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존중에는 가치가 있다. BOJ뿐 아니라 재무성 등 다른 기관도 우수한 인재 풀과 과거 정책의 성공 및 실패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조언을 제공한다. 따라서 그들의 조언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 문제는 정부 관료들이 경제에 필요하지 않은 익숙한 정책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1990년 이후 일본의 통화정책은 바로 이러한 편견을 반영한다. 전후 일본의 경제 붐은 부분적으로는 저평가된 엔화에 의해 촉발됐다. 하지만 1985년, 일본은 다른 주요 5개국(G5)과 함께 ①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 달러의 가치가 엔화, 프랑스 프랑화, 영국 파운드화, 독일 마르크화에 비해 낮아지는 데 동의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경제 기적은 급격히 끝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30년간 BOJ 총재는 강한 엔화를 유지하려는 데 집착했고, 이는 디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중 한 명인 하야미 마사루는 BOJ 총재가 되기 전, 필자에게 전후 저평가된 엔화 때문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즉, BOJ 전문가의 조언에만 의존한 정치인의 태도는 1990년 이후 디플레이션과 침체된 성장의 ② ‘잃어버린 10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이 상황은 2012년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되면서 바뀌었다. 경제학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베는 중앙은행가의 조언을 무턱대고 따르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BOJ의 수장을 올바른 인물로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통화 확장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한 구로다 하루히코를 선택했다.
한 국가의 통화정책은 직접적으로 환율을 좌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다른 국가 대비 화폐 공급량이다. 2012년 당시 일본은 저금리 환경 속에 있었다. 지나친 엔화 절상으로 인해 일본 산업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BOJ는 금리를 낮게, 심지어 마이너스 상태로 유지해야 했다. 2013년부터 전례 없는 통화 완화 정책을 통해 구로다는 교역 상품의 생산 비용을 낮게 유지해 일본 수출을 경쟁력 있게 만들며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은 극적으로 변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율 급등으로 주요 중앙은행이 2022년부터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비록 금리가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다. 가령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금리는 거의 5%에 달한다. 일본과 주요 무역 상대국 간 금리 차이는 일본 투자자가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외화로 저축을 옮기게 했고, 이로 인해 엔화가 약세를 보이게 되었다.
엔화가 너무 강할 때 일본 경제가 고통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확장적 통화정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낮은 엔화 가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엔·달러 환율이 약 152엔(약 1385원)인 것은 너무 높다(엔화 가치가 너무 낮음). 저평가된 엔화는 이미 건설 등 일부 부문에서 노동력 부족을 야기하고 과도한 관광을 조장하며, 일본 학생이 해외 유학하는 것을 꺼리게 하고 있다. 게다가 위험한 인플레이션율 급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환율이 달러당 약 120엔인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BOJ는 즉시 단기 정책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경제활동에 너무 큰 제약을 가한다면, 그때는 BOJ가 다시 통화 완화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 다행히 이시바가 중앙은행가의 의견에 너무 의존할 것을 걱정했지만, ③ 현재 그는 일본이 필요로 하는 더 엄격한(긴축적) 통화정책 접근을 취할 의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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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985년 9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의 재무장관이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달러를 일본 엔화 등에비해 절하하기로 한 합의. 플라자 합의 후 2년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60% 이상 올랐고, 이것이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②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기간. 당시 버블 붕괴 탓에 영업 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늘어났고, 이들에 돈을 빌려준 은행은 파산했다. 일본 정부는 망해가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고 국가 부채가 급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불황이 20년, 30년까지 길어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③ 올해 3월 일본은 2007년 이후 첫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2016년 이후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종료했다. 이어 7월엔 연 0~0.1% 금리를 연 0.25%로 추가 인상했다. 일본 안팎의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9월과 10월엔 금리를 동결했으나, 최근 엔화 약세가 심해지면서 오는 12월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가즈오 BOJ 총재는 10월 31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와 물가 전망이 실현된다면 금융 완화 정도를 계속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