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조되는 지정학 리스크
‘이코노미조선’은 11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 2층 라일락룸에서 ‘한국ICT 산업 고도화와 개방’을 주제로 ‘이코노미조선 20주년 기념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지정학 리스크(위험)가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ICT 산업을 어떻게 고도화할지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덕한 조선비즈 편집국장은 개회사에서 “ICT 산업을 주도해 온 혁신 기술의 발전사를 되돌아보면 늘 개방이 만들어내는 경쟁 가열과 협업이 그 바탕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최근 지정학 리스크는 글로벌 공급망을 분절화하면서 개방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지혜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진 축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세계는 지정학적 전환점에 서 있는데 우리는 국내 문제에만 매몰돼 있다”면서 “정치가 경제를 따라가지 못해 걱정이 앞선다” 고 했다. 그러면서 “‘이코노미조선’이 제시하는 담론과 방향은 경제계 리더에게 많은 영향을 줘 왔다”며 “국회에서도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은 ICT 산업의 고도화와 개방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간 우리 산업이 반도체와 스마트폰 중심의 구조였다면, 이젠 플랫폼, 클라우드, 인공지능(AI) 기반의 ICT 서비스 분야” 라고 했다. 이어 “이는 큰 변화이자 기회이며 위기일 수 있다”며 “국회가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라도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날 좌담회는 석경휴 국립순천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맡았다. 석 교수는 한국과 미국, 중국의 ICT 산업 현황을 분석하며 “한국은 ICT 강국이지만 네트워크 장비 분야는 굉장히 약하다”고 짚었다. 산업연구원이 전문가 델파이 조사를 통해 통신 장비 산업의 경쟁 우위를 주요국과 비교해 진단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이 100점 만점에 96.6점으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미국(92.4점), 스웨덴(88.5점), 핀란드(85.7점)순이었다. 한국은 80.0점으로 평가됐다.
석 교수는 “ICT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혁신을 위해 개방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산업 발전 전략으로 △시장과 산업 개방 △차별 금지와 공평한 기회 부여 △기업 활동 자율성 보장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따른 정책 제안으로는 △정책 연구에 통신 사업자와 해외 통신 장비사 포함 △산업 발전을 위한 통신 사업자의 재투자 활성화 △국내외 통신 사업자 간 협력 촉진 등 방안을 들었다. 석 교수는 “통신사가 장비 구축에 소홀하다 보니 이용자는 ‘제대로 된 5세대(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며 인프라 투자를 요구한다”면서 “통신사 영업이익 또는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네트워크 시설에 투자하도록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 간 기술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통신사를 포함한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 기술 개발에 사용되는 비용을 정부가 세금 감면으로 보조하면, 장기적으로 더 큰 ICT 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해외사와 과감한 기술 교류 필요”
이어진 패널 토의에는 오광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이 좌장을 맡아 석 교수, 신민수 한양대 경영대 교수, 양승국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 팀장, 발리안 왕(Balian Wang) 화웨이코리아 최고경영자(CEO), 한석현 서울 YMCA 시민중계실장과 의견을 나눴다.
신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이 구글과 페이스북 등 빅테크(대형 정보 기술 기업)에 반감을 표하면서도 구글의 기업 분할에 반대하는 점을 토대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에는 경제적 요인이 강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 될 트럼프 당선인은 정치 캠페인보다는 경제 논리에 더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은 표준화된 통신 장비 소프트웨어인 오픈랜(OpenRAN· 개방형 무선 접속망) 추진을 가속하며 통신 장비 종속에서 벗어나려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서 우리가) 생태계 주도권을 끌고 가는 게 어렵다면 미국 산업 생태계에 어떻게 보완 역할을 할지 산업 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
양 팀장은 “한국은 ICT 서비스 분야에서 분명한 강국이지만, 장비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면서 “개방을 통해 해외 유수 기업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 단순히 장비를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 등 과감하게 투자한다면, 국내 장비 제조사와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글로벌 장비 제조사가 한국을 테스트베드(시험대)로 선호하는 것은 신기술 도입이 그 어떤 국가보다 적극적이기 때문”이라며 “신기술에 대한 투자 세액 지원 등 입법이 이뤄지면 서비스 제공사, 장비 제조사, 국내 중소 업체까지 선순환할 수 있다”고 했다.
왕 CEO는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왕 CEO는 “화웨이는 한국 기업과 긴밀한 협력을 진행해 왔는데, 화웨이가 최근 10년간 구입한 한국 부품 총액은 약 40조원에 이른다” 면서 “화웨이는 2019년 LG유플러스와 함께 5G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한국 기업과 국제 기술 표준을 만드는 과정에도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동안 10여 개 한국 대학과 협업을 통해 6000여 명의 ICT 인재를 양성했다”면서 “글로벌화의 최대 수혜국인 중국과 한국이 합리적인 시장 개방과 입법 정책으로 함께 발전하는 환경을 만들자”고 말했다.
한 실장은 기술 발전의 끝은 소비자의 후생 증대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비스나 제품은 소비자 선택을 받고, 소비자 불만을 수용하면서 고도화의 길로 가야 한다”며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한다고 해서 산업이나 기업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 의견에 귀를 기울여서 기술과 서비스에 어떻게 빠르게 녹여 내는가에 안정적인 제품·서비스 공급이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의적인 기술과 서비스 출시에 개방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