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에 개봉한 ‘조커: 폴리 아 되(Joker: Folie à Deux)’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 2019년에 선보인 영화 ‘조커’의 속편이다. 전편에서 소시민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줬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조커와 아서 사이의 내적 갈등을 심도 있게 묘사한다.
아서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따뜻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양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성장한 그는 사회에서도 무시와 조롱을 당하는 무명 코미디언으로 살아간다. 정신 질환을 앓는 아서는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립된 내면세계를 구축하며, 망상 속에서 인자한 아버지와 사랑하는 연인의 환영을 통해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폭행당하던 아서가 억압된 감정을 일시에 분출하며 첫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의 왜소한 체격 너머로 내면의 광기가 드러나며, 마침내 조커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TV 쇼 생중계 중 호스트를 사살한 이후, 총 다섯 명의 시민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아서를 조명한다. 최종 재판을 앞두고 2년째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아서의 모습에는 무기력함이 역력하다. 수용소는 조커가 발현될 조건이 결여된 공간이며, 그를 환호하는 고담 시민으로부터 격리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서 앞에 조커를 동경하는 리 퀸젤이 등장한다. 아서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인정해 줄 것 같은 리와 사랑에 빠지며, 서로의 내면에 잠재된 조커와 할리 퀸의 광기를 깨워 나간다.

조커 되기의 강요
영화의 부제인 프랑스어 폴리 아 되(Folie à Deux)는 정신의학 용어로, 한 사람의 망상적 상태가 둘 이상의 사람에게 전파돼 공유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서의 망상이 창조한 조커의 광기는 리 퀸젤뿐만 아니라 고담의 시민 사이에서도 퍼져 나갔다. 전작에서 빈부격차로 억눌려 있던 고담의 소시민들은 조커의 광기에 동조하고 열광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영화는 이러한 광기의 전파 방향을 역전시켜 리를 비롯한 많은 이가 아서에게 조커가 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들이 수감 중인 아서에게 기대한 것은 불안정하고 나약한 아서가 아닌,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고 파괴하는 조커의 모습이다. 아서의 변호사조차도 재판에서 중형을 피하려면, 그의 살인이 본래 자아가 아닌 조커라는 분리된 인격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라고 종용한다. 조커라는 괴물에 대한 기대는 영화관을 찾은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영화에 대한 혹평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조커의 얼굴
아서는 자아와 조커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방황한다. 그가 조커의 광기로 완전히 돌아설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장치는 광대의 얼굴 분장이다. 조커의 분장은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것이 아니라, 흰 바탕 위에 눈, 눈썹, 코, 입을 과장되게 부각한다. 양쪽 눈에 그려진 파란 다이아몬드는 눈물 자국처럼 보이며, 찢어진 붉은 입은 웃음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아서의 얼굴은 웃음과 슬픔이 동시에 나타나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표정으로 고정된다.
광대의 얼굴은 아서의 연약한 자아를 감추고, 분노로 채워진 정체성을 일관된 표정 위로 끌어낸다. 소심한 아서는 익명의 얼굴 뒤로 숨을 때 더욱 대담하고 폭력적인 존재로 변모할 수 있다. 휘발성이 강한 광대 분장은 거리의 시위자들에게 전파되어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된다. 영화 속 리 퀸젤과 시민, 그리고 관객은 분장을 지운 맨얼굴의 아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조커로서의 인정은 오직 광대의 얼굴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여기에서 얼굴에 칠해진 화장은 웅크린 내면을 세상에 드러내는 창문과 같다.

건축의 얼굴 표정
영화 속 조커의 얼굴 분장처럼, 건축가도 건축물의 외관에 고유한 표정을 부여한다. 창문의 형식과 재료의 구성 방식은 건축물이 어떻게 세계와 만나고 소통할지를 결정한다. 특히, 기존 건축물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분장’의 의미는 더욱 두드러진다. 건축물에 요구되는 새로운 기능은 그에 적합한 공간과 형식을 필요로 한다. 건축가는 기존 건축물의 틀 안에서 질서를 재조합하고, 요소를 삭제하거나 추가하며 건축물의 또 다른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이를 통해 건축물은 주변 맥락 속에서 새롭게 부여받은 기능을 인정받으며 자리 잡게 된다.
2015년, 베를린 남서부의 교외 지역에 완공된 ‘안티빌라(Antivilla)’는 기존의 란제리 공장을 스튜디오 및 주거용 건물로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다. 독일 건축가 아르노 브란틀후버(Arno Brandlhuber)는 기존 공장의 창문 개구부를 대부분 유지하면서, 2층에 있는 두 개의 개구부를 거칠고 비뚤배뚤하게 뚫어 확장했다. 조커의 눈처럼 과장된 이 두 개구부는 그사이에 코처럼 자리 잡은 작은 창과 1층의 불규칙한 네 개의 사각형 개구부와 조합돼 독특한 표정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한쪽 눈과 인접한 건축물의 모서리 상부에는 곤충의 뿔처럼 대각선으로 뻗은 콘크리트 홈통이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의 표정이 변화한다. 기존 요소가 강조된 건축물의 표면 위에는 광대 얼굴의 하얀 바탕처럼 거친 회색 석회 슬러지가 덧입혀졌다.
안티빌라의 얼굴 표정은 공장을 거주 공간으로 개조하려는 설계의 내적 질서가 외관에 드러난 결과물이다. 건축가는 석면이 있던 기존의 박공지붕을 철거하고, 방수 콘크리트로 구성된 평평한 지붕면을 설계했다. 석면 제거와 함께 전망 좋은 옥상 공간을 활용하고 단열재를 시공해 건축물의 열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옥상 면은 대각선 방향으로 미세한 경사를 형성해 빗물의 흐름을 조정하고, 콘크리트 홈통을 통해 외부로 배출한다. 새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건물의 중앙에는 계단, 욕실, 주방과 사우나를 포함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계획됐다. 이에 따라 기존 외벽이 부담하는 하중이 줄면서, 최대 5m 너비의개구부 확장이 가능해졌다. 건축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공 현장에 이동식 주방을 설치하고, 친구들을 초청해 함께 창의 개구부를 뚫는 행사를 열었다.
내부의 시선과 두 개의 인격
건축물의 표정은 외부로 향한 조커의 분장과 달리, 외부와 내부 양방향에서 경험된다. 하중을 받지 않는 모든 벽을 철거하여 완전히 열린 2층 공간에서 두 개의 거대한 구멍이 하나의 시야에 걸쳐진다. 회색 톤으로 마감된 벽과 천장, 바닥이 자아내는 어두운 분위기는 자연광과 함께 숲과 호수의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두 개의 눈을 더욱 역동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투박한 형태는 매끄러운 슬라이딩 유리창과 거울 벽 그리고 유연한 커튼의 물성과 대조를 이루며 다채롭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흥미롭게도, 안티빌라는 두 개의 공존하는 인격처럼 서로 다른 기후 구역으로 분리된다. 새 지붕을 제외하고 단열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건축물은 겨울철에 바닥의 지열 파이프와 중앙의 사우나 스토브를 중심으로 약 70㎡의 영역만이 난방된다. 따뜻한 계절에는 사용 공간이 최대 250㎡로 다시 확장되며, 이 과정에서 난방 구역을 정의하는 반투명 커튼은 넓은 공간감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기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과 현재의 두 건축물이 공존하는 안티빌라의 고유한 표정은 단순히 표면적인 분장이 아닌 그 내부로부터 발산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조커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