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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의 일이다. 산더미처럼 큰 배가 고향 경북 영덕 축산항 모래사장 앞에 위용을 자랑했다. 일본에서 온 배였다.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나와 웅성거렸다. 인근 산에서 석영이라는 돌을 캐 배에 싣고 일본에 수출한다는 것이었다. 축산항은 이렇게 큰 배가 접안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바다에 닻을 놓고, 바지(barge)라는 작은 선박으로 항구에서 석영을 옮겼다. 며칠이 지났다. 동네 형들이 내게 일본 배에 가보자고 했다. 자그마한 나룻배에 소주 등을 싣고 배로 향했다. 선박에 도달하자 형들은 배에 올랐고, 내가 나룻배를 지켰다. 

그러던 중 나룻배가 선박의 기계식 사다리에 끼어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혼비백산해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저 높은 곳에서 선원이 내려보더니 기계 소리를 내면서 사다리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룻배가 빠져나오게 됐다. 십년감수했다.

나도 사다리를 타고 선박으로 올라갔다. 식당으로 안내받았다. 작은 밥그릇에 담긴 흰쌀밥 위에 고기 두 조각이 놓여 있었다. 일본 선원이 내게 먹으라고 밥그릇을 내밀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고기 두 조각은 양념한 장어였다. 이날은 내가 상선에 처음으로 승선한 날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최고급 음식인 장어덮밥을 처음 먹어 본 날이다. 승선하기 전 사고가 날 뻔해 겁을 집어먹었던 상태여서 일본 선원의 친절과 어우러져 장어덮밥이 더욱 맛있었을 것이다.

그 후로 장어는 여기저기서 먹을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흰쌀밥 위에 갈색 장어가 올라간 덮밥을 먹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보통의 구이만 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선박 승선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승선 중에도 장어덮밥을 먹은 적이 없다. 양념을 바른 장어덮밥은 요리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아마도 비싸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배에서는 주로 소고기, 닭고기, 일반 생선구이가 반찬으로 나왔다. 배에서는 선원 1인에게 배당된 부식비가 있다. 그래서 선장은 이에 맞춰 부식을 배에 싣게 되는데 장어덮밥을 위한 장어를 싣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15년쯤 일본 후쿠오카대 방문 시절 선배 교수로부터 장어덮밥 잘하는 곳을 소개받았다. 밥과 장어가 별개로 찬합에 담겨 나오는 점이 특이했다. 장어만 더 먹고 싶으면 찬합이 세 개가 나온다. 찬합 하나는 쌀밥이, 나머지엔 장어가 들었다. 그 맛은 일품이었다. 그 선배 교수도 장어덮밥을 먹으러 일부러 이 가게에 온다고 했다. 몇 달 전 동료들과 모임 후 행주산성 근처에서 장어구이를 먹었다. 장어만 먼저 구이로 먹고, 밥은 따로 다른 반찬과 먹었다. 하지만 뭔가 빠진 듯 아쉬웠다.

김인현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최근 일본 도쿄에 오랜만에 출장을 갔다. 파트너가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그냥 장어덮밥을 선택했다. 별 기대는 없었다. 도쿄에서 장어덮밥 잘하는 곳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찬합 두 개에 쌀밥과 구워서 양념한 장어 두 조각이 담겨있었다. 첫입에 반했다. 그 맛이었다. 와, 맛있게 먹었다. 우나기(うなぎ·장어)의 첫 글자인 ‘우(う)’라는 단어가 간판에 적혀 있었다. 장어의 모습을 잘 형상화했다. 그 감칠맛 나는 깊은 식감이 나를 유혹했다. 다시 도쿄를 찾은 나는 그를 같은 장어덮밥 집에 초대했다. 이번에는 맥주 한 잔과 같이했다. 쌉쌀한 맥주 맛과 장어덮밥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혹시 이 식당이 몇 년 됐냐’고 물었다. 120년으로 4대가 같은 장어집을 해온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지인에게 물으니 그 가게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맛있는 장어덮밥 집으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내가 장어덮밥을 좋아하는 것은 맛 때문만이 아니다. 50년 전의 그 아득한 반전이 있었던 추억으로 나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장어덮밥은 앞으로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버킷 리스트 1순위에 항상 올라와 있을 것이다.

김인현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