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거리를 걷다 한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멜로디에 귀가 사로잡혀 잠시 서 있던 적이 있었다.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1990년대 감성이 듬뿍 묻어나는 바이브는 순식간에 2024년의 서울 신촌 거리를 테이프·시디 음반을 팔던 가게가 북적이던 1990년대로 바꿔놓았다. 그 곡은 그룹 HOT가 부른 ‘캔디’였다.
1996년에 발표된 이 곡은 당시에 엄청난인기를 끌었다. 필자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곡을 따라 부르며 친구들과 장기 자랑 무대에서 춤을 췄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도 일요일마다 TV에서 방영되는 ‘인기가요’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서 이 곡과 당시 인기 있던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TV를 보며 가수에게 흠뻑 빠진 필자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가 “그 가수가 부르는 음악이 그렇게 좋니?”라고 물어보셨다. 필자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며 어머니도 이 가수가 마음에 드는지 여쭤봤다. 어머니는 “나는 이 가수를 처음 봐서 누군지 잘 모르겠어”라고 하셨고, 옆에 있던 아버지도 “나는 요즘 음악이 도통 이해하기가 어렵네”라고 말씀했다. 그때 ‘이렇게 좋은 음악을 어떻게 모를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너무도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클래식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택했고, 점점 클래식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대중음악을 듣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지난여름 독일에 갔을 때 한 현지인이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보고 BTS와 블랙핑크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 가면 경복궁이나 남산타워가 아닌, 그들 소속사의 본사 건물에 가보는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며, 그곳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솔직히 그룹 멤버의 이름도, 멤버의 수도 정확히 모르기에 스스로 과연 한국 사람인 게 맞는지 난감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음악 취향이 의아했지만,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니 비슷해지는 것일까?
그렇다고 대중음악 자체에 담을 쌓은 것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TV, 광고, 거리 상점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음악은 늘 귀에 익숙하게 남아 있고, 서울 같은 대도시의 풍경을 보면 클래식보다도 오히려 어디에선가 들었던 K팝이 먼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또, 종종 클래식을 차용하거나 영감받은 대중음악을 듣게 되면 놀랍기도 하고, 음악 장르 간 경계선이 허물어지며 서로 만나는 느낌마저 들어 반갑기까지 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클래식에 영감을 받은 대중음악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중음악에서 가장 자주 차용된 작곡가 중 대표적인 이는 독일의 바로크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일 것이다. 1685년에 태어나 1750년에 삶을 마감했으니 적어도 우리와 300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다. 당시 한반도에는 조선의 숙종과 영조가 통치하던 시기와 대략 맞물리는데, 어떻게 이런 오랜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우리 시대의 대중음악에 그의 음악이 스며들 수 있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는 레이디 가가가2009년에 발표한 ‘Bad Romance’다. 현재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노래일 것이다. 곡 도입부에 ‘바흐 평균율 1집의 나단조(BWV 869)’ 푸가 주제가 등장하는데, 레이디 가가는 이 푸가 주제를 하프시코드 사운드로 재현해 곡의 긴장감을 더했다.
이어지는 노래 선율에도 바로크 및 고전 시대에 자주 사용되던 모티브적 요소가 들어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봐도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그녀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머리에 가발을 쓰고 바로크식 코스튬을 입고 살았던 이의 음악이 우리 시대와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음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또 다른 예로는 비틀스가 있다.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는 그의 곡 ‘Blackbird’를 만들 때 바흐의 ‘류트를 위한 모음곡’ 중 부레 마단조(BWV 996)에서 영감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Blackbird’의 기타 반주에서는 바흐의 부레 선율과 화성 진행이 장조로 변형되어 반복되며, 그 위에 매카트니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해진다. 명곡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설적인 팝스타인 매카트니는 오히려 바흐가 팝스타이며, 그는 그의 음악에 큰 영감을 받고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외에도 비틀스의 ‘Penny Lane’에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BWV 1047)’ 제3악장의 선율이 인용되기도 했다.
또한, 스위트박스의 ‘Everything’s Gonna Be Alright’에서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BWV 1068)’ 중 ‘Air’의 선율을 차용한 것을 비롯해, 바흐의 ‘작은 프렐류드 다장조(BWV 924)’에서 영감을 받은 스팅과 메리 J. 블라이즈의 ‘Whenever I Say Your Name’ 등, 수많은 현대 대중음악이 바흐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됐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300여 년 전에 작곡된 바흐의 작품이 현대 대중음악가에게 영감을 주며 이 음악이 우리 마음속에 이토록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바흐 사후 그의 아들인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통해 그의 음악적 유산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넘어 거의 모든 서양 음악가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룩한 음악 체계는 서양 음악의 스탠더드가 됐고 이는 바흐의 음악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마저 띠게 한다.
이러한 음악사적 흐름이 현대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게다가 제한된 음악적 모티브를 통해 푸가 같은 복잡한 형식을 전개한 바흐의 음악은 여전히 논리적이고 매력적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에 담긴 종교적 숭고함과 평생 음악적 언어를 발전시키고 다듬은 장인 정신도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바흐를 비롯한 고전 작곡가의 음악이 현대음악에 영감을 주고, 이를 듣는 많은 이가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은 클래식을 연주하는 필자로서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클래식이 수백 년을 넘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설득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렇기에 2024년에도 이러한 작품을 연주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이 오늘날에도 영화, 드라마, 뮤지컬에 영감을 주며 그의 예술적 언어가 현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언어일 수도 있겠다. 시간을 초월한 만남과 융합이 있기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거기서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음악 장르의 경계는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음악이 전달하는 감동과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