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5화에선 이른바 요리 명장인 ‘백수저’ 중에서도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가 실력은 갖췄으나, 백수저만큼의 명성은 갖지 못한 ‘흑수저’ 셰프와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대결을 펼친 이는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인 ‘에빗(EVETT)’의 오너 셰프인 조셉 리저우드(36·백수저)와 ‘요리하는 돌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흑수저 셰프다. 결과는 조셉의 탈락. 하지만 결과가 발표된 이후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안성재 셰프는 조셉에 대해 “한국에 있는 재료의 바운더리를 푸시하는 셰프 중의 한 명이다. 사실 한국 셰프는 생각할 수 없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거를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고 평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에빗을 방문했다. 인테리어는 첫눈에 보기에는 여느 프랑스 레스토랑과 비슷했다. 하지만 점심 손님을 맞기 위해 준비 중인 주방 주변에는 한식 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말린 나물이 쟁반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주방 천장에는 줄기째 말린 잡곡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인터뷰 약속 시간까지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조셉은 11시 정각이 되자 다가와 188㎝의 장신임에도 허리를 90도로 굽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조셉은 ‘한국에 왜 정착하게 됐냐’는 질문에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영국과 미국, 호주에서 일할 때는 모든 재료가 매우 비슷하고 매우 지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라며 “15년 동안 캐비어와 트러플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Very(매우) 심심해요”라고 했다. 조셉의 한국 말투를 그대로 살리고자, 조셉이 말한 내용은 문어체로 정리하는 대신 구어체 그대로 담는다.
“캐비어·트러플 일색인 서양과 달리 한국 식재료, 무궁무진”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셉은 호주에서 요리 학교 ‘인더스트리 링크트(Industry linked)’를 졸업했다. 이후 호주에서 요리를 배우다가 영국(7년)과 미국(1년)에서 경력을 쌓았다.
조셉은 25~26세에 세계를 여행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현지 재료 팝업 레스토랑을 여는 여행이었다. 조셉은 “아내와 팝업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해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네팔, 오만, 남아프리카, 프랑스, 스웨덴 등에서 일했다”라며 “매달 한 달씩, 한 국가에서 2년 동안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했다.
조셉은 그 과정에서 한국 식재료에 매료됐고, 2018년 11월에 에빗을 열었다.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영향도 있었지만, 한국 식재료가 가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조셉은 “영국 런던에 살았을 때 한국 식당은 바비큐 식당만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 간장, 된장과 같은 놀라운 재료가 있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재료들이에요”라며 “통조림에 들어있는 캐비어와 트러플로 요리하는 건 꽤 지루했기에 다른 걸 시도하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계절마다 마트 색깔 바뀌는 한국 찾아 정착
에빗은 오픈 6개월 여 만인 2019년 말, ‘2020년도 미슐랭 원스타’로 선정됐다. 이후 2024년까지 4년 연속 미슐랭 원스타 자리를 지켰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미슐랭으로 선정된 비결에 대해 잠시 고개를 들고 생각하더니 “글쎄요. 제 생각에는 한국 식재료만 쓰고 있고, (제가) 한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전통주 페어링이 있어서 전통주 소믈리에가 있었고, 그래서 이미지가 조금 특이하니까 아마 빠르게 됐나 봐요”라고 했다.
조셉은 한국 사람도 아닌데 한국 식재료만 쓴다. 보통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하면 프랑스, 이탈리아가 떠오르는 것과 다른 점이다. ‘에빗=개미(곤충)’라는 이미지도 한국 식재료를 고집하던 와중에 생겼다. 일반적으로 입맛을 돋우기 위해 신맛을 사용하는데, 레몬 같은 외국 재료를 쓰지 않다 보니 찾은 것이 개미였다. 조셉은 “개미 드셔보셨어요?”라며 “드셔보시면 개미가 셔요. 거기다 (개미 보면) 리액션이 좋으니까 좋은 경험을 줄 수 있기도 하고”라고 했다.
한국 식재료의 매력은 뭘까. 조셉은 사계절마다 한국에선 다른 식재료를 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식재료를 꼽아달라’고 하자 “계절마다 바뀌어요. 예를 들어 봄이 되면 두릅, 산나물이 나오고 여름에는 과일이 엄청 맛있고, 가을에는 송이버섯·능이버섯 같은 여러 가지 야생 버섯이 있잖아요”라며 한 가지를 꼽지 못한 그는 “호주, 미국은 마트 가도 사계절 똑같아요. 바나나 있고 오렌지 있고. 그런데 한국 마트 가면 계절마다 (식재료가) 바뀌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중에서도 “전라남도에는 갯벌, 산, 다 있죠”라며 “(에빗에서 쓰는) 한치, 된장, 고추장, 간장, 산초를 (전라남도에서) 가져와요”라고 했다.
‘퀄리티’ 찾아 한 달에 두 번 산지로… 발품 팔아 한국 식재료 공수
하지만 레스토랑이 고급 식재료를 공급받기란 힘들다. 소비량이 적기 때문이다. 조셉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좋은 식재료를 찾기 어렵고, 그래서 산지에 직접 가는 이유를 긴 시간 설명했다.
조셉은 “한국에서는 보통 제일 높은 퀄리티를 찾으려면 백화점에 가요. 왜냐하면 산나물 이런 거를 (공급하는 분은) 백화점에는 몇 ㎏ 팔 수 있지만, 작은 파인다이닝레스토랑에서는 ‘50g 주세요’ 하니까요”라며 “왜 퀄리티가 좋은지 설명해야 돼요”라고 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소비하는 식재료의 양이 적기에 백화점 등 주문량이 많은 곳에 납품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벽을 넘기 위해 조셉은 발품을 판다. 그는 “가격 낮춰주세요, 낮춰주세요 하기보다 좋은 재료 쓰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고), 항상 얼굴을 보고 (말한다)”라는 노하우를 전수했다. 조셉은 “보통 산지에 가서 (공급처 사람을) 뵙고 아이디어를 얻어요”라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에빗의 대표 메뉴인 ‘메주 도넛’ ‘깻잎 주스’ ‘참기름 캐러멜’이다. 이들 메뉴를 2~3년 동안 꾸준히 선보였다.
에빗 오픈 초기에는 한국 식재료를 쓴다고는 했지만, 깊이가 “깊지 않았다”는 것이 조셉의 설명. 당시에는 “한국 손님이 계속해서 (한국 식재료를) 추천하셨어요”라고 했다. 이제는 에빗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에 조셉은 전국을 돌며 한국 식재료를 찾고, 공급처를 개발하고, 신메뉴를 개발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흑백요리사 후 식당 예약 앱서 100배 이상 증가
조셉에게 흑백요리사에 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셉이 흑백요리사에서 택한 대결 재료는 바다장어. 그는 ‘담백한 바다장어’라는 이름의 요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조셉은 “(심사 방식이) 한입에 먹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음식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금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서 (생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 아쉬웠어요”라고 했다. 만약 바다장어가 아닌 다른 식재료를 고를 수 있었다면 “메주, 참기름, 간장, 된장, 고추장이었으면 어땠을까”라며 의외로 토종 한국인 입맛에 맞는 답변이 돌아왔다.
흑백요리사 방영 이후 변화를 실감 중이다. 방송 전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서 에빗에 관심을 보인 사용자는 하루 20~40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송 이후에는 4000~ 5000명으로 100배 이상 늘었다. 앞으로 6주(앱에서 에빗을 예약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예약도 마감됐다. 조셉은 “엄청 좋아요. 행복하고”라며 “보통 미슐랭 레스토랑은 3개월 풀리 북(Fully booked)되는데 그것처럼 드디어 됐으니, 잘 운영할 수 있어요”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