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세 시장이 예사롭지 않다.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한 가운데, 얼마 전부터는 다른 한편에서 역전세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 집 마련을 못 해 전세를 구해야 하는 실수요자는 물론, 사정상 전세를 놓아야 하는 집주인 역시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10월 3주 주간 아파트 전세 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전국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0.09%)과 수도권(0.10%)의 상승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지방(0.01%)은 보합 수준의 미미한 상승에 그쳤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신규 공급 부족(입주 물량 급감)이 현실화하면서 75주 연속 상승이라는 강세장을 이어가고 있다. 말 그대로 전세난이다. 하지만 지방 아파트는 다소 다르다. 국지적인 과잉 공급 여부에 따라 지역별로 편차가 크지만, 약세 내지 약보합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수개월간 국내 전세 시장은 서울 강세, 기타 수도권 강보합세, 지방 약보합세를 이어왔던 것이다. 아파트 매매 시장과 마찬가지로 전세 시장 역시 지역별 양극화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전세 시장을 달리 내다보는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세난이 아니라 오히려 역전세난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세난과 역전세난 사이에서 부동산 전문가조차 전망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전세를 구하려는 세입자나 전세를 놓아야 하는 집주인 모두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전세 시장 이중 양극화 시대
최근 국내 주택 시장은 매매·전세 구분 없이 서울 대 지방, 아파트 대 비아파트로 대별되는 이중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모든 게 서울을 중심으로, 서울을 위해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의 경우 심각한 아파트 전세난이 우려될 정도다. 하지만 지방은 어떤가? 국지적이지만 과잉 공급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세난이 아닌 역전세난, 심지어 깡통 주택을 우려해야 할 정도다. 서울 아파트 초강세, 지방 아파트 약세라는 사상 초유의 극단적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비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주택 시장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는 이전의 부동산 상승장 때와는 사뭇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2022년 하반기에 터진 빌라왕 사태에서 찾을 수 있다. 전세 사기로 이어진 빌라왕 사태는 이른바 ‘빌라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부동산 시장에 커다란 충격파를 안겨줬다. 적어도 전세 시장에서 빌라나 오피스텔 같은 비아파트 주거용 부동산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급락하게 됐다. 사실상 비아파트 주거용 부동산의 전세 수요가 사라지면서 신규 공급도 자연스럽게 급감하고 있다. 아파트 선호 현상이 강화될수록 수요 증가에 따른 신규 공급이 필요함에도 서울의 경우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커 그마저 요원할 뿐이다.
둔촌주공 입주장 효과 사라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아파트가 1만2000여 가구라는 초대규모 입주(2024년 11월 27일 예정)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른바 ‘입주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입주장 효과란 대단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전세와 매매 물량이 일시에 쏟아지면서 해당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주변 아파트의 매매가격과 전세 가격을 동시에 하락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천 가구에 이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코앞에 두면 미처 아파트 분양 잔금을 마련치 못한 집주인(수분양자)의 경우 입주 3~6개월 전부터 전세를 놓아 해결하려고 한다. 이때 적지 않은 아파트 전세 물량이 거의 동시에 나오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과잉 공급 현상을 보인다. 이에 따라 수요 부족, 공급 초과로 매매가격은 경쟁적으로 하락한다. 아울러 마땅한 전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의 경우 종종 급매물로 내놓기도 하며, 이럴 경우 아파트 매매가격 역시 전세 가격과 동반 하락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2018년 12월 입주를 시작했던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헬리오시티·9510가구) 역시 입주 전후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둔촌주공은 달랐다. 과거와 같은 입주장 효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매매가격과 전세 가격 모두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장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원인으로는 예년 평균치(4만~5만 가구) 대비 반 토막이 난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트렌드가 된 신축 아파트 선호 현상, 실거주 의무 3년 유예에도 여전히 실거주 규제가 적용됨에 따른 전세 매물 잠김 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셈이다.
내 몸에 맞는 입주 전략 고민해야 할 때
전세 시장은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전세 시장의 이중 양극화 현상 역시 여전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역별로는 서울의 초강세, 기타 수도권의 강보합세, 지방의 약세 내지 약보합세가 예상되고, 상품별로는 아파트 선호, 비아파트 주거용 부동산 기피 현상이 자리할 전망이다. 다만 전세 자금 대출 확대, 가시적인 금리 인하 여부, 비아파트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제도화 등은 향후 전세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내 집 마련을 못 해 전세를 구해야 하는 실수요자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주할 지역에 따라, 대출 및 정책 금리 수혜 여부에 따라, 개인별 자금 사정에 따라 내 몸에 맞는 입주 전략이 필요하다. 관련해, 전세 구하기에 앞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을 짚어보자.
첫째, 최소 1000가구 이상 규모로 입주 예정인 신축 아파트를 노려보길 권한다. 빠르면 입주 시작 6개월 전, 늦어도 3개월 전부터 움직이는 게 좋다. 입주장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단지 규모는 크면 클수록 좋다. 상대적으로 보다 좋은 조건으로 전세를 구할 수 있다.
둘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이 지역 평균을 초과한 아파트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서울 및 기타 수도권의 경우 전세가율 65%, 지방의 경우 전세가율 75%를 넘지 않길 권한다. 자칫 만기 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비아파트 상품은 전세보다는 월세로 접근하길 권한다. 당분간 빌라나 다세대, 연립주택, 오피스텔 같은 비아파트 주거용 부동산은 가급적 입주를 피하되, 자금 사정상 피치 못해 접근해야 할 경우 상대적으로 거액의 보증금이 들어가는 전세보다는 보증금 부담이 적은 월세로 입주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끝으로, 비아파트 전세 매물의 경우 반드시 전세 보증금 반환 보험의 가입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만기 때 전세 보증금이 걱정되는 세입자에게 이만큼 확실하고 안전한 예방책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