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적인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중동 전쟁)은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많은 이가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그리고 인접국을 통한 협상과 휴전 그리고 인질 석방으로 사태는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의 후원 세력인 이란이 어떻게 나설 것인지가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이 사태가 중동 전체를 뒤흔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1년이 경과한 현시점에서 중동 상황은 이스라엘의 힘이 주도하는 근본적 재편으로 점점 변화하고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많은 것을 얻었다. 가자 지구에서는 하마스를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사태를 지휘했던 하마스의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를 살해하는 방법으로 보복에 성공했다. 20년 가까이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가해 오던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해서도 삐삐 폭발을 통한 공격과 더불어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 은신처에 대한 정밀 타격을 통해 살해에 성공하면서 헤즈볼라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여기에 더해 홍해 지역의 선박을 공격하던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해서도 장거리 공습을 가하면서 중동 전역에 이스라엘의 힘이 닿지 않는 지역은 없음을 과시했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 이란이 지원하는 적대 세력에 대한 잇단 공격을 성공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은 이란이 오랫동안 공들여 구축해온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을 무력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성과는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과 정보력 이외에 적대 세력을 순차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던 행운도 크게 작용했다.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 재병합할까
이제 관심은 이스라엘이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기습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되면서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이스라엘을 위협해 온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직접적인 무장 세력의 소멸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1990년대 탈냉전 시대에 제시된 ‘2국가 해법’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의 땅으로 인정된 가자 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다시 병합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표로 점차 부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 적대 세력을 지원해온 시리아 및 이란의 정권 붕괴와 교체를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전쟁의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력으로 지난 30년 동안 엉거주춤하게 봉합되어 있던 중동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분쟁으로 점철된 중동 역사는 20세기 초반 유럽 식민지 제국의 쇠퇴와 독립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존재하는 상황을 무시하고 그어진 국경선은 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국가 내부적으로도 취약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게 했다. 종파에 따른 권력 분점이 의무화된 레바논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중동의 구도는 힘 있는 국가로 하여금 인접 국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당연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끌던 이집트는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주변 국가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강요하였으며, 1980년대 이슬람 혁명 이후의 이란 역시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21세기 들어서는 튀르키예가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해 왔는데 이제 이스라엘이 유사한 방식으로 중동 질서 재편에 나서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은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퇴치를 명분으로 레바논 내전에 개입했던 경험이 있는데 친이스라엘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의도는 오히려 헤즈볼라로 대표되는 반이스라엘 세력의 등장을 촉진하면서 실패했다.
레바논·시리아 등 적대국 정권 교체가 이상적 선택
2024년 현재 상황은 이스라엘에 유리해 보인다. 중동 대부분 국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에 대해 직접적인 개입을 꺼리고 있으며 은근히 이스라엘의 승리를 지원하고 있다. 이란이 이끄는 시아파 세력의 확대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아랍 왕정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이란과 그 영향권에 있는 헤즈볼라, 하마스 등을 무력화할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병합 그리고 인위적인 정권 교체 등을 추진할 경우 이것까지 용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다수 아랍 민중은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에 대해 비난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자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 대신 배제를 택하고 있는데 결국 이는 자국 영토 내에 평등하지 않은 위치의 2등 시민이 존재하도록 만든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흑인에 대한 차별적 처우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에 직면했는데 이스라엘이 현재 취하고 있는 태도와 입장은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내부의 변화다.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보수 유대교 신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합리적인 타협보다는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차별과 배제가 선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앞에서는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뒤에서는 지지해 왔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지가 계속될 수 없도록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현 상황을 마무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통해 영향력 있는 지도부를 붕괴시킨 상황이어서 유의미한 협상 당사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도 변수가 되고 있다. 이란은 최근 1년간 이란 안보에 있어서 핵심으로 설정했던 3대 축이 모두 붕괴됐다.
이란의 3대 축은 반이스라엘 세력에 대한 지원을 통한 무장 세력의 양성과 포위망 구축, 이스라엘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과 배치, 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할 수 있는 핵 프로그램 진행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붕괴되거나 위협받게 된 것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망설이다가 사태를 그르쳤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내부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것이 이란 내부 상황이다.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해 서방국가와 관계 개선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로부터의 위협과 타격을 감내하면서 협상에 나서기에는 내부 상황이 여의찮은 것이다. 이란이 이스라엘과 정면 대결을 고수하면서 강 대 강 노선을 택할 경우 중동 문제는 다시 더 어려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을 적절한 수준으로 압박해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도록 만들면서 레바논, 시리아 같이 자국에 대한 적대 세력의 기지로 활용되던 국가들의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안일 것이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의 경제적 협력과 지원을 얻어내면서 안정적인 협력과 완충지대를 확보한다면 이스라엘로서는 최선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 내부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고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만 이스라엘에 그럴 의도는 없어 보인다. 불만족스럽지만 현실적 타협책을 모색할 것인지, 분쟁과 갈등을 더 키워서라도 이상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것은 변할 수 있다. 결국 중동의 새로운 질서는 11월에 치러질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은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의도가 새로운 중동 질서의 구현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분쟁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