로 연구해야 한다.
일곱째, AI 표준화에 한국과 미국이 협력해야 한다. 인류는 이미 AI라는 선악과를 먹었는지도 모른다. 인류를 파괴하는 AI가 될 것인가.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AI가 될 것인가. 필자는 매일 몇 시간씩 챗GPT를 사용해 일을 한다. 어느 날 AI가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계 학습을 넘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다. AI 로봇이 가사 노동을 돕는 로봇이 될 수도 있지만 전쟁에 이용될 수도 있다. 유엔은 AI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고, 각국의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주도권을 노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표준화를 이끌어 갈 리더십이 절실하다. 넥스트 한미 FTA의 핵심은 디지털 AI,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시대를 함께 열어 나가는 것이다. 경제와 안보와 기술이 함께 신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시대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안다. 정치인은 자신에게 표를 주는 사람만큼 생각한다. 지도자는 권력의 크기만큼 비전을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더 과감한 생각을 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세계 평화의 길을 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