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스톡
/셔터스톡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전 세계적으로 인식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글로벌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나 유럽연합(EU)처럼 탄소 중립 목표를 법제화한 곳도 있고, 인도, 중국, 일본 등 탄소 감축을 위한 여러 규제를 신규 도입하거나 강화하고 있는 국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자국 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규제뿐만 아니라 역외로부터 수입한 재화가 수출국 현지에서 배출한 탄소까지 규제하면서 탄소가 점차 무역 장벽의 중요한 동인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한편 주요 국가의 탄소 규제 강화와 기업들의 기후 위기 대응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후 소송 또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소송을 제기하는 젊은 세대는 지금의 기후 정책과 노력이 기후 위기를 완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결국 그 피해와 부담은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고 본다. 이렇게 국가나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 소송의 결과는 대체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 단계별 로드맵 마련, 감축 목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부문별 지원 확대와 더불어 법적 규제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외 주요 기후 소송 사례를 통해 탄소 규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일지 전망하는 게 기업 경영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기후 소송 판결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청소년 환경 단체 등이 제기한 아시아 첫 기후 소송에서 일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한국의 탄소중립기본법은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 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국가 비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도(법 제7조 제1항), 구체적인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해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법 제8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은 그 비율을 40%로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0년까지의 중장기 감축 목표의 비율을 규정했을 뿐,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정부 재량으로 5년마다 새롭게 규정하도록 한 것은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 조치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기 못했으므로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였다. 

즉, 어떠한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2050년 탄소 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으므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규율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에 따라 2026년 2월 28일까지 2031년 이후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 본 판결은 국가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의 기본적 틀은 국회가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순전히 행정부의 정책 문제가 아닌 국회의 근본적 과제임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독일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 헌법 소송이 있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3월 연방기후보호법이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미래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2030년 이후의 기간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및 이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명시하도록 판결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0월 30일 서울 중구 서울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4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마무리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0월 30일 서울 중구 서울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4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마무리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업에 대한 기후 소송

최근까지 기업을 직접 상대로 한 소송은 그린워싱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 외 기후 소송 사건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월 인도네시아 파리(Pari)섬 주민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시멘트 제조 기업인 홀심(Holcim)을 대상으로 스위스 추크(Zug) 지방법원에 민사책임을 묻는 기후 소송을 제기하였다. 홀심을 상대로 기후변화 피해보상, 기후 적응 조치를 위한 재정적 기여, 적극적인 감축 활동 등을 요구한 사건이다.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며 개인이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민사책임을 묻는 기후 소송 선례로서 향후 유사 사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자발적 탄소 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탄소감축 사업에 대한 제재와 소송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24년 10월 2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수백만t의 자발적 탄소 배출권을 허위로 발급받아 부당 이익을 얻은 혐의로 탄소 상쇄 사업 전문 기업인 CQC 임팩트 인베스터(CQC Impact Investors LLC)에 대해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해당 탄소 배출권을 모두 취소하거나 폐기하도록 명령했다. 이와 함께 이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임원등은 현재 형사고발돼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번 조치는 탄소 시장에서 거래되는 탄소 배출권의 무결성(integrity) 원칙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미국 당국이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발생한 부정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제재 조치를 취한 사건으로 글로벌 탄소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기업도 본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탄소 감축 프로젝트 시행 등 탄소 시장 참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 규제의 확대

우선 국내 기후 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부 헌법 불합치 판결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2050년 탄소 중립 시점까지의 중장기 국가 감축 목표를 정량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는 현재 정부에서 수립 중인 2035년 국가 감축 목표 (NDC)의 영향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향후 탄소중립기본법 개선 입법과 2035년 NDC 수립을 모니터링하고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대한 이행 전략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기후 소송은 대체로 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변화 완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할 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단순히 법적 방어를 넘어선 전반적인 친환경 경영 전략의 변화가 요구될 수 있다. 나아가 공급망 내 탄소 관리와 협력사와 협력을 통한 전반적인 탄소 감축까지 필수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명확한 탄소 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실질적인 이행 계획을 수립하여 그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김진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외국변호사 - 한양대 경제학, 에섹스대 경제학석사, 루이스 앤드 클록 로스쿨 법학석사,  
전 THE ITC 기후환경팀장,  전 포스코 무역통상팀 매니저
김진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외국변호사 - 한양대 경제학, 에섹스대 경제학석사, 루이스 앤드 클록 로스쿨 법학석사, 전 THE ITC 기후환경팀장, 전 포스코 무역통상팀 매니저
끝으로 기업은 최근 확대 및 강화되고 있는 국내외 탄소 가격제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탄소 가격제는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비용을 부과하여 배출을 줄이도록 하는 것으로 세계은행(WB) 조사에 따르면, 현재 50여 개국에서 75개의 탄소 가격제를 적용 중이라고 한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 등 주요국이 자국이 수입하는 역외 생산품에 대해서도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규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결국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기후 소송이나 탄소 가격제 도입은 기업에 큰 부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탄소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 노력이 그 기업의 경쟁력을 위한 필수 항목인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아무쪼록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꼼꼼하고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면 좋겠다. 

김진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