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일본 엔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6월 27일(이하 현지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한때 1달러(약 1394원)당 엔화 가치가 160.88엔(약 1466원)을 돌파하면서 1986년 이후 3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것이다. 일본 정부의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으로 올해 8월 엔·달러 환율이 140엔(약 1275원)대에 안착하긴 했으나, 10월 27일 집권 자민당의 중의원(하원) 선거 참패와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튿날 엔·달러 환율이 154엔(약 1403원)까지 재급등했다(엔화 가치 급락). 통상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엔화 약세 상황은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인 필자의 생각까지 바꾸어 놓은 듯하다. 과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 자문이었던 필자는 엔화 약세를 통해 일본 대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면 낙수 효과를 통해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탈출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것이 아베노믹스 골자다. 하지만 최근 다시 엔·달러 환율이 150엔(약 1367원)을 넘어서는 등 과도한 엔화 약세가 이어지자 인플레이션율(물가 상승률) 급등과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되레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러면서 가장 바람직한 엔·달러 환율을 120엔(약 1093원)으로 제시하며 이를 위해 일본은행(BOJ)이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엔화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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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그런데 급격하게 오른 물가에 큰 충격을 받았다. 2020년 2월만 해도 도쿄 시내에서 간단한 점심값은 약 1000엔(약 9110원), 당시 약 10달러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약 2000엔(약 1만8220원)에 달한다. 어느 정도는 미국에서의 경험과 비슷한데,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가격이 여전히 훨씬 높다. 차이점은 일본이 급격한 엔화 가치 절하를 겪었다는 점이다. 이는 외국인 방문객에게 유리하다. 2000엔은 단지 13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필자의 이번 방문은 새 총리 이시바 시게루의 선거와 맞물렸다. 그는 자민당 내의 치열한 경쟁 끝에 간신히 승리했다. 하지만 이시바가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경제정책을 추구할지는 약간의 우려가 있다. 2000년대 초, 필자가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 소장이었을 때 이시바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BOJ의 지나치게 엄격한 통화정책이 일본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당시 일본 의회 중의원(하원) 의원이었던 이시바는 통화정책은 기술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정부가 BOJ 전문가의 의견과 조언을 따를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존중에는 가치가 있다. BOJ뿐 아니라 재무성 등 다른 기관도 우수한 인재 풀과 과거 정책의 성공 및 실패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조언을 제공한다. 따라서 그들의 조언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 문제는 정부 관료들이 경제에 필요하지 않은 익숙한 정책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1990년 이후 일본의 통화정책은 바로 이러한 편견을 반영한다. 전후 일본의 경제 붐은 부분적으로는 저평가된 엔화에 의해 촉발됐다. 하지만 1985년, 일본은 다른 주요 5개국(G5)과 함께 ①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 달러의 가치가 엔화, 프랑스 프랑화, 영국 파운드화, 독일 마르크화에 비해 낮아지는 데 동의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경제 기적은 급격히 끝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30년간 BOJ 총재는 강한 엔화를 유지하려는 데 집착했고, 이는 디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중 한 명인 하야미 마사루는 BOJ 총재가 되기 전, 필자에게 전후 저평가된 엔화 때문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즉, BOJ 전문가의 조언에만 의존한 정치인의 태도는 1990년 이후 디플레이션과 침체된 성장의 ② ‘잃어버린 10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이 상황은 2012년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되면서 바뀌었다. 경제학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베는 중앙은행가의 조언을 무턱대고 따르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BOJ의 수장을 올바른 인물로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통화 확장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한 구로다 하루히코를 선택했다.

한 국가의 통화정책은 직접적으로 환율을 좌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다른 국가 대비 화폐 공급량이다. 2012년 당시 일본은 저금리 환경 속에 있었다. 지나친 엔화 절상으로 인해 일본 산업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BOJ는 금리를 낮게, 심지어 마이너스 상태로 유지해야 했다. 2013년부터 전례 없는 통화 완화 정책을 통해 구로다는 교역 상품의 생산 비용을 낮게 유지해 일본 수출을 경쟁력 있게 만들며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은 극적으로 변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율 급등으로 주요 중앙은행이 2022년부터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비록 금리가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다. 가령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금리는 거의 5%에 달한다. 일본과 주요 무역 상대국 간 금리 차이는 일본 투자자가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외화로 저축을 옮기게 했고, 이로 인해 엔화가 약세를 보이게 되었다.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 교수 - 도쿄대 법학,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경제 자문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 교수 - 도쿄대 법학,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경제 자문

엔화가 너무 강할 때 일본 경제가 고통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확장적 통화정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낮은 엔화 가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엔·달러 환율이 약 152엔(약 1385원)인 것은 너무 높다(엔화 가치가 너무 낮음). 저평가된 엔화는 이미 건설 등 일부 부문에서 노동력 부족을 야기하고 과도한 관광을 조장하며, 일본 학생이 해외 유학하는 것을 꺼리게 하고 있다. 게다가 위험한 인플레이션율 급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환율이 달러당 약 120엔인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BOJ는 즉시 단기 정책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경제활동에 너무 큰 제약을 가한다면, 그때는 BOJ가 다시 통화 완화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 다행히 이시바가 중앙은행가의 의견에 너무 의존할 것을 걱정했지만, ③ 현재 그는 일본이 필요로 하는 더 엄격한(긴축적) 통화정책 접근을 취할 의향이 있는 듯하다. 

Tip|

1985년 9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의 재무장관이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달러를 일본 엔화 등에비해 절하하기로 한 합의. 플라자 합의 후 2년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60% 이상 올랐고, 이것이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기간. 당시 버블 붕괴 탓에 영업 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늘어났고, 이들에 돈을 빌려준 은행은 파산했다. 일본 정부는 망해가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고 국가 부채가 급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불황이 20년, 30년까지 길어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 3월 일본은 2007년 이후 첫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2016년 이후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종료했다. 이어 7월엔 연 0~0.1% 금리를 연 0.25%로 추가 인상했다. 일본 안팎의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9월과 10월엔 금리를 동결했으나, 최근 엔화 약세가 심해지면서 오는 12월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가즈오 BOJ 총재는 10월 31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와 물가 전망이 실현된다면 금융 완화 정도를 계속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 교수