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영국 케임브리지대로부터 한국이 선진국이 된 비결에 대해 특강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들은 한국 정치인을 초청해 이야기 들은 적은 있으나,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기업인으로부터 더욱 현장감 있는 분석을 듣기 원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하는 동안 수탈의 목적으로 한반도에 설치한 생산 설비는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됐다. 1950년 12월에 전쟁 복구를 위해 설립된 유엔한국재건단 운크라(UNKRA)는 인천 판유리 공장, 문경 시멘트 공장 등의 준공을 지원했다. 대일 청구권 자금, 베트남 파병, 독일 광부와 간호사 파견 등으로 확보한 자금은 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댐, 포항제철 등 산업 인프라와 생산 설비를 세우는 데 쓰였다. 그 후 선진국 기업과 합작해 조립 생산 단계를 거치면서 기술력을 향상해 국산 제품을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산 현장에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제철, 석유화학, 조선, 가전,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한국은 세계 일류 제품을 내놓게 됐다. 그간 세계 어느 중진국도 빠져나오지 못한 중진국 함정을 우리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엔 북한과 경쟁이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외교적으로는 중국, 소련과 수교하고, 정치 민주화와 산업 혁신이 맞물려서 경쟁과 개방을 촉진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됐다. 정리하자면, 정치 지도자의 경제 발전에 대한 열망과 지도력, 우수한 관료의 헌신과 봉사, 기업인의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그리고 한국인의 남다른 교육열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은 K팝이 세계에 전파돼 국가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이고 있다. 그 영향으로 공업 제품뿐 아니라 문화, 화장품, 음식에 대한 세계인의 호감이 급속히 향상됐다.
케임브리지대 특강 후 만찬에서 동양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원로 교수로부터 한국 역사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은 기록의 근거를 보더라도 3000년 이상 단일민족이 일정한 영토에서 유지된 유일한 나라라고 했다. 이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다고 한다. 대부분 나라는 원주민, 소수민족, 이주민이 있으나, 한국 민족은 민족 내 인종 간 이질성이 크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세계 최강 국력을 가진 주변 국가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군대로 외국 대군을 물리친 매우 특이한 역사적 일관성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당시 세계 최고 국력을 가진 수나라가 10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해 국운을 걸고 네 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결국 고구려가 승리해 수나라가 망하는 원인이 됐다. 특히 수나라의 2차 침공 시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에서 30만 명이 넘는 수나라 별동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또한 고려 시대 요나라의 수차례 침략을 막아내고 마침내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요나라 병력 10만 명을 전멸시켜 전쟁을 끝냈다. 당시 세계 최대 제국이었던 몽골이 28년간 고려를 아홉 차례 침략했지만, 몽골군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시는 몽골군이 파죽지세로 유럽을 정복해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지배하던 때였다.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은 자신의 저서 ‘일류 국가의 길’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인이 일본에 가장 극렬히 그리고 끝까지 저항했다”고 기술했다.
역사가 보여준 우리 국민성은 선하고, 총명하고, 의로웠다. 우리 국민은 단결해 나라를 지키고 폭력에 저항하고 이웃의 슬픔을 보듬었다. 연민과 염치가 있었다.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의로움을 보여 주었다. 더불어 근면과 총명함으로 효율과 효능을 달성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아직 잔존하는 열등감이 있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근대 식민 지배와 서구 열강의 육박(肉縛) 과정에서 우리 가슴에 박힌 열등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리라 믿는다. 한국문학이 그간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선진 국민의 길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이렇듯 평범한 국민이 만든 비범한 업적이 쌓여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