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천·지·장·법’은 ‘손자병법’에서 유래한 전략적 개념으로, 도·천·지·장·법 다섯 요소로 구성된다. 이 중 법(法)은 규율과 법제를 뜻한다. 조직 편제, 지휘 계통 그리고 신상필벌 등의 군령을 의미한다. 기업에 적용하면 조직의 편성과 임무 배분 등 조직 운영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가에 해당한다. 규칙과 원칙이 명료하게 규정되고 준수되고 있는가, 조직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마케팅이 ‘시장을 만드는 것’이라면 브랜드는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브랜딩은 ‘브랜드의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브랜딩의 지향점은 ‘브랜드화한 소비자 경험(BCE·Branded Consumer Experience)의 창출’에 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소비자 경험을 만드는 것이 브랜딩이다. 따라서 브랜딩 관점에서 법은 브랜드 경험의 체계를 잘 만들었는가 혹은 체계적인 브랜드 경험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가로 해석될 수 있다. 브랜드 경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과정은 물론, 브랜드 접점에서 느끼게 되는 모든 경험을 포괄한다. 브랜드 경험(BX·Brand Experience)을 잘 만들고 더 좋게 개선하려는 원칙 그리고 원칙이 반영된 시스템이 브랜딩에서 법이 된다.
인구는 이제 늘지 않는다. 소비자 수는 마냥 증가하지 않는다. 1957년에서 1971년까지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나던 우리나라는 이제 한 해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25만 명이 안 되는 나라가 됐다. 브랜드 경험, 고객 경험은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더 중요해졌다. 사람은 적고 브랜드는 많다. 줄어든 숫자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더 많아진 숫자의 브랜드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비용은 그래서 더 높아진다. 고객 중심의 브랜드 경험은 기업의 비용 효율성을 높인다.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은 기존 고객을 잘 유지하고 그들의 생애 가치(LT-V·Lifetime Value)를 우리 것으로 만들게 한다. 기존 고객의 ‘구매 후(after purchase)’ 경험까지도 긍정적으로 만들면 브랜드 충성도는 높아진다. 만족스러운 브랜드 경험으로 충성도가 높아진 기존 고객은 주변에 우리 브랜드를 추천하게 된다. 그 결과 신규 고객 유입에 드는 비용이 줄게 된다.

월마트의 브랜드 경험 시스템
‘서민에게 부자 같은 구매 기회를 제공한다’는 미션을 표방하는 월마트, 슬로건 ‘매일 저렴한 가격(EDLP·Everyday Low Prices)’ 은 월마트 브랜드의 에센스다. 긍정적 소비자 경험은 매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프라인이 중심인 월마트는 아마존처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해 항상 ‘최적의 가격’을 제공하는 온라인 중심 가격 전략을 차용하기는 어렵다. 월마트는 대량 구매로 매입 단가를 낮추고 효율적인 공급망 운영으로 비용을 절감해,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함으로써 경쟁사보다 항상 낮은 가격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브랜드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싸게 산 것 같은 소비자의 느낌, 월마트에 대한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월마트만의 ‘법’, 즉 시스템은 물류에서 시작된다. 월마트가 처음 도입한 크로스 도킹 시스템은 물류센터를 중개 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한 것이었다. 물류센터로 입고되는 상품을 물류센터에 보관하지 않고 분류하고 재포장해 바로 다시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수많은 종류의 그것도 대량 상품을 보관하지 않고 바로 매장으로 보내니까 물류센터에 재고가 없게 되고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크로스 도킹 시스템은 월마트가 원가 면에서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는 기초가 됐다. 이는 월마트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월마트는 공급망 관리에 무선 주파수 인식(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재고 상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공급망 효율성을 높였고, 절감된 비용은 낮은 소비자가격에 반영돼 브랜드 경험을 향상했다. 온라인 대비 간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오프라인 중심인 월마트는 낮은 가격에 높은 편의성까지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고객이 직접 상품을 스캔하고 결제할 수 있는 셀프 체크아웃 시스템을 도입, 대기시간을 줄였다. 디지털 기술을 브랜드 경험 개선에 활용하기도 한다. 월마트의 스캔 앤드 고(Scan & Go)는 앱을 통해 고객이 매장에서 상품을 스캔하고 모바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이다. 쇼핑 과정도 간소화했다.

돈키호테의 남다른 브랜드 경험 원칙
1989년 창업해 이후 매년 계속해서 매출과 이익을 경신한 소매 유통 기업이 일본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도 많이 찾는 ‘돈키호테’다. 돈키호테에는 긍정적 브랜드 경험을 위한 확고한 원칙이 있다. 그리고 이 원칙은 매장의 콘셉트로 반영돼 실천되고 있다. 원칙은 ‘C+D+A’다. ‘Convenience(편리함+Dis-count(저렴함)+Amusement(즐거움)’를 의미한다. ‘공간이 재미있으면 물건은 팔린다’는 창업자 야스다 다카오(安田隆夫) PPIH(돈키호테 운영 회사) 회장의 철학이 브랜드 경험 창출의 원칙으로 정립돼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재미’다. 편리함은 온라인을 이길 수 없다. 편의점이 내세우는 것도 편리함이다. 저렴함? 사실 싸게 파는 곳은 돈키호테 말고도 꽤 있다. 그래서 돈키호테만의 차별적 브랜드 경험의 핵심은 재미에 있다. 돈키호테는 쇼핑의 ‘즐거움’으로 성장했다. 사람은 온라인 쇼핑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찾아 굳이 시간을 내서 돈키호테에 간다. 돈키호테는 상품을 높이 쌓아 올린 ‘압축 진열’로 유명하다. 이것도 소비자를 즐겁게 하는 요소다. 재미있는 볼거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복잡한 매대에서 원하는 상품을 찾은 소비자는 ‘발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돈키호테 매장은 어디를 가든 아슬아슬하게 상품을 쌓아 두는 압축 진열, 손 글씨로 대충 쓴 것 같은 종이 광고판을 재미 요소로 보여준다.
돈키호테에는 체인점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시스템도 있다. 보통 체인점은 본부가 상품을 발주하고, 각 매장은 매뉴얼에 맞춰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돈키호테는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물건의 60%는 본사가 발주하지만 40%는 각 매장 직원이 자율적으로 발주한다. 상품 진열, 가격 책정, 판매 권한 등을 갖는다. 심지어 ‘메이트’로 불리는 아르바이트생이나 파트타임 직원에게도 상당한 권한을 준다. 상품 매입은 물론 가격 책정과 상품 진열, 제품 광고까지 허용한다. 접점에 있는 현장 직원에게 상당 부분 권한을 이양한 것이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매장 전체를 ‘제일 많이 오는 손님’이 찾는 상품으로 채워 넣는 것이 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돈키호테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맞춘상품 구색이 많고 외국인 관광객이 뜸한 곳의 돈키호테는 동네 슈퍼와 비슷하기도 하다. 관광객이 많은 롯폰기 매장에는 외국인 전용 상품, 트렌드 발신지인 신주쿠 매장에는 찾기 힘든 신기한 상품, 젊은 오타쿠가 많은 아키하바라에는 도시락과 저가 생필품이 많은 식이다. 돈키호테는 2016년에는 오키나와의 미야코지마에, 2018년에는 이시가키섬에도 매장을 열었다. 미야코지마나 이시가키섬의 돈키호테는 지역 특성에 맞게 신선식품이나 토산품을 많이 취급해 현지 주민과 관광객으로부터 인기가 많다. 매장의 입지에 걸맞은 차별적인 브랜드 경험을 창출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얘기다. 자율적인 직원과 만족하는 고객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고객과 소통하는 접점의 최전방에 있는 직원은 브랜드 경험 관리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자원이다. 직원의 아이디어를 가치 있게 여기고 직원에게 권한을 준 것이야말로 돈키호테 성공의 신의 한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