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정부의 잇따른 대출 규제 여파로 수도권 주택 시장이 조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시장의 선행 지수 격인 거래량이 뚝 끊겼다. 수요자가 ‘사자’에서 관망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집 마련 실수요자는 서두르지 말고 시장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파트 거래량 ‘뚝’

아파트 시장의 조정 조짐은 거래량이 확 꺾이면서 이미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9108건으로 올해 들어 정점을 찍었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한 달을 앞두고 8월에는 6420건으로 떨어졌다. 9월에는 3050건으로 7월 거래량의 3분의 1토막으로 낮아졌다. 경기도 아파트 거래량 역시 7월 1만5100건, 8월 1만2948건, 9월 7707건으로 급전 직하했다. 서울보다는 거래량 감소 폭이 심하진 않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거래량은 수요자의 심리를 드러낸다. 거래량이 감소했다는 것은 매수자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출 규제로 매수 심리가 둔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정부가 서울시 서초구 등 네 곳에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5만 호 규모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한 것도 일부 심리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가 대규모로 해제된 건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5만 호 공급 발표는 무주택자에게 도심에서 가까운 지역에 싼 집을 공급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또 다른 선행 지수 지표인 아파트 실거래가 잠정 지수는 이미 내림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 잠정 지수는 전달 대비 0.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서울의 하락 폭(–0.47%)이 가장 컸고, 인천(–0.08%)과 경기도(–0.04%) 역시 약세를 보였다. 거래량과 잠정 지수만으로 볼 때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이미 겨울잠에 빠진 셈이다.

급격한 조정보다 완만한 조정 가능성

올해 아파트 시장은 지난해와 거의 닮은 꼴이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의 경우 지난해는 8월에 가장 많았고 올해는 7월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의 고점이 작년보다 한 달 빠른 셈이다. 아파트값 상승세에 급제동이 걸린 핵심 요인이 대출 규제라는 점도 비슷하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로 보면 1월부터 9월까지 13% 올랐으나 그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3% 하락했다. 연간으로는 10% 정도가 오른 셈이다. 올해도 조정 국면으로 진입한 시기는 엇비슷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처럼 ‘급격한 조정’보다는 ‘약간 조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글로벌 채권시장이 안정돼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국채 금리 10년물은 장중 연 5%까지 뛰었다. 하지만 올해 11월 11일 현재 연 4.3% 수준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연 4.50~4.75%로 낮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둘째, 올해는 지난해보다 수요자가 느끼는 공급 부족 불안 심리가 더 심한 것 같다. 지난해는 수요 부족 불안 심리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소비자 심리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16으로 지난해 같은 달 108에 비해선 높다. 이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1년 후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응답한 가구가 하락할 것이라고 답한 가구보다 많다는 의미다. 

두드러진 지역별 차별화

대부분 지역에서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네별로 온도 차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첫째 주(4일 기준) 주간 아파트값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강남구(0.18%), 서초·성동구(0.14%), 용산구(0.11%) 등은 서울 평균(0.07%)을 넘었다. 하지만 강북·도봉·구로구 등은 0.02%로 강보합세에 머물렀다. 수도권에선 벌써 내림세로 접어든 곳이 적지 않다. 조사 대상 지역별로는 인천 남동구의 하락 폭(-0.1%)이 가장 컸다. 동두천, 의정부, 이천, 오산, 평택, 용인 처인구 등도 내림세를 보였다. 수도권 주택 시장은 2013~2021년 대세 상승기에 동조화 현상이 강했지만, 요즘은 딴판이다. 주택 시장을 둘러싼 금융시장 환경, 핵심 수요층과 구매 방식이 그 당시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주택 시장 주도 세력은 20·30세대보다 30·40대, 특히 40대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지난 9월 전국 아파트의 40대 거래 비중은 26.9%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서울은 지난 7월부터 40대가 30대를 앞질렀다. 40대는 집을 처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급지로 갈아타기 하려는 수요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외곽 지역에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하려는 사람도 많지 않다. 전세가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 비율이 53.9%로 역대 평균(55.1%)보다 낮다. 갭투자보다 ‘거주 목적의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도심이나 그 인접 지역 신축 또는 준신축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은 고가 아파트값이 오르면 시차를 두고 중저가 아파트로 수요층이 이동하는 ‘순환매 장세’가 크게 없었다. 그만큼 시장 체력이 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12월 2일부터 서민 정책 대출 상품인 디딤돌 대출이 수도권 지역에서 축소되면 지역 간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디딤돌 대출은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이 5억원(신혼가구 6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최대 2억5000만원(신혼가구 4억원)을 최저 2%대 저금리로 빌릴 수 있는 상품이다. 이번 조치로 대출 한도가 4800만~5500만원 줄어들 전망이다. 따라서 자산이 없는 젊은 층이나 서민에게는 이 정도 규모의 한도 축소는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서울 핵심 지역의 고가 주택보다 수도권 외곽 지역의 중저가 주택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내년도 그렇게 녹록지 않아

서울 지역의 경우 이미 지난해와 올해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상승 에너지가 세지 않다. 아파트 실거래가 기준으로 지난해에 10%, 올해 들어 8월까지 8% 각각 올랐는데 저점이었던 2022년 12월 말에 비해 총 18% 뛰었다. 고점인 2021년 10월 대비 90% 정도 회복한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수도권 집값은 1% 오르겠지만 지방은 2%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방 하락 폭은 올해(-0.8%)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집값이 싼 지방은 대출 규제보다 금리 인하에 더 민감한 만큼 시세가 급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내년 한국은행이 현재 연 3.25%인 기준금리를 두 차례 정도 낮출 것으로 내다본다. 따라서 지방은 바닥을 다지면서 매물을 소화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수도권 수요자는 일단 시장을 좀 더 지켜보다가 급매물 중심으로 선별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점 대비 10~20% 정도로 낮은 매물을 선별적으로 매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지방은 타이밍을 너무 재기보다는 가격 메리트를 보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손품과 다리품을 팔아 최대한 매입가를 낮추라는 얘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