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기 거장인 미켈란젤로는 1508~ 12년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구약성서 이야기 연작인 ‘천지창조’를 그렸다. 어둠과 빛이 분리되는 창조 순간부터 대홍수를 이겨낸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장면까지, 9개 장면으로 구성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네 번째 ‘아담의 창조’다. 하느님이 아담에게 손을 뻗어 막 손가락이 닿으려는 순간을 그렸다. 외계인이 나온 영화 ‘E.T.’부터 각종 광고까지 모티브로 사용했다.
과학자들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에서 미켈란젤로가 화가이자 의사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노아의 방주가 그려진 여덟 번째 ‘홍수’다. 그림 가운데 노아가 만든 방주가 물 위에 떠 있고, 좌우로는 물에서 벗어나려 허둥대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파리-사클레대 인류학과의 라파엘라 비아누치(Raffa-ella Bianucci) 교수는 지난 10월 유방암 전문 학술지에 유방암에 걸린 한 여성이 천장화에 묘사돼 있다고 발표했다.
르네상스 해부학 발전의 성과
구약성서에서 신은 부도덕한 인류를 벌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켰다. 홍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를 운명이다. 비아누치 교수 연구진은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여성의 오른쪽 가슴에서 유두와 그 주변이 움푹 들어간 모습을 발견했다. 유방암 환자의 특징이다. 또 유방 위쪽 겨드랑이 근처에는 돌출된 부위도 있었다. 암의 또 다른 징후인 림프절 비대다. 미켈란젤로는 신의 벌을 받아 죽음에 이를 운명을 유방암으로 묘사한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유방암 환자를 묘사한 것은 천장화뿐이 아니다. 2000년 미국 과학자들은 미켈란젤로가 1526~33년 만든 ‘밤’이란 대리석 조각상에서도 여성 가슴에서 유방암 환자의 전형적인 형태를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미켈란젤로가 해부학에 능통한 덕분에 유방암 환자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교황청은 시신 해부를 금지했지만, 예술과 학문에서 르네상스를 이끈 선구자들은 목숨을 걸고 실제 해부를 했다. ‘해부학의 아버지’ 로 추앙받는 베살리우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을 둔 당시 의학 체계가 실제 인체와 맞지 않는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가 수천 년 이어진 권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 몸을 봤기 때문이었다.
베살리우스는 사형당한 죄수나 묘지에서 훔쳐온 시신을 침실에서 밤낮없이 해부했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1543년 세계 최초의 사실적 인체해부학 책인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과학자들은 미켈란젤로가 묘사한 인체 골격이 워낙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직접 해부를 했다고 본다.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에 나온 오른쪽 신의 영역이 뇌의 절단면과 흡사하다.
음지 환자 돌본 의사도 그림에 남아
르네상스기에 의사이자 환자인 주인공을 묘사한 미술 작품도 있다. 이탈리아 곳곳에 있는 동상이나 그림을 보면 지팡이를 든 순례자 옆에 개 한 마리가 있는 모습이다. 순례자의 왼쪽 허벅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곳에서 뱀처럼 굵은 고름이 흘러나온다. 주인공은 14세기 헌신적으로 흑사병 환자를 돌본 프랑스 출신의 순례자 로크(Roch)다.
그는 로마로 가는 도중 만난 흑사병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로크가 흑사병에 걸렸을 때는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다. 로크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렸다. 그때 개 한 마리가 매일 그에게 빵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동상이나 그림이 바로 그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로크는 나중에 가톨릭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생전 행적에 따라 외과의사와 환자, 부당하게 기소된 사람 등의 수호성인이 됐다.
이탈리아 피사대의 고(古)병리학자인 라파엘 가에타(Raffaele Gaeta) 교수는 2017년 ‘감염학 저널’에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州) 바리의 미술관에 있는 로크의 그림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성당의 제단을 장식한 이 그림 역시 왼쪽 허벅지에서 고름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에타 교수는 이 그림은 흑사병이 아니라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기니충병(Guinea worm disease)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벅지의 고름은 사실 몸 길이 1m에 이르는 기생충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기니충병은 아프리카 기니 해안에 감염 환자가 많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에타 교수는 기니충병이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에 퍼져 있었는데 중세에 로크 같은 순례자를 따라 유럽으로 번졌다고 주장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와 환자 돌봐
기니충 환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1986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21개국에서 350만 명 이상이 기니충에 감염돼 있었다. 그러다가 2016년 아프리카 4개국에서 단 25건의 감염 사례만 발견됐다. 1986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21개국에서 350만 명 이상이 기니충에 감염돼 있었다. 기니충병이 천연두에 이어 두 번째로 완전 박멸된 감염병이 됐다.
기니충이 사라진 것은 치료제가 나와서도 아니고 백신이 개발돼서도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세운 카터센터의 헌신 덕분이었다. 카터센터가 선진국에서 모은 돈으로 약을 사서 배포하는 기존 구호 방식과 달리 주민에게 생활 속에서 기니충을 피할 방법을 교육했다. 현지 주민이 동참하지 않으면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성과가 기니충 박멸로 나타났다.
미켈란젤로는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인체 해부에 참여해 예술과 과학의 발전을 유도했다. 순례자 로크는 프랑스 몽펠리에 지방에서 장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철저히 낮은 곳으로 가서 환자를 치료했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나 지미 카터는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아프리카에서 주민과 같이 감염병을 막아냈다. 과연 이 시대도 예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모든 사람을 돕는 새로운 르네상스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