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 원전 1호기에 탑재될 원전 터빈. 유지·보수 및 성능 개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박성우 기자
체코 두코바니 원전 1호기에 탑재될 원전 터빈. 유지·보수 및 성능 개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박성우 기자

10월 10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내부. 작업자 세 명이 높이 약 4m, 길이 약 8.5m인 대형 원전 터빈의 로터(중심축)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로터는 무게만 37t에 달한다. 작업자들은 로터와 블레이드(날개)가 연결되는 슬롯(구멍)을 비롯해 블레이드의 마모, 깨짐, 휘어짐 등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터빈은 원자로에서 핵분열로 끓인 물이 내뿜는 증기로 블레이드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의 핵심 기자재다.

이날 현장에서 본 로터는 두코바니 원전 1호기에 사용되는 기자재로, 옛 스코다파워(Skoda Power·현 두산스코다파워)가 공급했다. 보통 5~7년마다 오버홀(유지·보수 및 성능 개선)을 위해 원전에서 분리된다. 9월 20일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의 양해각서(MOU) 체결식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두산스코다파워의 공장 내부가 한국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내부에 전시된 터빈 블레이드(날개). 용량이 클수록 블레이드가 길어진다. / 박성우 기자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내부에 전시된 터빈 블레이드(날개). 용량이 클수록 블레이드가 길어진다. / 박성우 기자

증기터빈 글로벌 톱3… 원전 터빈 25기 공급 

터빈은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린다. 블레이드가 연결된 모습이 꽃이 피어있는 모습 같기도 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설비이기 때문이다. 로터는 마하2의 속도로 1분에 3600번 15년 이상 회전해야 한다. 그만큼 엄청난 내구성이 요구되며 오차가 머리카락 굵기의 4분의 1 수준인 0.02㎜ 미만이어야 한다. 작은 오차라도 발생하면 회전 시 케이싱(외부 덮개)과 부딪혀 날이 손상되는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무거운 금속을 가공하므로 오차가 발생하면 수정이 어렵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수익성과 직결된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설계도를 줘도 만들기 어렵다는 게 터빈”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두코바니 원전 최종 계약이 성사되면 주 기기는 두산에너빌리티가 한국에서 생산해 공급하고 증기터빈은 두산스코다파워가 체코에서 생산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코리아’는 체코가 두코바니에 짓는 신규 원전 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난 7월 선정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주문이 쏟아져 공장 내부는 신규 생산 물량과 성능 강화, 유지·보수 작업이 진행되는 터빈으로 가득 찼다. 이 공장의연간 생산 규모는 40대인데, 현재 공장에는 40대의 터빈이 작업 중이다. 가동률이 100%에 가깝다는 의미다.

최근 핀란드는 로비사 원전 2기의 운용 시한을 2050년까지로 연장하면서 터빈의 현대화 사업자로 두산스코다파워를 선정했다. 터빈은 성능 개선을 통해 총용량이 1049㎿(메가와트)로 38㎿ 늘어나게 된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2교대 기준으로 가동률이 100% 수준인데 물량이 확보되면서 3교대로 전환하면 생산능력을 약 50%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코 플젠에 있는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전경. / 박성우 기자
체코 플젠에 있는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전경. / 박성우 기자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은 축구장 네 개 규모의 부지에 건설됐다. △터빈 연구개발(R&D)센터 △케이징 및 로터 제조 △터빈 부품 및 블레이드 가공 △조립 등이다. R&D센터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 소규모 발전소를 세워 생산된 스팀으로 로터를 작동하는 시험소를 갖췄다.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는 979명(사무직 702명·생산직 277명)이 근무 중이며, 한국인 근무자는 법인장 등 세 명에 불과하다. 약 500명의 엔지니어 중 400명은 석·박사 출신이다. 두산스코다파워는 터빈과 관련한 영업, 설계·사업 관리, 생산·구매, 설치·시공, 성능 개선 등 장기 서비스까지 전주기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임영기 두산스코다파워 법인장은 “체코, 슬로바키아, 핀란드 등 3개국에 원전용 증기터빈 26기를 납품했다”며 “현재까지 540기 이상의 증기터빈을 전 세계 발전 시장에 공급하는 등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터빈을 사용하는 전력 생산 규모만 53GW(기가와트)에 달한다”고 말했다. 통상 최신 원전 1기의 용량은 1GW다.

원전 터빈 블레이드를 회전시켜 점검하고 있다. / 박성우 기자
원전 터빈 블레이드를 회전시켜 점검하고 있다. / 박성우 기자

BTG 라인업 완성… 유럽 전초 기지 역할

두산그룹은 지난 2009년 체코 스코다그룹의 발전설비 전문 업체 스코다파워 지분 100%를 4억5000만유로(당시 약 8000억원)에 인수했다. 그간 두산그룹은 두산스코다파워의 특허를 활용해 보일러(boiler), 터빈(turbine) 분야 해외시장에 진출해 왔다. 반면 발전기(generator) 분야는 특허 문제로 해외 진출이 쉽지 않았다.

이에 두산그룹은 두산스코다파워에 발전기 기술을 이전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기술이전이 완료되면 두산스코다파워는 원전 내 전기 생산을 담당하는 ‘2차 계통’ 주 기기의 핵심 설비인 증기터빈에 이어 발전기 생산까지 가능해진다. 

기술이전 완료 예상 시점은 2029년이며, 기술이전이 완료되면 SMR·복합화력발전소 등 발전소별 발전기 자체 생산 역량을 갖추게 된다.

두산스코다파워의 작년 매출은 27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37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의 약 70%는 신규 공급, 30%는 유지·보수에서 나온다. 최근 유럽에서는 원전을 다시 가동하는 나라가 늘고 노후한 원전의 유지·보수 시장도 커지고 있다.

플젠에서 두산스코다파워의 인지도는 압도적이다. 두산은 2009년부터 체코 1부 리그 축구팀 ‘FC 빅토리아 플젠’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두산에 인수되기 전인 스코다파워가 2005년부터 후원한 것을 감안하면 20년째 협력이다.

두산은 인수 이후 FC 빅토리아 플젠 홈구장 명칭을 ‘두산아레나’로 변경했다. 또 경기장 내부에 50개가 넘는 두산 광고판을 설치했다. 유니폼 정면에는 ‘두산(DOOSAN)’ 로고를 넣었다. 그 결과 중하위권에 머물던 FC 빅토리아 플젠은 리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팀으로 거듭났다.

임 법인장은 “한국이 체코 신규 원전 건설을 수주하면서 두산스코다파워가 향후 유럽 원전 시장 공략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할 것” 이라며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 원전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어 두산스코다파워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산스코다파워는 체코 정부가 추진하는 SMR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2050년까지 SMR 10기 이상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다.

체코=박성우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