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브릭스 플러스 공식 회의가 열리고 있다. / EPA연합
10월 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브릭스 플러스 공식 회의가 열리고 있다. / EPA연합
10월 22일부터 사흘간 러시아 카잔에서는 신흥 경제국 협력체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제16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2009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음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지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합류한 이래 14년 만에 브릭스가 몸집을 키워 치른 첫 번째 정상회담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작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회의에서 가입이 확정된 6개 나라 중 4개국(이집트·이란·아랍에미리트(UAE)·에티오피아) 정상이 참석하면서 9개 나라로 확대된 브릭스의 위상을 과시했다. 그동안 지리적 공백으로 남았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이집트·이란·아랍에미리트·에티오피아가 새롭게 합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 공식 초청에 확답하지 않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가입을 철회했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는 아홉 개 나라 정상만 참석한 게 아니었다.

확대된 브릭스의 첫 정상회담, 높아진 위상

이번 카잔 정상회의에는 브릭스 국가 정상 외에도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비롯해 16개국의 비(非)브릭스 해외 정상이 참석하면서 대성황을 이뤘다. 모두 33개국에서 최고위급 대표가 참석했다. 안토니우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도 함께해 무게를 더했다.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과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공화국 대표도 자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라오스가 고위급 대표를 보냈다.

이번 회의를 주최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런 사실에 크게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2014년 크림반도 점령 후 줄곧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서방의 집단 따돌림에도 러시아가 소외된 것은 아니다”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카잔 선언을 통해 러시아는 “미국 일극 체제(국제정치의 세력 분배와 관련해 하나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체제)에서 소외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미국 일극 체제가 아닌 다극 체제(여러 강대국이 존재하는 체제)에서 전 세계 나라가 지속적인 발전을 달성하고 안전 보장을 이루자는 러시아의 해묵은 주장을 효과적으로 선전한 것이다. ‘공정한 글로벌 발전과 안보를 위한 다자주의 강화(Strengthening Multilateralism for Fair Global Develop-ment and Security)’라는 이번 회의의 주제에 걸맞은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 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 정책연구원(KIEP) 원장

달러 체제에 도전하는 브릭스, 성공할까

푸틴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브릭스 9개국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구매력평가기준(PPP)으로 전 세계의 36.7%에 달해 주요 7개국(G7)을 능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런 경제력을 기반으로 푸틴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금융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을 브릭스에서 구현하려 한다. 이는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도 초미의 관심사다. 위안화 국제화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중국에게도 브릭스 차원의 별도 결제 및 청산 체제 구상은 중요하다.

다만 브릭스가 현재의 국제 금융 질서를 변화시킬 실질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글로벌 통화로서 달러 패권은 여전히 굳건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은 주요 화폐가 국제통화로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무역 결제 수단, 외환 잔고, 대외 부채, 국제은행 청구, 채권, 이자율 관련 파생 상품 등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했다. 그 결과 당사국뿐 아니라 역외국 거래에서 사용하는 비중에서 달러는 압도적 위치에 있는 반면, 경제 규모나 교역 규모가 상당한 중국의 위안화는 무역 결제에서 5%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다른 영역에서는 달러, 유로화는 말할 것도 없고 엔화와 파운드화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은 통화의 국제화가 갖는 한계를 생생히 보여준다.

회원국 내 서로 다른 견해차 극복해야

브릭스 국가는 서방에 대비되는 거대 개도국 모임 또는 반민주주의 세력 동맹으로 비치지만, 회원국마다 처한 입장은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구체적이고 강력한 수단을 구사하는 동맹체가 되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 먼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브릭스 정상회담은 러시아가 소외된 나라가 아니라는 홍보 효과 외에도 참석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와 러시아의 친분 과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원죄가 희석되는 효과가 있다. 가장 강력하고 공개적으로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한다.

중국도 각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서방의 공세적 체제 우월주의와 일방적 가치 판단은 명백한 이중 기준이기에 브릭스가 이를 변화시킬 엔진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일극 체제 탈피와 현상 변경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완전히 의견이 같지만, 러시아에 대한 이중 용도 물품 수출 제한에 동참하는 등 적절한 수준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무섭게 질주하는 인도는 지난 몇 년 동안 G20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국경 분쟁으로 사이가 나쁜 중국과도 최근 국경의 실효지 배선 순찰 문제를 합의했다. 인도는 서방과도 연대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제 분쟁을 해결할 위치에 있음을 강조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해결을 적극 중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자국의 글로벌 외교력을 과시하는 편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브릭스 국가인 브라질은 비록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좌파 정부이지만 러시아가 강조하는 반미 다극 체제 주장에 가장 소극적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감안해 브릭스가 반미 동맹으로 비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2010년에 브릭스에 가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경제 규모나 인구, 면적 면에서 가장 큰 나라는 아니지만, 비극적인 식민지 유산과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에 맞선 독특한 역사성과 상징성으로 볼 때, 지정학적 위치와 풍부한 광물자원에 대한 접근성으로 볼 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해 왔다. 새로 가입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비록 두 나라가 나일강 댐 문제로 심각한 갈등 상황에 있지만,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체로 신흥 경제국,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적 빈곤이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에 브릭스 가입은 무역과 경제 관계를 촉진하고, 유리한 대출을 얻어낼 기회이며, 서방 세계 중심의 질서가 도전받고 있는 이 시기에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을 기회이기도 하다.

브릭스 정상회의는 앞으로도 미국 패권주의 타파와 서방 주도의 경제 질서 탈피, 다극 체제로의 전환 주장을 지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 셔터스톡
브릭스 정상회의는 앞으로도 미국 패권주의 타파와 서방 주도의 경제 질서 탈피, 다극 체제로의 전환 주장을 지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 셔터스톡

갈 길 먼 브릭스 체제, 그러나 계속 주목해야

브릭스 정상회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미국 패권주의 타파와 서방 주도의 경제 질서 탈피, 다극 체제로의 전환 주장도 계속될 것이다. 국제 금융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조만간 가시적인 결실을 거두기는 어렵겠지만, 경제 규모, 산업과 무역 관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 그린 전환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위상을 고려할 때 이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계속 주목하면서 어떻게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