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시즌이 돌아온다. 올해도 10월 7일(이하 현지시각)부터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 화학상이 잇따라 발표됐다. 그보다 앞서 또 다른 노벨상이 발표됐다. 바로 앞에 ‘이그(Ig)’가 붙은 짝퉁 노벨상이었다. 이그는 ‘있을 법하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라는 영어 단어의 약자다. 하버드대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라는 잡지는 해마다 엉뚱한 연구를 한 사람에게 이그 노벨상을 수여하고 있다.
어쩌면 이그 노벨상이 실제 노벨상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연구가 더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의 캉 리 교수는 토스트에서 예수나 성모(聖母) 마리아의 얼굴을 봤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연구한 공로로 이그 노벨 신경과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컴퓨터과학자들이 10년 전 이그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인공지능(AI)으로 발전시킨 성과를 발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마이크로소프트(MS), 도요타연구소, 엔비디아의 AI 연구자들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0월 4일까지 열린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에서 AI가 마치 인간처럼 토스트에서 예수 얼굴을 찾아낼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토스트·그루터기·자동차에서 얼굴 찾아
10년 전 리 교수가 분석한 것은 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이다. 모호하고 연관성 없는 현상이나 자극에서 특정한 의미를 찾는 심리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봤다고 믿는다. 토스트에서부터 그루터기, 자동차 그릴, 전기 콘센트까지 다양한 곳에서 사람 얼굴을 찾았다. 2004년 미국에서는 마리아의 얼굴이 보인다는 10년 묵은 치즈샌드위치 조각이 인터넷 경매에서 2만8000달러(약 3800만원)에 판매된 일도 있었다.
리 교수는 18~25세 참가자 20명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절반에게는 사람 얼굴이 그 안에 있다고 하고, 다른 절반에게는 알파벳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두 경우 모두 35%가 실제로 얼굴이나 글자를 봤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뇌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
리 교수가 실험 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하고 분석했더니 뇌 뒤쪽에 있는 시각중추뿐 아니라 앞쪽의 전두엽도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 정보는 망막을 통해 시각중추로 전달된다. 마지막에는 전두엽으로 가서 어떤 의미인지 파악된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림에서 사람 얼굴이나 글자를 본 사람들은 그 과정이 거꾸로 나타났다.
즉 전두엽에서 먼저 의미를 해석한 다음 이것이 시각중추로 가서 형상을 만든 것이다. 파레이돌리아 현상은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전두엽의 믿음이 시각중추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 것이다.
뇌가 얼굴 빨리 찾으려 진화한 결과
MIT 전기컴퓨터공학과의 윌리엄 프리먼 교수 연구진은 9월 24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파레이돌리아 현상을 AI에 구현한 연구 결과를 올렸다. 유럽 학회에서도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는 사람만큼 자주 이러한 환영 얼굴을 발견하지 못하지만, 동물 이미지로 훈련하면 그 비율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뇌는 방대한 정보 중 어떤 것이 탐색과 생존에 중요한지 결정한다. 이 작업을 빠르게 하려면 지름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뇌 측면의 방추얼굴영역(FFA)이라는 곳은 사람의 얼굴 틀을 갖고 있다. 시각 정보 조각이 이 틀에 일부나마 맞아 들어가면 사람 얼굴이라고 인식한다.
호주 시드니대의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알라이스 교수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얼굴을 인식하기 위해 뇌는 두 개의 눈, 코, 입으로 구성된 기본 얼굴 틀과 보이는 것을 비교한다”며 “예상하지 못한 다른 많은 것이 그물에 걸려들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0년 전 리 교수는 fMRI 연구를 통해 의미 없는 이미지를 사람 얼굴로 착각할 때도 FFA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프리먼 교수와 MS의 수석 엔지니어인 마크 해밀턴은 AI도 이러한 시각적 실수를 하는지 실험했다.
연구진은 58억5000만 개의 이미지 데이터에서 ‘사물 속의 얼굴’ ‘우연한 얼굴’ 등의 문구를 검색해 파레이돌리아가 발생하기 쉬운 이미지 3만 개를 찾아냈다. 그중 어떤 이미지가 실제 얼굴이 아닌 환영인지 확인하고 얼굴의 성별과 감정을 표시했다.
다음은 AI도 그런 이미지에서 사람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지 조사했다. 이미지 5000개를 AI 얼굴 감지 모델인 레티나페이스(RetinaFace)에 입력했다. AI는 초기 시험 기간 중 5.4%에서 얼굴을 감지했다. 이후 연구진은 다양한 자세나 화장, 감정, 조명 등이 적용된 3만2000개 이상의 사람 얼굴 이미지를 AI에 입력해 훈련했다. 그러자 의미 없는 이미지에서 사람 얼굴을 탐지하는 비율이 6.7%로 올랐다.
특히 2만2000개 이상의 동물 얼굴로 훈련했을 때 AI의 파레이돌리아 감지율은 평균 16%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5000개의 이미지 데이터 외에 동물 얼굴과 가짜 얼굴로 구성된 데이터를 결합하면 AI가 새로운 이미지에서 환상의 얼굴을 평균 34% 더 잘 식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얼굴 틀에는 동물도 포함
이번 연구진은 10년 전 리 교수의 설명을 발전시켰다. 인류의 조상은 덤불에 숨어 있는 포식자나 사냥감을 빨리 찾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뇌가 얼굴 틀에 동물을 포함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AI는 인간처럼 파레이돌리아를 발견하도록 훈련됐기 때문에 이러한 본능을 반영한다”며 “인간은 이미 다양한 인간과 동물의 얼굴을 봐왔기 때문에 인간 심리학 연구에서 두 경험을 구분해 이러한 결과를 얻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번 연구 결과는 나중에 사람에게 사람 얼굴로 인식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범죄 현장을 찾는 방범용 카메라의 오류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인간과 AI가 같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능력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