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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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피벗(pivot·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나서면서 한국은행도 최근 금리 인하 행보에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동결에도 불구하고 가계 대출이 10조원 가까이 늘었던 걸 상기시키며, 부동산 투자자를 향해 금융 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하라며 높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외환시장 및 경기 상황을 봐선 당연히 진즉에 내려야 했지만, 결국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의 땔감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 가계 부채는 여전히 꺾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니, 이자 부담으로 인한 한국의 내수 부진은 상수로서 작용한 지 오래다. 

특히 전세 자금 대출이 가계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전세 대출이 주택 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자그마치 20%에 근접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세 자금 대출은 임차인이 주택 임대를 위해 필요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대출 상품을 의미한다. 한국의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제도는 높은 전세 보증금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임차인이 일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세 자금 대출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임차인이 주거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금융 상품이다. 하지만 전세라는 제도가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관행인만큼, 전세 자금 대출이라는 제도 역시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존재한다.

제도적 타당성 엄격히 검증해 봐야

과연 본 제도는 존재 이유와 정당성이 있는가. 타국을 벤치마킹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본 제도에 대한 자기 검열은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다. 

부채란 일반적으로 미래에 갚아야 할 금전적인 의무를 의미한다. 채권자와 채무자 간 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이때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상환받을 수 있는 보장 장치로서 당연히 담보물을 요구하게 된다. 담보는 채무자가 부채를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해당 부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설정된 자산을 의미한다. 이는 부채 안전성을 높이는 장치로, 채권자는 담보를 통해 대출금 회수를 보장받게 된다. 물론 담보 없이 채무자의 신용만을 바탕으로 대출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는데, 즉 신용 대출이다. 모두 알다시피, 신용 대출은 소득 흐름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금액 자체가 클 수 없고, 담보가 없기 때문에 채권자가 높은 위험을 부담하며, 따라서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럼 전세 자금 대출은 무엇을 담보로 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전세 보증금 반환 채권과 임차인의 소득 및 신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임차인의 소득 및 신용은 신용 대출 영역으로 넘어 가는 것이니, 사실 액수가 상당히 큰 전세 자금 대출의 담보라고 하기엔 크게 부족하다. 그래서 전세 자금 대출의 가장 일반적인 담보물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맡긴 전세 보증금 자체다. 전세 보증금 반환 채권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전세 계약 종료 시 돌려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대출받는 경우, 대출 기관은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 반환채권에 질권을 설정한다. 이를 통해 만약 임차인이 전세 계약 종료 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금융기관은 전세 보증금 반환 채권을 통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

(좌)서울 시내 은행 외벽에 걸린 디딤돌대출과 전세 자금 대출 안내문. 
(우)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좌)서울 시내 은행 외벽에 걸린 디딤돌대출과 전세 자금 대출 안내문. (우)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전 세계 유일무이의 상품, 전세 자금 대출

하지만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보자. 담보물이 빌려준 돈 자체라니. 이런 거래가 본 제도 외에 존재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빌려준 돈을 받기가 어려울 때를 대비해 다른 자산에 담보를 설정하는 건데, 다른 자산이 아닌 해당 금액 자체에 담보를 건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담보물(collateral)’의 정의에서 한참 벗어난다. 이걸로 외국인을 설득하는 것은 더욱이나 불가능할 거 같다. 

혹자는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현 시스템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금융기관은 보증보험회사로부터 보증을 받게 되며, 만약 임차인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보증보험회사가 대신 상환하기 때문이다. 결국 또 불가능한 영역에서 국가가 책임을 대신 지고 나선 것이다. 순전히 전세 자금 대출은 국가가 통제하는 예산과 정책적 의지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전 세계 유일무이의 상품이 된 것이다. 여기에 무슨 반박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는 현 정부에서 건당 대출 금액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현 정부 탓이라기보다 그간 누적되어 온 부동산 매매가격과 전세 잔액 자체가 폭증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그 불쏘시개가 바로 전세 자금 대출이다. 

금융기관을 통한 손쉬운 전세 자금 확보를 가능케 해 전세시장 수요를 끌어올린 결과, 매매 시장에서의 가격 폭등에 그동안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물론이다. 대출 당사자인 임차인과 집주인인 임대인도, 심지어 대출 장사하는 은행도 모두가 사랑하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상적인 정책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전형적으로 표를 의식해 경제 논리에 반하는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주거 부담 완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해 이러한 전세 자금 대출이라는 잘못된 수단이 선택되었고, 알다시피 이는 가계 부채 폭증을 초래해 통화·금융정책 같은 거시 정책조차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전세 수요 확대에 따른 갭 투자, 그로 인한 부동산 매매가 폭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다시 서민의 주거 부담을 가중시키는 모습을 보며, 누워서 침 뱉는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