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이하 현지시각) 밤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주의 주도 발렌시아에서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모여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큰 사진). 마손 주지사는 2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10월 29일 홍수 당시 늑장·부실 대응으로 분노한 주민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현지 매체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시위에 약 13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시위대는 카를로스 마손 주지사를 향해 “살인자”라고 외치며 사퇴를 요구했다. 주민과 경찰 간 충돌도 발생했다. 발렌시아 시청 광장 주변까지 행진한 시위대는 진압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에게 가로막혔다(사진 1). 일부 참가자는 경찰을 향해 의자 등 물건을 집어던졌고, 시내 곳곳에서 건물이 파손됐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10월 29일 남동부를 휩쓴 기습 폭우로 최소 220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실종됐다. 사망자 대부분(212명)은 발렌시아주에서 나왔다. 이날 8시간 만에 거의 1년 치 비가 쏟아졌다. 발렌시아 지방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됐지만 치수 시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해 범람한 물이 그대로 주거지역을 덮쳤다고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지중해의 역대급 수온 상승을 야기한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응급구조대가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영상에는 발렌시아 외곽 침수된 지역의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 위에는 차와 트럭이 켜켜이 쌓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사진 2).
주민은 정부의 안이하고 뒤늦은 대응으로 피해가 커졌다며 분노했다. 폭우에 놀란 스페인 기상청이 ‘적색경보’를 발령했지만, 발렌시아 주민은 12시간이 지나서야 긴급 재난 안전 문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스페인 기상청은 10월 29일 오전 7시 36분에 폭우 적색경보를 발령했는데, 발렌시아 주민에게 첫 긴급 재난 안전 문자가 발송된 시간은 오후 8시 12분이었다. 마손 주지사는 10월 29일 한 여성 기자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식사는 3시간 동안 계속됐고 오후 6시가 돼서야 끝났다. 이 무렵 이미 여러 마을이 물에 잠기고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있었다. 이재민 지원 등 후속 대처도 미흡했다. 앞서 11월 3일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찾은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분노한 주민으로부터 욕설과 함께 진흙, 오물 세례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